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감 있던 영화가 지루한 형사물이 됐다.”
지난달 2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미국 드라마 <설국열차>에 대한 <한겨레> 문화부 ‘첫방 평가단’의 총평이다. 이 드라마는 봉준호 감독의 2013년 영화를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 전부터 관심이 쏟아졌다. 미국 방송사 <티엔티>(TNT)에서 5월17일부터 매주 일요일 한편씩 내보내고, 넷플릭스에서는 한주 늦은 25일부터 매주 월요일 한편씩(25일은 1·2회) 서비스하고 있다.
기본 설정은 영화와 같다. 기온이 영하 119도까지 내려간 지구에서 기차가 노아의 방주 같은 구실을 하며 쉬지 않고 달린다. 영화는 기차가 출발하고 15년 뒤의 이야기라면, 드라마는 7년 뒤가 배경이다. 2시간짜리를 10부로 늘린 드라마는 꼬리칸 형사 레이턴(다비드 디그스)이 3등칸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파헤친다는 설정을 내세워 극을 끌고 간다. 하지만 “그러면서 부조리한 계급 구조를 꼬집는 원작의 세계관이 약해졌다”고 평가단은 지적한다. 남은 7회, 기차는 속도를 낼 수 있을까. ‘첫방 평가단’이 드라마 <설국열차>를 들여다봤다. (*스포일러 유의)』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드라마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동명 영화(2013년)와는 달리 형사가 주인공인 수사물을 가미했다. 그래서 자본주의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등 호불호가 갈린다. 넷플릭스 제공
유선희 기자 ▷ 꼬리칸 사람들이 기차로 뛰어드는 첫 장면은 임팩트가 강했다. 영화에는 없는 부분이다. 계급을 둘러싼 문제의식을 초반부터 더 사실적으로 내세우나 싶었다. 칸별 서열도 더 세밀해졌다. 1등칸은 기차를 만들 때 투자한 이들 위주이고, 2등칸, 3등칸, 그리고 꼬리칸으로 구분된다. 특정 성과에 따라 기차 안 사람들이 한 칸씩 앞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현실의 은유 같아 씁쓸했다. 그런데 그게 다다.
남지은 기자 ▷ “3등칸과 꼬리칸 사람이 전체 70%를 차지하고 있다”는 대사도 착잡했다. 수사물을 가미한 건 앞칸 곳곳을 헤집고 다닐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형사는 식상하지만 또 적절하다. 앞칸 구조와 시스템을 파악해 꼬리칸의 혁명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 긴박감이 없어 지루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수사하는 것도 아닌데 꼭 꼬리칸의 레이턴을 데려와야 했는지에 관해 시청자를 설득하지 못했다.
서정민 기자 ▷ 두개의 큰 이야기가 매끄럽게 맞물리지 못하고 어색하게 겉돌고 있다. 이를 배우들이 채워줘야 하는데 그것도 약하다. 크리스 에번스, 틸다 스윈턴, 송강호 등 중량감 있는 영화 속 배우를 대체하기엔 제니퍼 코널리(멜러니)와 다비드 디그스의 매력과 흡인력이 부족하다. 영화 속 캐릭터가 인상 깊은데 이를 변주한 것이 오히려 실이 된 것 같다. 틸다 스윈턴 역할을 제니퍼 코널리와 앨리슨 라이트(루스)로 나눈 것 같고, 송강호와 고아성 역할은 아예 없다.
미드 <설국열차> 속 주인공 레이턴 역을 맡은 다비드 디그스(왼쪽)와 멜러니 역을 맡은 제니퍼 코널리. 넷플릭스 제공
김경욱 기자 ▷ ‘영감’이 초반 자살하는 부분에서 ‘이게 뭐지?’ 했다. 영화는 길리엄 영감(존 허트)과 윌퍼드(에드 해리스)가 사전에 모의해 반란을 부추겼다는 반전이 주는 여운이 상당하지 않나. 드라마는 그 반전의 재미와 충격을 수사 결과로 대체하려는 것 같다. 범인을 찾는 이유가 윌퍼드의 정보원이었던 숀이 살해당하기 직전 비밀을 어디까지 털어놨느냐를 알아내려는 거다. 그 비밀이 드라마의 반전인 것 같다.
남지은 기자 ▷ 크로놀(마약)과 1등칸 사람들 사이 뭔가가 있어 보이지만, 문제는 그 반전이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는 거다. 뜬금없는 장면도 많다. 수사하다 말고 나이트칸에서 전 아내와의 베드신이라니. 영화는 60칸인데 드라마는 1001칸이다. 소를 키우는 칸, 수조에서 직접 잡은 해산물을 요리하는 칸 등 다양한 칸이 등장한다. 그 칸들이 흥미로웠던 건 바탕에 깔린 계급 차이가 주는 현실감 때문이었다. 드라마는 부조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약화한 것 같아 아쉽다.
김경욱 기자 ▷ 현지에서도 평가가 좋지는 않다. 이 작품의 로튼 토마토(티브이·영화 비평 사이트) 지수는 63%다. 영화를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의 평가도 갈린다. <비비시>(BBC)는 “서스펜스가 가득하고, 흡인력 강했다”고 평하는 반면, <시엔엔>(CNN)은 “거창한 아이디어와 달리 서사가 약하다”고 비판했다. 영화보다 나을 수도 있단 기대감이 너무 컸던 것도 악영향을 준 것 같다. 모든 창작자가 경계하는 게 기대감이라고 하지 않나.
넷플릭스에서 선보인 드라마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동명 영화(2013년)와는 달리 형사가 주인공인 수사물을 가미했다. 그래서 자본주의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등 호불호가 갈린다. 넷플릭스 제공
남지은 기자 ▷ 요즘처럼 1~2회를 본 뒤 계속 볼지를 결정하는 분위기에서 초반 지루함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설국열차>를 보면서 그간 넷플릭스가 전편을 한꺼번에 서비스한 게 얼마나 큰 무기인지를 알 것 같았다. 전편 다 봤다면 평가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유선희 기자 ▷ 아직 7회가 남았다. 중후반부, 영화와 차별화된 드라마의 핵심 줄기인 ‘기차 안 수사’가 충격과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부디 세계를 매료한 봉준호식 세계관에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서정민 기자 ▷ 이야기에 본격적인 가속이 붙을 때까지 시청자를 붙잡아둘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기차가 너무 느리면 답답해하는 탑승객이 뛰어내릴 수 있다. 솔직한 심정으론 지금 내리고 싶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