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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코로나 작두’ 탔나, 현실 재난 미리 그려둔 이 영화

등록 2020-07-25 12:06수정 2020-07-25 12:07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팬데믹>

작년 공개돼 올해 국내 개봉
소독·손씻기·자가격리 묘사
코로나 시대 미리보기 수준

기약 없는 400일 ‘집콕’ 도중
여행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
이어지는 돌발사태·도피·추적
창문마다 비닐로 막고 철두철미한 소독과 ‘집콕’ 그리고 손 씻기를 강조하는 등 2019년에 공개된 영화 &lt;팬데믹&gt;의 등장인물들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 영화사 빅 제공
창문마다 비닐로 막고 철두철미한 소독과 ‘집콕’ 그리고 손 씻기를 강조하는 등 2019년에 공개된 영화 <팬데믹>의 등장인물들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 영화사 빅 제공

코로나 시국에 한달도 안 된 간격을 두고 개봉한 좀비영화였다는 점 말고도 <#살아있다>와 <반도>가 가진 공통점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여기서부터 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구원의 헬기’다. 왜 하필 하고많은 이동수단 중 헬기인가. 그것은 물론 베트남전 영화들의 영향일 텐데, 평범한 군용헬기를 가장하여 어떠한 소음이나 조짐도 없이 아파트 옥상 위로 솟아오르던 <#살아있다>의 헬기의 ‘갑툭튀’에 대해, 항간에선 추억의 슈퍼헬기 영화 <블루 썬더>나 미국 드라마 <에어울프> 등등을 너무 많이 본 결과 아닌가 하는 학설도 있었다만, 이는 사실 베트남전 영화의 우주 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에일리언 2>의 마지막 구조 장면을 한국 아파트 옥상에서 재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기체 전체에 좀비 기피제 도포한 듯, 다가오는 좀비 한마리 없이 고고히 로터 돌리던 <반도>의 치누크 헬기 역시 수많은 베트남전 영화 및 그 후손들에 등장하는 구원의 헬기 그대로다. 아무튼.

요점은 이 두 영화가 영화의 최종 목적지로서 구원을, 아니, 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옥에서의 탈출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좀비영화들은 <더 로드>(주인공들은 자살만이 유일한 구원인 상황에 놓여 있다)나 <혹성탈출>(1968년 버전, 주인공들은 인류 문명이 완전히 소멸한 지구에 던져진다) 같은 ‘완전’ 종말영화들과는 다소 다르다. 어쨌든 탈출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한다면 문명·인류는 아직 ‘덜’ 무너진 것일 터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인류의 완전한 종말은 아닐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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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가지 게임, 천 가지 놀이가 무효

그렇다면 <팬데믹>(원제 ‘Only’)은 어느 쪽인가. <팬데믹>은 후자 쪽이다. 영화 속 세계에서는 혜성의 근접 통과 후 낙진 같은 먼지가 눈처럼 내리고, 여성만을 죽이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그리하여 인류는 종의 재생산을 위한 ‘배아 프로젝트’에 돌입하는데, 이것은 국가가 주도하여 세상에 남아 있는 모든 생존 여성들을 잡아들이는 사냥 프로젝트다. 하여 전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여성들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몸을 숨기고 있다.

이쯤에서 많은 독자께서는 거의 자동적으로 ‘전 인류의 불임과 마지막 한 명의 가임여성’이라는 상황을 설정했던 <칠드런 오브 맨>을 떠올리실 것이다.(사실 설정만으로는 미드 <핸드메이즈 테일> 쪽이 더 닮아 있지만 관람하신 분이 적을 것이므로 생략.) 그리고 주인공 여성을 통한 기적적인 인류 구원 등등을 연상하실 것이다. 하지만 <팬데믹>은 여주인공 ‘에바’(프리다 핀토)가 인간백신이거나 구원의 여신일 가능성을 처음부터 일축한다. 영화는 시작 후 5분 남짓한 시점에서 에바가 ‘아픈 사람’, 즉 바이러스 감염자임을 밝히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녀가 숨은 아파트를 급습한 경찰은 그녀의 진단키트를 보고 “남은 며칠, 잘 즐기쇼”라는 말을 던지고 나간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 ‘윌’(레슬리 오덤 주니어)은 감염 여성이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증상을 날짜별로 해설해준다.

영화사 빅 제공
영화사 빅 제공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센스 없는 배우자는 바이러스보다 무섭다? 아니고. 그렇다. 이는 영화가 해피엔딩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고 들어감을 의미한다. <팬데믹>은 인류 구원의 여신 수호를 위한 대장정이었던 <칠드런 오브 맨> 쪽보다는 출구는커녕 창문조차 안 보이는 지옥도였던 <더 로드>의 길을 따르는 듯 보인다. 이를 확인하듯, 영화는 배낭을 멘 채 숲속을 걷는 에바와 윌의 모습으로 시작된다.(단 <팬데믹>은 <더 로드>를 지배하던 뿌연 황갈색을 어두운 청회색으로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곧바로 첩첩이 비닐장벽을 친 아파트 안에 있는 두 주인공 윌(흐느끼고 있다)과 에바(샤워하고 있다)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400일째’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그런데 400일째? 무엇의 400일째?

