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한달이었다. 그나마 가뭄에 단비 같이 좋은 뉴스였던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정복 소식도 너무나도 일찍 빛을 잃었다. 축하 자리를 만들고 ‘짜파구리’를 나눠 먹은 청와대의 이벤트 자체는 문제 될 게 없지만, 하필 바로 그때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으니 최악의 타이밍이라고 할 만했다. 청와대도, <기생충> 식구들도 속이 많이 상했을 테고 “지금이 한가롭게 짜파구리나 먹을 때냐”며 분노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봉준호 감독은 상을 받기 전에 우스갯소리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평가절하한 적 있다. 로컬, 즉 할리우드만의 잔치라고. 맞는 말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칸’, ‘베니스’, ‘베를린’ 등등 다른 영화제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은 결이 다르다. 로컬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반대로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는 물론이고, 같은 서구권 국가에조차 좀처럼 문을 열지 않는 미국의 자존심 같은 파티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식구들이 남의 나라 파티를 점령해버렸다. 하나도 아닌 4개 부문을. 심지어 각본상·감독상은 물론이고 대상 격인 작품상까지! 100년을 눈앞에 둔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순간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조차 한 사람이 각본상·감독상·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예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시간 넘게 자료를 찾다가 실패했다. 2003년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감독이 근접했는데 각본상이 아니라 각색상을 받았다. 전 부문을 합쳐 한 사람의 수상자가 하나의 영화로 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경우는 봉준호 감독이 확실히 최초다. 그 유명한 월트 디즈니가 4개의 트로피를 받은 적이 있으나 그때는 디즈니 영화 두편이 동시에 수상 후보였다. 역사상 최고의 흥행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캐머런조차 각본상·감독상·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적은 없다.
아쉬운 마음에 지난 편에 못다 한 아카데미 시상식 이야기를 풀어보았는데, 오늘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과 <마더>의 음악을 책임졌던 이병우 음악감독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는 촉망받는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겨우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베이시스트 조동익과 함께 그룹 ‘어떤 날’을 결성해 활동했다. 이때 남긴 음반 두장은 평론가들이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을 꼽을 때마다 늘 들어간다. ‘가을 아침’,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이 수록된 양희은의 <1991> 음반 전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해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피보디 음악원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치는 등 연주자로서의 수련도 최고 수준.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때는 이미 영화음악 감독으로 한참 활동하던 중이었다. 한재림 감독 연출에 박해일과 강혜정이 주연을 맡은 영화 <연애의 목적>(2005년)에서 처음 그의 음악을 접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보다 귀가 신경 쓰였다. 느슨한 라틴 리듬에 실린 간결한 현악 연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었다. 악기라고 해봤자 몇가지 안 되는 것 같은데 단단하다. 대체 이 오묘한 공간감은 뭐지? 들뜨면서 동시에 허망한, 사랑의 감정을 그대로 음악으로 옮겨놓은 솜씨라니! <연애의 목적> 이후 나는 이병우의 팬이 되었고 음악을 듣기 위해 그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영화를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화 홍련>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1번가의 기적> <그놈 목소리> <괴물> <왕의 남자> <마더> <해운대> <국제시장> <관상> 등 수많은 영화에 참여해 음악감독으로서 최고의 경력을 쌓았다. 기타리스트로서 솔로 음반도 발매하고 매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단독 공연도 펼치며 연주자로서의 본령도 잃지 않았다. 거기에 성신여대 실용음악과 학과장까지 맡았으니, 음악가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해발 8000m 정상의 자리에서 그는 폭풍에 휩쓸린다. <뉴스타파>가 처음 보도한 나경원 의원의 딸 부정입학 의혹에 연루된 것이다. 그의 책임을 중하게 보는 사람들은 연루 정도가 아니고 적극적 가담이었다고도 한다. 당연히 이병우 학과장은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엇갈리는 주장이 너무 많기에 여기서 다 설명할 수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분은 찾아보시길.
그 사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나는 판단을 미루고 그저 안타까움에 한숨 쉬었다. 예술과 정치는 모두 중요하지만 함께 먹으면 독이 되는 음식이기도 하다. 예술가도 당연히 정치적 소신을 가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정치적 행동도 할 수 있고, 정치인과 인연을 맺을 수도 있지만, 딱 거기서 그치기가 쉽지 않다. 면만 건져 먹고 라면 국물을 남기기가 쉽나.
이병우가 오롯이 기타의 신이었을 때, 영화음악 감독으로 절정의 감각을 뽐내던 시절에 나를 매혹했던 그 노래를 다시 듣고 싶다. 이병우의 연주에 장재형이 노래한 ‘연애의 목적’.
이재익 ㅣ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정치쇼>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