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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슬픈 좀비’ 명작을 안겨준 작가, 김은희

등록 2019-02-04 21:08수정 2019-02-04 21:14

②설날, 업어주고 싶은 사람 / ‘킹덤’ 작가

일상에 쉼표가 찍히는 연휴엔 생각나는 사람들 있다. 보고 싶은 사람, 얘기하고 싶은 사람, 고마운 사람, 안아주고 싶은 사람…. <한겨레> 문화팀이 그동안 스크린에서, 무대에서, 또는 인터뷰에서 만났던 이들 중에 골랐다. 만나서 참 좋았던 사람, 깨달음을 준 사람, 감동을 준 사람, 나를 울린 사람. ‘업어주고 싶은 사람들’을 소개한다.

고양이를 안고 있는 ‘포근한 사람’ 김은희. 씨네21
고양이를 안고 있는 ‘포근한 사람’ 김은희. 씨네21
“좀비가 울부짖는 모습이 슬펐어요.” 이 말을 건네자 김은희 작가의 눈에 순간 눈물이 맺혔다. 지난 1월 28일 있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인터뷰 자리에서다. 공식 인터뷰가 끝난 뒤 다시 물었다. “작가님 좀전에 우신 거죠?” 그는 이렇게 답했다. “김성훈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시청자들이 좀비를 보며 슬픈 감정을 느꼈으면, 그것만은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획 의도를 알아봐주시니 순간 울컥하더라고요.”

좀비를 보면서 슬픈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김은희 작가에게 ‘까방권’을 주려는 이유와도 닿아있다. 좀비를 소재로 민초들의 아픔을 실감나게 표현한 점이다. “사람들에게 좀비가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슬퍼보이는 대상이었어요. 다른 욕망들은 모두 거세된 채 식탐만 남은 그들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어떻게 그려질까요. 배고픔에 지쳐있던 민초들이 그런 병에 걸린다면….” 그는 “양반들이 좀비가 되어 백성들을 공격하면, 그들은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물려죽고만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봤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래서 <킹덤>에서는 가슴을 후벼파는 당시 시대상이 반영된 대사와 상황들이 많다. 비로소 좀비가 되어서야 양반도, 상놈도 없는 평등한 존재가 된다는 역설도 담겨 있다.

<킹덤>만이 아니다. 김은희 작가의 작품에는 세상을 바로잡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약자를 위하고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려는 의식을 갖고 대본을 쓴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2016년 <시그널>(티브이엔)만 봐도 그렇다. 범죄수사드라마에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장기미제사건’들을 다뤘다. ‘박나리양 유괴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등이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5년 이상 미제 사건은 2015년 기준 256건에 달한다. 2015년 살인사건 공소시효는 폐지됐지만, <시그널> 이후 과거 억울한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한 울분이 시청자들 사이 들끓었다.

<킹덤>의 감독, 배우와 함께. 김성훈 감독(왼쪽부터), 류승룡 배우, 김은희 작가, 주지훈 배우. 넷플릭스 제공
<킹덤>의 감독, 배우와 함께. 김성훈 감독(왼쪽부터), 류승룡 배우, 김은희 작가, 주지훈 배우. 넷플릭스 제공
김은희 작가가 장르물을 쓴다는 점도 그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이유다. 2010년 남편인 장항준 감독과 함께 쓴 <위기일발 풍년빌라>(티브이엔)를 시작으로 2011년 <싸인>(에스비에스), 2012년 <유령>(에스비에스), 2014년 <쓰리 데이즈>(에스비에스)를 썼다. 지금은 장르물이 환영받지만, 2016년 <시그널> 방영 전까지도 방송사들은 인색한 반응을 보였다. 장르물은 협찬도 받기 힘들고, 중국 등 국외 판매도 어려워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꾸준히 장르물에 도전하며 장르다양화에 일조했고, <시그널>이 기폭제가 되어 지금의 장르물 전성시대를 열었다. 장르물은 드라마 작가가 형사가 돼야 한다. 취재도 어려워 일반 드라마보다 발로 뛰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돈’과 ‘인기’를 좇는다면 사실 도전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역량이 안 되면 쓸 수가 없다.

인간적으로도,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김은희 작가를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는 드라마 작가로 성공하면서 큰 돈을 벌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사랑해줘서 번 돈을 그는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는다. 연예인들이 말하는 ‘선한 영향력’을 그는 남몰래 행사하고 있다. 그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밝힐 수는 없지만, 돈을 잘 쓰는 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반지하에서 쌀한톨 없이 지냈던 시절에도 나는 너무 즐거웠다”고 말한다. 돈을 벌어들이는 인기 작가가 됐지만, 그 행복했던 시절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 모든 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김은희가 됐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일까 김은희 작가한테서는 ‘내가 누군데~’라는 스타 의식을 찾아볼 수가 없다. 한결같이 선한 모습은 유명해지고 나면 달라지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 바닥을 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작품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을 테지만, 작품도 품성도 의롭고 따뜻한 김은희 작가를 격려하는 의미에서 2019년 구정 연휴 <한겨레>가 ‘까방권’을 증정한다. 앞으로도 쭈~욱 좋은 작품이 쏟아지기를.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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