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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북한 무대에 춤추는 미키마우스…“인민 호응도를 높여라!”

등록 2018-07-16 05:00수정 2018-07-16 13:02

[문화 100℃] 북한 공연·예술계는 지금
·
남북한 평화 무드가 무르익어가면서 북한 예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남북한 평화 무드가 무르익어가면서 북한 예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 바람이 불면서 공연계가 북한 문화를 ‘열공’중이다. 예술단체, 문화재단, 예술대학들이 앞다퉈 ‘북한 연극의 이해’ ‘21세기 북한 예술 양상’ ‘계승과 개혁: 새로운 북한의 문화예술’ 등의 강연과 세미나를 열고 북한 문화예술을 배우고 있다. 서울예술단이 진행 중인 ‘공연예술 남북교류 아카데미’ 수업에 참여한 안경모 연극연출가는 “어느 순간 북한과의 공연이 현실로 닥쳐올 거란 예감이 든다”면서 “남북이 정치적인 문제에 막혀 정서적인 교류가 부족한데 문화교류에 앞서 나 먼저 북한 공연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어 강의를 들었다”고 말했다.

선전선동 도구로 정치색 여전해도
‘인민성 높아야 효과 좋다’ 기조에
‘록키’ 주제곡 연주한 모란봉악단
김정은발 공연예술계 ‘혁신’ 한창

북 주민 정서에도 안맞아 사라진
‘집단체조’ 정권 70주년에 재등장

뮤지컬·오페라 섞은 ‘가극’ 활기
김정은 ‘산업화’ 독려 분위기 속
제조업 관련된 연극 부쩍 증가

공연계 사람들이 궁금한 건 과거가 아닌 현재다. ‘김정은 시대’에 어떤 공연이 이뤄지는지, 우리는 문화교류를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관심사다. 지난 봄, 우리 예술단이 13년 만에 평양에서 ‘봄이 온다’ 공연을 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가을에 서울에서 ‘가을이 왔다’ 공연을 제안한 상황에서 남북 문화예술 교류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2013년 6월 정전 60주년을 맞아 대규모 집단체조인 '아리랑' 공연이 평양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2013년 6월 정전 60주년을 맞아 대규모 집단체조인 '아리랑' 공연이 평양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 김정은 시대 문화예술 키워드는 ‘혁신’

북한의 문화예술은 철저히 노동당 주도하에 이뤄진다. 국가가 자금을 투자하기 때문에 예술가, 제작자들이 수익을 바라고 공연을 만들지 않는 게 상업성을 우선하는 남한과의 가장 큰 차이다. ‘혁명’이란 이름을 붙인 본보기성 공연예술들이 오랜 시간 재공연 되는 것도 특징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 장르별로 작품들을 꼽아 ‘4대 혁명연극’ ‘5대 혁명가극’ 식으로 분류했다.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김정은 시대의 문화 키워드는 “세계화, 다양화, 다색화”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김정은 정권 초기 출범 과제는 유일 혈통 체제의 정당성 확보, 혁신과 과학화를 통한 사회주의 문명국가 건설”이라면서 “이런 기조가 문화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김정은 시대 문화예술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집권 3년차였던 2014년 5월에 열린 ‘전국예술인대회’다. 당시 노동당은 김정은이 창단한 모란봉악단의 창조 기풍을 전 예술 분야가 배울 것을 강조했다. 공연에서 미국 영화 <록키> 주제가 등 외국곡을 연주하고, 디즈니 캐릭터를 등장시킨 모란봉악단은 ‘현대화’와 ‘세계화’를 의미한다. 이우영 북한 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선전선동도 효과가 좋아야 하는데 그게 대중성이라고 볼 수 있는 인민성”이라면서 “김정은은 인민 친화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문화예술 전반에서 모란봉처럼 혁신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과 관련된 연극이 부쩍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시멘트 증산을 노동자계급투쟁으로 그린 <혈맥>(2016), 황해제철련합기업 노동자들의 생산투쟁을 다룬 <붉은 눈이 내린다>(2017) 등이다. 박영정 한국관광문화원 예술기반정책연구실장은 “산업화를 독려하는 김정은 시대의 메시지가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멘트 증산을 노동자계급투쟁으로 그린 북한 연극 <혈맥>(2016). 연합뉴스
시멘트 증산을 노동자계급투쟁으로 그린 북한 연극 <혈맥>(2016). 연합뉴스
수만명이 동원되는 집단체조(매스게임)가 중단 5년만인 올해 다시 재등장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2002년에 첫 선을 보인 <아리랑>은 김정은 정권 2년차인 2013년에 뚜렷한 이유없이 중단됐다가 오는 9월9일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에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공연 제목이 발표되진 않았지만 <아리랑>보다 규모가 큰 <빛나는 내 조국>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교수는 “유치원생부터 동원돼 춤을 추는 집단체조는 이제 북한 주민들의 정서에도 맞지 않아 없어졌는데 정권 70주년을 맞아 북한 체제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다시 이런 이벤트가 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북한에선 노래·춤 섞인 가극 인기

