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예고편 갈무리.
1973년 데뷔한 영국의 록그룹 ‘퀸’의 이야기에 세번의 칼럼을 할애했다. 오늘이 네번째. 승승장구하던 퀸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음악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조짐은 1978년에 발표한 7집 <재즈> 음반에서부터 드러났다. 이 음반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노래 ‘돈트 스톱 미 나우’의 제목이 천명하듯 이즈음부터 퀸은 명료한 비트와 파워풀한 창법을 내세운 록밴드로 완전히 변신한다.
음악과 창법뿐만 아니라 스타일도 극적으로 변했다. 데뷔 내내 긴 머리를 고수하던 프레디 머큐리가 군인처럼 짧게 머리를 자르고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의상도 타이츠 위주의 요상한 복장에서 가죽옷과 응원단장(?) 스타일로 바뀌었다.
직선적인 팝
과 록 스타일로 선회한 퀸의 음악은 미국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기존 팬들에게는 욕을 먹기도 했다. 1982년에 발표한 10번째 음반 <핫 스페이스>는 참사 수준. 대중과 평론가들 양쪽에서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물론 이 음반에 실린,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부른 ‘언더 프레셔’는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명곡이다.
정신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처음으로 좌절을 경험한 퀸은 2년 동안 휴식기를 보내고, 새 음반 <더 워크스>를 통해 전작의 참패에서 벗어났다. 레이디 가가가 예명을 따왔다고 밝힌 노래 ‘라디오 가가’, ‘아이 원트 투 브레이크 프리’ 등의 노래는 80년대 퀸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들어봐야 할 노래들. 신시사이저를 전면에 내세운 밝은 팝 사운드는 다음 음반 <어 카인드 오브 매직>으로 이어진다. 이 음반 발표 뒤 퀸은 매직 투어라는 타이틀을 걸고 전 유럽을 도는 엄청난 투어를 펼친다.
공연을 했다 하면 몇만명은 기본이고 20만명의 관중이 몰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시기의 공연 실황 영상을 보면 너바나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교황을 제외하면 20만명의 관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프레디 머큐리라고. 그의 가창력이 하향곡선을 그리던 시절이었음에도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연장에서 서로 좋은 자리를 다투다가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뉴스도 있고, 만삭의 산모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연장을 찾았다가 공연 중에 출산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 그러나 이 엄청난 투어는 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환하게 빛나는 촛불과도 같았다. 투어가 끝날 즈음, 프레디 머큐리는 병세가 악화되어 더 이상 어떤 공연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병의 이름은 에이즈.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린 시기를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증상이 매우 빠른 속도로 악화된 것만은 확실하다. 무대 위를 날아다니던 투어 뒤 겨우 몇년 만에 피골이 상접할 정도가 되어버렸으니. 그런데도 그는 노래만은 계속 부르고 싶어 했다. 멤버들도 뜻을 존중해 프레디의 몸 상태가 좋은 날에 스튜디오에 모여 짬짬이 곡을 만드는 방식으로 계속 음반을 작업했다. 그렇게 두장의 음반이 더 나온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예고편 갈무리.
프레디 머큐리 생전에 나온 마지막 음반의 마지막 곡 제목은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빠른 속도로 죽어가던 그를 생각하며 가사에 귀를 기울이면, 너무 비장해서 끝까지 듣기가 힘들 정도다. 지금도 내 눈이 촉촉해져버렸다. 오직 그만이 낼 수 있는 짜릿한 고음을 프레디는 쉴 새 없이 내지른다. 내가 죽더라도 쇼는 계속될 거야.
이 노래를 녹음할 당시 에피소드가 알려져 있다. 음반 녹음을 위해 멤버들이 스튜디오에 모였는데, 프레디의 건강이 너무 좋지 않은데다 하필 고음도 너무 많고 난해한 노래라 다른 멤버들은 눈치만 보고 있었단다. 상황을 눈치챈 프레디는 보드카를 들이켜고 짧은 욕설을 내뱉은 뒤 녹음실에 들어가 이 어려운 노래를 그냥 내질러버렸다고 한다. 들을 때마다 믿어지지 않는다. 이 목소리가 정말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목소리라고? 이 노래가 발표되고 겨우 한 달 뒤. 최고의 가수이자 작곡가, 그리고 못 말리는 사랑꾼이었던 프레디 머큐리는 세상을 떠났다.
퀸의 음악은 다양하다. 감미로운 사랑노래부터 호쾌한 로큰롤, 온몸을 전율시키는 대곡까지, 록밴드가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다 했다. 그러나 어떤 장르의 노래든 항상 핵심적인 감상은 같다. 열정. 그들의 모든 노래는 아무리 잔잔하다 할지라도 그 나름의 열정으로 가득하다. 보컬은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연주도 열정적이다. 제일 앞의 공간, 가장 뜨거운 온도를 프레디에게 양보할 뿐.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떠올리며 퀸의 노래를 들을 때면 마치 고층 건물 난간에 서 있는 것 같은 현기증마저 생긴다. 조금만 덜 열정적이었다면 조금 더 살 수 있었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몸을 불사를 만큼의 열정과 재능이 없으니, 다행일까?
무려 네편의 칼럼을 통해 퀸의 일대기를 정리해보았다. 아직 네편을 더 쓸 정도로 할 말이 많이 남았지만 여기서 줄이고, 개봉을 앞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남은 이야기를 맡긴다. 부디 영화가 잘 나와주기를.
에스비에스(SBS)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