<팬데믹>은 이 ‘400일째’를 기점으로 중반부까지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상황을 오가며, 문제의 ‘400일째’에 얽힌 사연을 조금씩 밝혀 나간다. 덕분에 <팬데믹>에서는 플래시백이 대략 전쟁영화에서의 총격 장면 정도의 빈도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렇게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는 이야기 방식은 물론 호기심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대체 무엇의 400일째?’나 ‘그 40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같은 궁금증을 넘어, ‘이야기 방식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그 ‘400일’에 얽힌 사연은 얼마나 새로운/심오한/예리한 통찰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기대감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궁금증과 기대감은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팬데믹>이 스스로 던진 핵심 관람 포인트다.

일단 바이러스 창궐부터 에바의 자가격리까지에 이르는 과정의 묘사는 거의 코로나 사태 미리보기의 수준에 근접해 있다.(이 영화는 2019년에 공개된 영화) 창문마다 비닐로 막고, 출입구부터 집 안 곳곳에 자외선 램프를 설치하고, 철두철미한 소독과 ‘집콕’ 그리고 손 씻기를 강조하는 등등, 에바를 지키려는 윌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있습니다) 바이러스뿐 아니라 여성들을 거의 납치해 수용하는 공권력을 피하기 위해 에바가 벌이는 초장기 집콕(그렇다. ‘400일’은 에바가 집콕을 해온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의 고충, 즉 백게임-천놀이-만취미가 무효한 심리적 괴로움도 빠짐없이 묘사되고 있다.

영화사 빅 제공
영화사 빅 제공

그런 에바를 점점 강하게 다그치며 방역에 힘쓰다 못해 집착하는 윌과, 그런 윌에게 화를 내는 에바의 모습과, 그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뉴스 화면이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도 얼추 예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뭐, 영화 속 폐허 도시의 비주얼은 아직 우리 현실이 아니지만, 현재까지의 추세로 보아 세계 모든 여성들이 사망하는 사태라면 충분히 그 지경에 이를 법하다. 심지어 영화 속 바이러스의 이름인 ‘HNV21’마저 ‘COVID-19’와 엇비슷하다.

요컨대 <팬데믹>은 바이러스 창궐을 현실적이고도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있다. 더욱이 이 전지구적 재난 상황을, 에바와 윌, 두 사람의 경험에 한정시켜 묘사해 나름 아기자기한 호감도 안긴다. 이는 ‘부분으로 전체 드러내기’의 묘미를 잊은 채, 악을 쓰는 듯 규모만을 추구하는 최근의 종말영화들의 재난 묘사보다 훨씬 흥미롭다. 경제적 제약을 극복하는 아이디어 구경 또한 이런 작은 재난영화를 보는 쏠쏠한 재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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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지점’에서 멈추는 팬데믹

하지만 그뿐이다. <팬데믹>은 ‘그럴듯’이라는 지점에서 멈춘다. 영화가 묘사한 그럴듯한 세상 안에서 인물들, 특히 주인공들은 이제까지의 재난-종말-도주도피 영화들을 모두 합산하여 평균값을 낸 듯한 표준적 행동과 표준적 감정에 머문다. 다행히도 400일 자가격리(아무리 픽션이라도 그렇지, 400일은 좀 너무 썼다)에 따른 에바의 심리 상태는 빠른 편집으로 <#살아있다>를 통해 익히 경험했던 ‘카인드 오브 지루함’을 최대한 저감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400일+α 자가격리를 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련다’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인바, 그것을 위해 굳이 도입부에서 ‘400일째’ 장면을 보여준 뒤 ‘220일째’ ‘238일째’ ‘374일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다시 ‘400일째’로 복귀하는, 만드는 이나 보는 이나 수고스러운 구성을 취했어야 했던 이유는 좀처럼 파악되지 않는다. 흡인력 약한 이야기에 투입된 인위적인 근육강화제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 뒤, ‘400일째’부터 시작된 그들의 여행 역시 마찬가지다. 약탈당한 마트에서의 돌발사태, 특별한 한 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들른 식당에서의 도피, 그리고 이어지는 인간사냥꾼의 추적 등등은 강력한 기시감 이외에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특히 에바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장면에서는 거의 <핸드메이즈 테일>의 첫 장면을 그대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있다.) 게다가 ‘예언적’이랄 정도로 적절히 묘사된 창궐 후 세계의 묘사와는 달리,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부분에서의 허점–에바는 털모자를 쓸 뿐 긴 머리를 조금도 자르지 않는다. 윌은 식당에서 에바의 이름을 그대로 부른다. 숲속에서 굳이 요란하고도 탄환을 낭비하는 권총 장난을 하고 논다 등등-은 이들 여정의 현실성 및 설득력을 더욱 떨어뜨린다.(이하 엔딩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하여, 마침내 만나는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셀피를 남긴다’ 내지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나는 한 점의 셀피를 남기련다’쯤으로 요약될 <팬데믹>의 마지막 장면이 안기는 허탈감은 기념비적 규모로 거대해진다. 이 엔딩은 <팬데믹>에서 거의 유일하게 관객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는 장면인데, 그냥 끝까지 예측 범위 안에서 안전하게 머무르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뒤따라 나오는 것은, 아 참, 이 영화의 테마가 ‘기약 없는 자가격리를 하며 무의미하게 생명연장을 하느니, 차라리…’였다는 뒤늦은 자각이다.

이런 느낌은 필자뿐인가. 작금의 종말영화들이 그려내는 종말은 인류의 종말보다는 이야기의 종말 같다는.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기다린다. 어디선가 날아올 구원의 헬기를.

▶ 한동원 영화평론가.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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