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다 갔다. 직업상 한 해를 정리하는 이벤트를 여러 개 기획해야 한다. 방송국 피디(PD)이자 진행자로서 2018년 10대 사건, 올해의 인물 등등을 선정하는 특집을 꾸며야 한다. 연말 특집 공개방송도 있다. 장수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 진행자로서 ‘올해의 영화’ 어쩌고 특집도 곧 녹음하겠지. 소설가로서 ‘올해의 소설’을 뽑아달라는 한 대형 서점의 요청은 정중히 거절했다. 감히 올해의 소설을 뽑기에는 올해 독서량이 너무 빈곤했기에.
그리고 지금 ‘아재 음악 열전’ 칼럼에서 2018년 한 해를 결산해보고자 한다. 이름하야 ‘2018년 아재뮤직 어워즈’. 올 한 해 동안, 10대 20대 쌩쌩한 청춘들이 판치는 음악시장에서 고군분투한 ‘어른 뮤지션’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이다. 대상은 우리나이로 30살 이상. 심사위원은 나를 비롯한 9만8000명의 뇌피셜 투표인단.
먼저 ‘병역 상’. 올 한 해 국방의 의무로 가장 이슈가 된 아티스트에게 주는 상이다. 영예의 수상자는 그룹 빅뱅! 지드래곤, 태양, 대성까지 세 명이 모두 올해 입소하고 군복무 중이다. 벌써 30대에 들어선 막내 멤버 승리도 내년 2월에 입대 예정이라고 한다. 지드래곤의 경우 특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사실 제일 먼저 입소한 탑이 가장 문제였다. 의경으로 복무하던 중에 대마초를 피운 사실이 드러나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현재는 용산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곧 제대를 하겠지만 함께 대마초 스캔들에 휩싸였던 한서희 양이 워낙 활발하게 발언을 하는 스타일이라 걱정도 된다. 탑이 뭐 좀 할라치면 ‘어딜 기어 나와’ 식의 발언을 쏟아내니, 탑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할 듯.
웃픈 에피소드 하나. 탑과 한서희의 대마초 스캔들이 한참 시끄럽던 즈음이었다. 탑의 열성팬이 남긴 댓글이 화제였다. 탑 본인이 혐의를 부인하며 대마초를 피지 않았다고 주장하던 상황에서 그 팬이 어느 뉴스 기사 밑에 이렇게 댓글을 남겼다. ‘우리 오빠가 대마초 안 피웠다고 하잖아요! 제발 부검 결과를 지켜봅시다!’ 부검이라… 흠흠.
두 번째로 ‘여우주연상’. 영예의 수상자는 레이디 가가! 가수한테 무슨 여우주연상이냐고? 마돈나의 뒤를 잇는 쎈 언니 레이디 가가가 올해는 영화의 주연을 꿰찼다. 그저 배역을 맡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성과를 보여주었다. 마치 레이디 가가의 인생을 담아낸 것 같기도 한 음악 영화 <어 스타 이즈 본>은 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그는 상대역을 맡은 브래들리 쿠퍼라는 베테랑 배우에 전혀 꿀리지 않고 여주인공 역을 소화했다. 영화도 정말 재미있고, 남자 주인공인 브래들리 쿠퍼가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후일담도 풍성하지만 각설하고, 우리는 레이디 가가의 영역확장에 주목해야겠다. 생고기를 드레스처럼 몸에 두르고 무대에 오르는 등 패션과 기행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그런 이미지로만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티스트로서 그의 위치는 이미 최정상급이다. 비틀즈 이후 최초로 3연속 <그래미 시상식> ‘올해의 음반’ 후보로 올랐으며 유튜브 10억 뷰, 페이스북 팔로워 1000만 명을 최초로 달성한 인싸 중의 ‘슈퍼핵인싸’라고 하겠다. 이제 배우로서의 활동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우주연상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앞의 상 두 개는 몸 풀기. 이제 ‘대상’이 남았다. ‘2018 아재뮤직 어워즈’의 대상 수상자는 그룹 퀸이다. 국내에서만 관객 800만을 가뿐히 넘어 장기 흥행 중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 광풍을 몰고 왔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무려 4회에 걸쳐 칼럼을 연재하고, 이제 그만하라는 <한겨레> 에디터의 충고에 마지못해 마무리를 했던 필자는 스스로 선견지명을 칭찬한다. 역시 그럴 만 했어. 한 회 정도 더 썼어도 좋았을 거야.
학창시절 퀸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 우리 아재-언니들이 이 영화에 열광한 이유야 뭐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뒤에 태어난 10대, 20대 젊은 세대들까지 이 영화에 열광한다는 점은 정말 흥미로우면서도 짜릿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는데, 난 영화 속 대사를 빌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 우리 가슴 속엔 겁에 질린 꼬마가 살고 있었던 거야.”
영화에서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니는 매니저가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프레디 머큐리를 슈퍼 스타라고 칭송하지만, 가까이서 본 프레디는 그저 ‘겁에 질린 파키스탄 꼬마’에 불과하다고.
어쩌면 프레디 머큐리는 평생을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인종과 성 정체성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부당한 비난과 편견에 맞닥뜨릴 때마다 느꼈을 공포를 노래를 통해 이겨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프레디 만큼은 아니지만 두려워하고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의 부족함이 드러날까봐 두렵고, 성취하고 싶은 것을 끝내 이루지 못할까봐 두렵고,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렵다. 센 척하고 바쁜 척 하고 즐거운 척 하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엔 겁에 질린 ‘울진 꼬마’가 살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가? 만약 여러분의 가슴 속에도 불쌍한 꼬마가 있다면, 퀸의 음악을 들어보시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시라. 진정한 위로를 찾기 어려운 이 시대에, 무덤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위로해 준 프레디 머큐리에게 올해의 대상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 정말 고맙다는 말과 함께.
독자님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겸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