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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월드컵과 노무현, 그리고 윤도현 (2)

등록 2018-07-07 05:00수정 2018-07-07 11:20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라디오 피디(PD)들은 종종 공개방송을 연출하기도 한다. 나는 유난히도 자주 공개방송을 나가는 편인데 얼마 전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팀의 첫 번째 상대였던 스웨덴과의 경기가 펼쳐지던 6월18일에도 거리 응원전을 겸한 공연을 연출했다.

이화여대 앞 공원에 마련된 무대에 두 시간 동안 인기 가수들이 우리 대표팀의 선전을 응원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주었다. 한국 펑크록의 자존심 ‘노브레인’에 이어 록밴드 ‘트랜스픽션’이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올랐다. 그들은 스스로를 ‘월드컵 때만 되면 돌아오는 밴드’라고 소개했다. 축구 경기가 열릴 때마다 응원가로 불리는 ‘승리를 위하여’라는 노래를 가진 그룹이어서인지 월드컵 밴드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트랜스픽션은 모든 면에서 만만치 않은 실력을 자랑하는 록그룹이다. 데뷔한 지 15년이 넘은 그들이 ‘월드컵 때만 되면 돌아오는 밴드’라며 자조할 정도로 지금 우리나라 가요계는 록음악의 불모지가 되어버렸다. 기타, 베이스, 드럼 대신 컴퓨터로 찍어내는 소리와 회사에서 기획한 가수들이 방송과 음원차트를 점령하고 있다.

아이돌 가수나 전자음악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난 빅뱅과 샤이니(특히 KEY)의 열렬한 팬이며 전자음악이 너무 좋아서 직접 만들기까지 하는 아마추어 디제이(DJ)다. 다만 청년들이 모여 땀으로 빚어내는 록음악이 시장에서 점점 밀려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마치 월드컵 열기가 식어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축구팬처럼 말이다.

2002년으로 돌아가 보면 록음악 시장의 상황도 많이 달랐다. 그 시절에도 아이돌 그룹의 인기가 대단했지만 록음악 역시 가요계에 엄연한 지분을 갖고 있었고 그 중심에 윤도현과 와이비(YB)가 있었다. 윤도현은 가수가 아닌 방송인으로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인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 티브이 프로그램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자기 이름을 걸고 진행을 맡았으며 <나는 가수다>에서도 역시 진행자로서 활약했다. 심지어 <한밤의 티브이 연예>까지 맡았으니 전문 진행자로 손색이 없었다.

연예인 윤도현으로서의 활동이 활발했던 탓일까? 윤도현의 음악이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웃기는 소리다. 대중음악이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욕을 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 게다가 윤도현은 처음부터 발라드도 거침없이 부르던, 소위 사랑 타령의 권위자였다. 그는 1994년에 밴드가 아닌 솔로 가수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1집 음반도 발라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데뷔 당시에도 반응이 좋았던 시즌 송 ‘가을 우체국 앞에서’와 나중에 뒤늦게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사랑 투(TWO)’가 모두 그 음반에 있다.

솔로 가수로서 윤도현과 달리 밴드로서 와이비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꽤나 넓은 편이어서 록발라드는 물론이고 강렬한 하드록 사운드도 잘 구사했다. 예능 프로그램의 주제곡이지만 ‘정글의 법칙’ 같은 노래는 창법이나 악기 세팅이 놀랄 만큼 하드코어 쪽으로 기울어있다. 2016년에 래퍼들과 협업해 내놓은 노래 ‘나이트메어’는 록밴드 와이비가 얼마나 멀리까지 나아갔는지를 보여준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5년에 와이비는 홀연 유럽으로 떠나 4개국 7도시를 도는 투어를 감행했다. 대단한 모험이며 도전이었다. 투어 버스에서 먹고 자며 한 달간을 버티던 그 시절은 다큐멘터리 영화 <온 더 로드>로 제작되었다. 요즘은 탕웨이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영화감독 김태용이 연출을 맡았는데 영상과 소리 모두 여러모로 거친 느낌이 든다. 와이비의 팬이라면 볼 만하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2017년, 윤도현은 공식석상에서 유럽 투어를 언급하며 찬란하게 실패한 도전이었다고 평가했다.

월드컵, 윤도현과 함께 2002년의 주인공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는 가장 빨리 식었다. 2006년 12월 6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5.7%대의 지지도를 기록했다.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나라가 망했다며 온 국민이 대통령을 욕하던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율보다도 더 낮다. 그의 가파른 지지율 곡선을 상기해보면 그의 인기가 얼마나 빨리, 또 차갑게 식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더 미안하다. 우리는 왜 그를 그토록 미워했을까?

이번에도 우리 대표팀은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4년 뒤에는 어떨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윤도현과 그의 밴드는 아이돌과 전자음악의 쓰나미 속에서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에게 전성기가 다시 올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노무현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 서툴고도 뜨거웠던 나의 청춘도 마찬가지. 다시 올 수 없다.

2002년. 나도 우리나라도 가장 젊었던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내레이션처럼 귓가에 울리는 문장이 있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한 구절을 흉내 내며 오늘의 칼럼을 마무리한다.

월드컵의 시절이자 노무현의 시절이었다. 상승의 시대이자 전복의 시대였고 록의 시대이자 윤도현의 시대였다. 찬란한 빛의 계절이면서도 멀리 어둠이 있었고 희망의 봄이지만 절망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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