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여럿 등장했다. 그룹 쿨 출신의 가수 이재훈, 엑소 멤버 첸, 리쌍의 길, 배우 성준까지 스타들의 ‘깜짝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결혼과 출산을 뒤늦게 고백했다는 건데 이 네명을 한꺼번에 묶은 기준부터가 이상하다. 길이나 이재훈의 경우에는 몇년 전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상황이고 첸이나 성준은 고백이 아니라 결혼 발표라고 해야 맞다. 굳이 덧붙이자면 혼전 임신 상태에서의 결혼 발표. ‘결혼도 충격인데…첸·길·성준·이재훈, 연이은 2세 고백’이라는 식의 헤드라인만 보면 헛갈리기 십상이다.
첸의 경우에는 탈퇴 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시끄러웠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미혼인 연예인이 여자친구가 생겼고 결혼을 한다는데 뭐가 문제지? 팬카페 글들을 찾아 읽어봤다. 요지는 기만. 솔로인 척 팬들을 속였고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폭탄선언을 했다는 거다. 콘서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사실을 알릴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혼 발표 직전에 개인 활동을 하면서 적지 않은 수익을 챙겼다는 비난도 있었다. 그냥 연예인도 아니고 아이돌그룹 멤버라는 점에서, 팬들의 연애 감정마저 팬심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속였다는 주장에는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첸의 행동이 탈퇴를 종용해야 할 만큼 문제인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듯하다.
길의 경우는 비난 여론이 더 거세다. 길은 여러차례 음주운전이 적발된 경력이 있다. 데뷔 초에 이미 음주운전 경력이 있었음에도 2014년에 또 음주운전을 했다. 0.1%가 넘는 만취 상태였다. <무한도전> 멤버로서 무한의 사랑을 받던 상황이라 대중의 배신감은 극심했고 그는 자숙의 시간을 가지는 듯 보였으나 길지 않았다. 이듬해에 광복절특사로 사면을 받은 뒤 <쇼 미 더 머니> 등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연예계에 복귀한 것이다. 그런데 2017년에 또 음주운전으로 적발된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더 높아져 0.165%. 윤창호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운전자의 수치가 0.135%였던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음주운전을 연거푸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까지는 누릴 수 있는 권리이나 다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해도 되는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복귀작으로 택한 방송이 가족을 공개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내용이다. 길의 경우는 결혼과 출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3번이나 음주운전을 일삼았던 전력이 더 문제다. 그러므로 다른 연예인들을 기사로 다루면서 길을 함께 포함하면 문제의 본질이 흐려진다. 이재훈의 경우엔 비난과 응원의 목소리가 엇갈린다. 그는 10년도 더 전에 결혼을 했고 아이 둘과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너무 오랫동안 팬들을 속였다는 점,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미혼남 행세를 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디까지나 사생활이니 존중해주자는 사람들도 있다. 독자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즘 정치권에서는 직권남용, 일상생활에서는 감수성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성 인지 감수성을 비롯해 인권 감수성, 다문화 감수성 등 다양한 감수성 리스트에 사생활 감수성도 추가하고 싶다. 일반인들에게는 별 해당이 없겠으나 연예인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고민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 굳이 그래야 하냐고? 파도가 바다의 일이고 빨리 뛰는 것이 육상선수의 일이듯, 팬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 연예인의 일이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엔터테이너. 노래, 개그, 연기 등 여러 재주로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본질이며 거의 유일한 직업윤리다.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처벌은 받지 않는다 해도 직업윤리를 저버리면 욕먹을 각오 정도는 해야지. 반대로 팬의 입장에서도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도를 넘는 욕지거리로 아까운 별들 여럿을 꺼뜨리지 않았나?
첸이 속해 있는 엑소는 방탄소년단(BTS)과 함께 이 시대 최고의 아이돌이다. 그 전에 리쌍은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해서 10년이 넘도록 왕성하게 활동한 힙합 장르 최고의 아티스트였다. 또 그 전에 쿨은 1990년대 탑골가요 시절의 국민가수. 공교롭게도 3세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뒤늦은 사적 고백으로 나란히 관심선상에 섰다. 싸잡아 비난할 일도 아니고 같이 묻어갈 일도 아니다. 모래나 바위나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라는 말은 영화 대사로나 멋질 뿐, 바위가 모래보다 무겁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숨은 명곡 하나 추천하고 글을 마칠까 한다. 리쌍의 여섯번째 앨범에 실린 ‘캐러솔’이라는 곡이다.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고막에 내리꽂히는 느낌인데, 지금 들어보니 마치 길이 대중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난 여태 사랑을 내 멋대로 했었지. 너는 항상 나를 믿어줬으니. 난 이제야 너만을 바라보고 싶은데 내 곁에서 멀리 떠나 버렸네.”
이재익 ㅣ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정치쇼>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