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언더워터>
가장 깊은 해저 시추기지 붕괴
탈출해야 하는 인간들의 사투
초반 5분 재난상황 직행하는데
위험 도사린 공간들 설명 부족
불 꺼진 미로가 되어버린 흐름
‘에일리언 시리즈’ 뒤따르다가
영화 속 탐욕에 따른 재난처럼
과거 성공요인 ‘과욕의 짜내기’
<언더워터>
가장 깊은 해저 시추기지 붕괴
탈출해야 하는 인간들의 사투
초반 5분 재난상황 직행하는데
위험 도사린 공간들 설명 부족
불 꺼진 미로가 되어버린 흐름
‘에일리언 시리즈’ 뒤따르다가
영화 속 탐욕에 따른 재난처럼
과거 성공요인 ‘과욕의 짜내기’
이윤이 나온다면 최후의 한 방울 영양가까지 압출해내 모두 소진시키는 우를 계속 범할 것인가, 아니면 재난을 통해 얻은 교훈으로 더 늦기 전에 지속가능한 미래로 방향을 틀 것인가. <언더워터>에서 심해에 건설된 시추기지의 엔지니어 ‘노라’ 역을 맡은 크리스틴 스튜어트.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
0을 아무리 합하고 곱한들… 일단 털고, 계속하자면, 위에 적은 영화의 기초설정과 이 영화의 주연이 크리스틴 스튜어트(기지의 기계 엔지니어 ‘노라’ 역)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굳이 엄청난 영화팬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가 <에일리언> 시리즈(<프로메테우스>까지 포함한)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음을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네거티브 필름’처럼 처리된 신문기사/설계평면도/엠아르아이(MRI) 이미지 등등을 빠르게 훑는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은 ‘‘티안 산업’이라는 거대기업이 각종 위험과 사고와 의혹을 덮어가면서 심해시추를 강행하고 있다’라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웨일랜드-유타니 코퍼레이션’의 행태를 다분히 연상시키는 기본배경을 브리핑한다. 이어 영화는, 심해에 우뚝 선 시추시설을 따라 내려가 해저면에 건설된 심해기지 외부를 보여준 다음, 기지 중심점에서 360도 패닝하는 카메라로 <에일리언> 1편의 우주화물선 ‘노스트로모’호의 통로를 다분히 연상시키는 기지 내부 복도를 훑어준다. 그리고 <에일리언 3>의 욕실/의무실의 향취 물씬 풍기는 욕실에서, 맨머리 삭발을 감행했던 <에일리언 3>의 시고니 위버(‘리플리’ 역)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짧은 머리를 두피에 밀착시킨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버스트숏으로 잡는다. 더구나 ‘노라’는, 아니나 다를까 스포츠브라 차림이다. 다만 <에일리언> 1편의 ‘리플리’의 속옷 차림에는 생존이라는 절체절명의 알리바이가 있었던 반면, 노라의 스포츠브라에선 그저 생활습관 또는 단순취향 정도의 알리바이 외에는 찾기 어렵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얼마 뒤에 등장하는 “수중 슈트를 입으려면 바지를 벗어야 돼”라는 민망한 대사는 그냥 못 들은 것으로 해두자.)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
그럴 거면 처음부터 잘 설명하든가 결정적으로 <언더워터>가 도입부의 ‘치고 나가기’로 희생시킨 것은 공간에 대한 설명이다. 영화는 사고 상황 이후 인물들이 수행할 핵심 미션으로서 <에일리언 2>, <그래비티>, 그리고 <클로버필드> 같은 영화들이 공히 채택하고 있는 이야기 틀, 즉 ‘A지점(시추본부 ‘케플러 기지’)에서 B지점(시추지점 ‘로벅 기지’)으로 이동 후, 모종의 이동수단(탈출용 ‘포드’)을 통한 지옥탈출’이라는 틀을 채택하고 있다. 이 경우 공간은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이 돌파해 나가야 할 공간의 구조와 각 지점들의 특성, 그리고 여기에서 예상되는(그리고 예상되지 않는) 위험이나 난관들은 인물들에게 거의 운명에 준하는 수준의 영향력과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공간은 극적인 전개에 맞춰 세심하게 설계돼야 하고, 또 그렇게 설계된 공간의 얼개는 관객들의 머릿속에 혼란의 여지 없이 깔끔하게 그려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은 뭐가 뭔지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불 꺼진 미로에 던져지게 된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여 수많은 영화들이 이러한 내용을 국어책 읽듯 줄줄 브리핑하는 촌스러운 장면들을 넣곤 하게 된다. <언더워터>가 과감한 치고 들어가기를 통해 이런 촌스러움을 피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영화는 더 큰 실수, 즉 관객을 미로에 빠뜨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하긴 영화는 전반부에서 ‘일단 무조건 여기서 탈출’이라는 과제에만 집중하고 그 결과, 붕괴로 막힌 통로, 고압 수증기 뿜어대는 복도, 화물 카트 운행되는 선로 등등의 공간들을 연달아 ‘갑툭튀’풍으로 나열한다. 이를 마주친 인물들은 별다른 액션이나 반전이나 정서 없이 그 과제들을 그냥 열심히 고생스레 통과해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가 공간설계 및 해설 같은 거추장스러움을 건너뛴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
▶ 한동원 영화평론가. 병아리감별사 업무의 핵심이 병아리 암수의 엄정한 구분에 있듯, 영화감별사(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닌 감별사)의 업무의 핵심은 그래서 영화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에 대한 엄정한 판별 기준을 독자들께 제공함에 있다는 것이 이 코너의 애초 취지입니다. 뭐, 제목이나 취지나 호칭 같은 것이야 어찌 되었든,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영화보기에 극미량이나마 보탬이 되자는 생각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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