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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원한 까방권을 준다, ‘좋은 사람’ 정우성

등록 2019-02-03 10:24수정 2019-02-04 11:11

①설날, 업어주고 싶은 사람

일상에 쉼표가 찍히는 연휴엔 생각나는 사람들 있다. 보고 싶은 사람, 얘기하고 싶은 사람, 고마운 사람, 안아주고 싶은 사람…. <한겨레> 문화팀이 그동안 스크린에서, 무대에서, 전시장에서, 또는 인터뷰에서 만났던 이들 중에 골랐다. 만나서 참 좋았던 사람, 깨달음을 준 사람, 감동을 준 사람, 나를 울린 사람. ‘업어주고 싶은 사람들’을 소개한다.

최근 운 좋게도 배우 정우성을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는 한 번 입 밖에 낸 약속은 꼭 지켰고, 늘 정중하고 겸손하며 사려 깊었다. ‘연예인의 연예인’이라는 수식어처럼 그저 잘 생긴 배우로만 여겼던 정우성에 대한 생각이 점차 바뀌었다. ‘난민 문제’에 대한 험악한 여론에도 올곧게 자기 목소리를 냈던 그는 아이스버킷챌린지, 소방관 GO챌린지, 제주 4·3 동백꽃 배지 캠페인, 노플라스틱 챌린지, 입양문화 개선 캠페인, 친일 역사청산 문제까지 사회적 활동 반경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이런 문제들에) 동참하는 것 자체가 나의 삶도 바꾸어 놓는다”며 “내가 나이를 잘 먹어가고 잘 살면 후배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얼굴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잘 생긴 배우 정우성. 그에게 ‘영원한 까방권’(까임방지권)을 약속하며, 설 연휴 독자들에게 그와의 최근 인터뷰를 전한다.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우성은 좋은 사람입니까?”

최근 영화 <증인> 개봉(13일)을 앞두고 만난 배우 정우성에게 던진 첫 질문이다. 영화 속에서 그가 연기한 변호사 순호도 같은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정우성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는 사람, 그 정도가 맞는 표현인 듯하다”며 “어떤 고민을 하느냐가 한 사람의 사고를 결정한다. 영화 속 순호가 ‘노력해 볼게’라고 답하는 것처럼 나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순호와 나는 비슷하다”고 했다.

영화 <증인>은 한 때 민변 활동을 하며 국가보안법 폐지 등 사회활동에 열성적이었던 순호가 대형 로펌 ‘리앤유’로 자리를 옮기면서 맡게 된 살인사건에서 출발한다. 국선변호사로 살인 용의자 미란(엄혜란)을 변호하게 된 순호는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고등학생 지우(김향기)를 만나게 된다. “미란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지우의 증언이 신빙성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지우와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순호. 그러나 순수한 지우의 세계를 차츰 이해해 가면서 순호는 ‘출세’와 ‘안온한 삶’을 꿈꾸며 현실과 타협했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앞서 <더 킹>, <강철비>, <인랑> 등에서 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을 맡았던 정우성은 이번 영화에서 힘을 빼고 무게감을 내려놓은 일상의 연기를 펼친다. “센 캐릭터를 몇년 연이어 해서 일상의 연기에 대한 갈망이 컸나 봐요. 이 시나리오를 받는 순간, 알겠더라고요. 센 캐릭터는 여러 의도와 계산을 해야 하는데, 이번 역할은 어떤 부분도 디자인할 필요가 없었어요. 순호의 감정을 자연스레 좇아가면 됐거든요.” 양복에 백팩을 멘 영화 속 순호처럼, 인터뷰 내내 정우성은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변호사가 너무 잘 생겨서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고 싶을 지경’이라고 농을 던져봤다. “잘 생겼다는 건 굉장히 주관적인 이야기잖아요? 물론 정우성이 잘 생긴 건 객관적인 거고. 하하하. 변호사라는 직업군에 대한 편견 아닌가요? 신체적 특징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제가 표현하는 정서와 캐릭터에 집중해주세요.” 농담과 진담을 섞은 재치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증인>은 정우성과 김향기가 17년 만에 다시 만났다는 사실로도 화제가 됐다. 생후 29개월에 함께 베이커리 광고를 찍었던 김향기와의 재회에 대해 정우성은 “온전한 배우 김향기를 만났다”고 표현했다. “사실 옛날 기억이 잘 안 났어요. 얘기를 듣고 나니 슬쩍슬쩍 과거 이미지가 겹치더라고요. 작업하는 동안 자신이 캐릭터(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를 연기하는 방식이 현실에 존재하는 비슷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계속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배우구나 생각했어요.”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속 순호는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정우성 역시 옳다고 믿는 ‘난민 인권 문제’에 앞장서면서 그간 쌓아온 ‘안티 없는 배우’라는 이미지를 포기해야 했다. “순호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순 없겠죠. 사실 제가 안티 없는 배우였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저는 오히려 저와 반대되는 의견을 많이 듣게 됐어요. 충돌하는 의견이 있을 때, 반대 의견도 인정해야죠. 합의된 결론에 이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요. 그리고 살면서 무엇이든 연연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아요. 제가 받은 것 중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으니 연연할 필요가 없죠.”

순호와 정우성의 공통점은 또 있다. “선을 보라”는 아버지의 재촉을 받는 순호처럼, 정우성도 설날이 두려운 싱글이다. 설 연휴엔 뭘 하냐고 물었다. “기자님, 이미 ‘결혼하라’는 닦달을 당하는 정우성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서 짓궂게 질문하시는 거죠?”라며 호탕하게 웃는 정우성. 영원한 공공재로 남아달라는 당부에 “그 영양가 하나 없다는 공공재를 말하는 거냐. 혼자 늙으면 누가 책임지냐”고 하는 걸 보니, 결혼을 하긴 할 모양이다.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라면 누구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데, 영화 <구미호>(1994)로 데뷔한 이후 25년째 톱스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우성. 그 비결을 물었다. “글쎄요. 흥행의 꼭짓점을 안 찍어서? 하하하. 제가 천만 영화를 못 해봐서 아직 정우성은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봐 주시는 것 아닐까요? 천만은 멋진 숫자죠. 하지만 천만 영화만을 좇을 순 없어요. 300만~500만 영화가 많아져야 영화산업이 더 튼튼하고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따뜻한 영화의 엔딩을 지켜보며 줄곧 들었던 현실적 의문을 정우성에게 던져봤다. 지우와의 만남 이후 결국 순호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글쎄요. 지우라는 대상을 통해 자신의 초심을 돌아볼 수 있게 되면서 순호는 진정한 자아를 찾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민단체로 가든, 어디로 가든 훨씬 더 자유롭고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요?” 대답 속에서 앞으로도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올곧은 길을 가리라는 배우 정우성의 다짐 또한 읽힌다.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증인> 배우 정우성.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이런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증인> 개봉을 앞두고 가진 또 다른 인터뷰에서 배우 염정아의 연기를 극찬하며 “꽃은 지지 않는다는 걸 온몸으로 입증했다”고 평가한 것에 대해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정우성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성차별적 표현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자신의 실수를 곧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 있는 모습에 어찌 까방권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전도연과 함께 촬영을 마친 차기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감독 데뷔를 목표로 열심히 각색 중이라는 사극 액션, 2020년쯤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정통 멜로 드라마까지…. 정우성이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를 온 마음(사심)을 다해 응원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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