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즈음, 안타까운 죽음이 줄을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필자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을 무려 7년 동안 애청해 온 청취자가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일면식도 없지만 젊은 노동자 김용균 씨의 억울한 죽음도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필 마지막 날에는 정신의학과의 큰 별 임세원 교수가 본인이 진료하던 환자의 칼에 찔려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이 겨울을 더욱 슬프게 만든 또 하나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지난 12월 27일 영면에 든 드러머 전태관, 그리고 그의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이 오늘 칼럼의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록음악의 중흥기라면 보통 1980년대 중반을 꼽는다. 시나위와 백두산, 블랙신드롬 등이 합을 겨루던 헤비메탈 장르도 만개하기 시작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었던 대중가요에서는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이 연주의 수준을 전례 없이 끌어올리던 시절이었다.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은 바로 그때 탄생했다. 결성 초창기 멤버는 그야말로 전설의 레전드. 기타와 보컬에 김종진, 키보드에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의 천재 싱어송라이터 유재하, 베이스에는 후에 ‘빛과 소금’을 결성하는 장기호, 그리고 드럼에 전태관. 정말 면면만 봐도 ‘와우!’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진용이었다.
위대한 탄생이 조용필과 무대에 섰듯이 봄여름가을겨울은 ‘신촌블루스’ 출신의 보컬리스트 김현식과 함께 했다. 이 멤버들로 바로 그 유명한 김현식 3집을 만들었다. <비처럼 음악처럼>, <가리워진 길> 등이 수록된 이 음반은 지금까지도 가요 역사의 명반을 논할 때 빠지지 않은 걸작이다. 음반이 발매되기 직전에 유재하는 솔로 음반을 만들겠다고 그룹을 탈퇴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역시 명반 중에 명반으로 꼽히는 유재하 1집이다. 그야말로 천재들의 영감이 뒤엉켜 분출되던 시기였달까.
우리나라 최고의 실력파 그룹인 위대한 탄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모두 거친 천재 뮤지션 유재하는 겨우 2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몇 년 후 맏형 격인 김현식도 뒤를 따랐으니, 남은 멤버인 김종진과 전태관에게 죽음이란 늘 저만치 서성거리는 수상한 그림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둘은 2인조 체제로 봄여름가을겨울을 재편하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너무나도 걸출했던 다른 멤버들이 빠졌지만 둘 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이력에서 알 수 있듯 연주자로서의 실력은 둘 다 최고 수준이었다. 김종진의 기타와 전태관의 드럼은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렸다. ‘어떤 이의 꿈’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니 이 노래가 가요라고? 지금 들어도 탄성이 나온다. 정박과 엇박을 넘나들고 강약 조절이 완벽한 드럼 위에 펑키한 기타리프가 얹히고 그 사이사이 군침 도는 신디사이저 양념을 뿌렸다. 그 노래 한곡만으로도 봄겨울가을겨울의 실력은 유감없이 증명된다. 퓨전 재즈에 기반을 두었으나 음악의 폭이 무척 넓었다. 강렬한 하드록도 곧잘 연주했다. 큰 형님 김현식으로부터 전수 받은 것 같은 블루스 필이 두드러지는 곡도 있고, 천재 발라더 유재하의 맥을 잇는 노래들도 있다. ‘어떤 이의 꿈’, ‘아웃사이더’,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이 세곡을 이어서 들어보면 같은 그룹의 노래들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다.
노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국민가요의 반열에 오른 ‘브라보 마이 라이프’도 봄여름가을겨울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다. 한국 록음악의 시조새라고 할 만한 신중현의 노래 ‘미인’을 다시 해석한 곡도 꼭 들어보시고,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봄여름가을겨울’도 정말 좋다. 화려한 연주에 비해 김종진의 보컬은 투박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기교가 없다. 연주를 가리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더 힘을 빼고 부르나 싶기도 한데, 그 심심함이 또 매력이다. 노래 솜씨가 없는 분들이 노래방에서 부르기엔 최고다. 못 부를수록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종진 형님 죄송합니다.
전태관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동료와 후배들의 탄식이 줄을 이었다.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 내용. “그가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뮤지션으로야 말할 것도 없고, 친구로서 선배로서 더할 나위 없는 인품을 지녔다고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같이 일해본 적은 없어도 전태관과 실제로 오랜 세월 함께 했던 동료들을 많이 아는데, 지금껏 한 명도 나쁘게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는 점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본인이 가기 몇 달 전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죽음을 앞두고 있던 그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전태관의 소울메이트인 김종진은 홀로 봄여름가을겨울 활동을 이어간다. 고인을 추모하는 공연도 하고 크고 작은 행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가늠조차 알 되는 슬픔을 딛고 힘을 내어준 김종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독자 여러분들도 함께 응원해주시길.
에스비에스 피디 이재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