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어른이 된 X세대 노는 형 - 박진영②

등록 2019-04-12 14:12수정 2019-04-14 18:42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회에 가수 박진영을 다뤘다면 이번 회는 제작자로서 박진영을 이야기해본다. 그의 첫 기획이 지오디(god)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처음으로 내놓은 가수는 진주였다. 디스코 명곡 ‘아이 윌 서바이브’를 리메이크한 ‘난 괜찮아’가 데뷔곡. 10대인 소녀가 자그마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폭발적으로 내지르는 창법이 인상적이어서 꽤나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1999년, 그 유명한 ‘어머님께’가 실린 음반으로 지오디가 데뷔한다. 에이치오티(HOT)와 젝스키스가 양분하고 있던 남자 아이돌 각축장에서 지오디는 순식간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21세기에 들어와서 박진영은 월드스타 ‘비’를 데뷔시켰다. 그때 비의 인기는 대단했다.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은 최초의 가수였고 할리우드로 넘어가서 영화도 여러편 찍었다. 국내에서도 배우로 활동했는데 최근작은 총제작비 150억원의 대작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언젠가부터 비의 커리어가 잘 풀리지 않는 것 같고 뭔가 대중이 외면하는 느낌인데, 나만 그런 걸까? 기분 탓이겠지? 박진영은 비에 이어 노을이나 임정희같이 가창력 뛰어난 가수도 여럿 발굴했다. 그리고 제작자로 나선 지 10년 만에 걸그룹 원더걸스를 선보인다.

박진영, 그리고 제이와이피(JYP)라는 회사에서 원더걸스의 존재는 단순한 소속 아티스트 이상이다. 원더걸스의 엄청난 성공은 작곡가이자 제작자로서 박진영의 지평 자체를 넓혀주었고 급기야 그는 ‘놀라운 소녀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참 열심히 뛰었는데, 고생에 비하면 우리나라 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에 진입했다는 점 정도를 빼면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많은 이가 이 시절을 박진영의 암흑기라고 평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때의 뼈아픈 경험이 지금까지 제이와이피가 건재할 수 있었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정말로 똑똑한 사람은 실패했을 때 더 많이 배우는 법.

박진영을 이야기할 때 방시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로 유명하지만 원래 그는 박진영의 파트너였다. 제이와이피 소속 작곡가로서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뒤 독립하여 방탄소년단을 만든 것이다. 지난 회에 박진영이 엑스세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했다고 썼는데, 그렇다면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아티스트는 누굴까? 바로 방탄소년단이다.

기성세대 아재로서 지금의 청년세대를 볼 때 가장 안타까운 점은 절대다수의 아이들이 자신을 소수자로 여긴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다. 나 잘났다고 외치던 엑스세대와 정반대다. 요즘 아이들은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로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기는 이를 일컫는 신조어) ‘아싸’(‘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인싸’의 반대)로 또래집단의 구성원들을 구분한다. 인싸에 속하는 아이들은 반에서 겨우 몇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아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다수를 차지하는 아싸들이 스스로를 소수자 혹은 ‘찐따’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필자를 비롯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가진 자들, 힘센 자들, 잘난 사람들이 특혜를 누리고 부와 권리를 독점하고 세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감출 도리가 있나. 하루가 멀다고 재벌, 정·관계 유력인사, 유명 연예인들의 비리 사건들이 터지는데. 그들이 얼마나 부당한 특혜를 누리고 더러운 카르텔을 유지했는지 까발려지고 있는 이 마당에, 아이들에게 이 세상이 공정하다고 말할 자신이…, 적어도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그동안 스스로 꽤나 뻔뻔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 뻔뻔해지진 못하겠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정신은 공정함이다. 이미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누구든 어느 분야에서건 성별, 출신, 소속에 상관없이 공평한 기회를 누려야 한다. 이른바 신인 아이돌그룹으로서 방탄소년단이 겪어야 했던 설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거대 기획사와 방송국이 쌓아 올린 그들만의 장벽 앞에서 방탄소년단은 좌절하지 않았다. 팬들과 연대하여 벽을 넘었다. 세계를 정복했다.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서 거둔 아싸들의 승리다. 그들은 음악과 춤 그 외의 다양한 소통을 통해 시대정신을 전하고 있다. 움츠러들지 말라고, 너의 목소리를 내라고. 방탄소년단의 리더 아르엠(RM)이 무려 유엔 총회에서 했던 뭉클한 연설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연장선상에서 박진영을 보면 다행스럽다. 20년 전에 엑스세대 시대정신의 상징이었던 그가 성장해 올바른 어른의 구실을 해주고 있기에. 박진영을 둘러싼 논란도 없는 건 아니지만, 거대 기획사의 수장으로서 어린 아티스트들에게 인성과 예의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직원들도 공정하게 대하려고 애쓰는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최근 추악한 사건들과 엮여 비난받고 있는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와 대비되어 더욱 그렇다. 끼 많은 사람은 부지런하기 어렵고, 끼 많은 사람이 도덕적이긴 더 어려운데 박진영은 드물게도 그러하다.

그런데도 난 세상 최고 날라리처럼 춤추고 노래할 때 박진영이 제일 멋있어 보인다. 오랜만에 진영이 형님 노래 한곡 듣고 가자. ‘스윙 베이비!’

에스비에스 피디, 정치쇼 진행자
이재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소방관’ 곽경택 감독 호소 “동생의 투표 불참, 나도 실망했다” 1.

‘소방관’ 곽경택 감독 호소 “동생의 투표 불참, 나도 실망했다”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2.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이승환, 13일 윤석열 탄핵 집회 무대 선다…“개런티 필요 없다” 3.

이승환, 13일 윤석열 탄핵 집회 무대 선다…“개런티 필요 없다”

탄핵 힘 보태는 스타들…“정치 얘기 어때서? 나도 시민” 소신 발언 4.

탄핵 힘 보태는 스타들…“정치 얘기 어때서? 나도 시민” 소신 발언

우리가 지구를 떠날 수 없는, 떠나선 안 되는 이유 5.

우리가 지구를 떠날 수 없는, 떠나선 안 되는 이유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