북한에서 밴드 공연 다음으로 가장 대중적인 공연은 가극이다. 우리의 뮤지컬과 오페라의 중간 형식으로, 노래와 춤으로 이뤄진다. 오페라와 유사하나 아리아가 없고 대신 ‘방창’(무대 밖에서 해주는 노래)과 ‘절가’(정형시로 된 가사를 몇 개의 절로 나누어 동일한 선율에 담아 부르는 노래)를 접목했다. 박 연구실장은 “김정일이 무대미술에 ‘영화처럼’을 주문하면서 190분짜리 공연이 막이나 암전 때문에 끊어지지 않고 진행되는 ‘흐름식 입체 무대미술’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대표적인 5대 혁명가극으론 <피바다>, <꽃 파는 처녀>, <당의 참된 딸>, <밀림아 이야기하라>, <금강산의 노래>가 꼽힌다. 최근에는 일제경찰의 고문으로 두 눈을 빼앗기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외쳤다는 빨치산 부대원 최희숙을 다룬 혁명가극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를 띄우고 있다.

2012년 공연된 교예극(서커스) <춘향전>. 연합뉴스
2012년 공연된 교예극(서커스) <춘향전>. 연합뉴스
무용은 월북 무용가 최승희(1911~1967)의 춤을 뿌리로 삼았는데, 전투성이 짙고 선동하는 동작을 중시하다 보니 힘과 규모를 과시하는 특징이 있다. 함경북도예술단 무용수였다가 6년 전에 탈북해 최신아무용단을 이끄는 최신아 단장은 “현대적인 남한 무용과 달리 북한은 전통에 기반을 둔 민족무용을 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공식적인 4대 혁명무용은 1960~70년대에 제작된 <눈이 내린다>, <조국의 진달래>, <키춤>, <사과풍년>이다. 이와 함께 최승희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11년 재공연된 <사도성의 이야기>도 인기가 많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인민의 애국심을 그린 작품으로 1956년에 초연됐다.

서커스인 교예는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많이 거뒀다. 곡예에 스토리를 입힌 <춘향전> 등은 정치색이 없어 당장 한국에서 공연해도 무리가 없는 예술 분야 중 하나다.

북한에서 연극은 영화나 가극에 비해 크게 활성화되지 못한 편이다. 남한의 시트콤에 가까운 경희극 <산울림>은 김정일이 병석에 있으면서도 네차례나 관람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생산량을 늘리라는 당 정책에 따라 제대군인 황석철이 강원도 산간마을에서 산지를 개간한 이야기를 다룬다. 실수로 얼굴에 분을 하얗게 묻히거나 “암요, 암요~”하며 경쾌하게 노래하는 장면들이 웃음코드다. 연극 <오늘을 추억하리>는 먹고 살기 힘든 ‘고난의 행군’ 시절 이야기다. 시장 세를 내지 않기 위해 시장 밖 골목에서 장사하는 ‘메뚜기 장사꾼’ 등이 나온다. 살기가 나아진 지금은 ‘추억’을 되새기는 소재로 인기가 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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