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운동에 소질이 없다.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한다. 뭐라도 좀 배워보려고 하면 믿기 힘든 불운이 닥치기도 했는데 이런 식이다. 초등학교 때 태권도 도장에 다녔는데 라디에이터 모서리에 꼬리뼈를 찧고 실신해 잠시 기억상실증에 빠진 뒤 태권도와 이별했다. 중학교 때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테니스장에 등록했는데 배운 지 한 달도 안 되어 코치님이 피투성이 시체로 발견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심지어 코치님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레슨을 했던 학생이 나였기에 발가락 양말을 신은 강력계 형사들이 집에 들이닥쳐 식구들이 혼비백산하는 일도 있었다. 후덜덜. 그 사건은 치정으로 인한 살인으로 밝혀졌고 ‘청담동 삼익아파트 테니스 코치 살인사건’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무려 <엠비시(MBC) 뉴스데스크>에도 보도되었다. 당시 앵커는 백지연. 1989년 광복절에 생긴 일이다. 테니스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소년은 ‘청담동 페더러’의 꿈을 접고 라켓을 내려놓았다.
성인이 된 뒤에도 신은 나에게 운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수영을 막 시작했는데 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죽을 뻔했고, 마라톤을 준비하다가 왼쪽 무릎이 나가고, 인라인을 타다가 자전거와 충돌하고…. 난 평생 스포츠와는 인연이 없구나, 깨끗하게 마음을 비웠다. 반전은 방송국 입사 뒤에 시작된다.
국제스포츠 경기가 열리면 라디오 피디들도 출장을 간다. 국제방송센터 안에 라디오 스튜디오를 만들어놓고 피디(PD)가 직접 리포트를 하기도 하고 현장감을 살린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신입사원이었을 때 ‘아시안 게임’이 부산에서 열렸는데 뜻밖에도 내가 차출되었다. 당시 팀장이었던 선배님이 나를 뽑은 이유가 황당했다.
“재익이는 말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잖아.”
평소에도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던 터라 말을 잘한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인정. 그런데 응? 운동? 팀장님께 왜 내가 운동을 잘한다고 생각하시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
“딱 봐도 잘하게 생겼잖아.”
그런 이유로, 한 달 가까이 부산에서 지내면서 아시안 게임을 취재했다. 보통 국제경기 출장은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가기 때문에 한 번 다녀오면 다시 갈 일이 없다. 그런데 웬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또 갈 일이 생겼다. 담당하고 있던 프로그램에 협찬이 들어와 베이징 현지에서 방송을 할 상황이 된 것. 그렇게 또다시 국제방송센터에 발을 들였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2년 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출장자로 또 내가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에도 이유가 황당했다. 당시는 김연아가 최고 전성기를 맞으며 겨울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쇼트와 스피드 스케이팅 전력도 역대 최고였다. 고조된 분위기에 맞춰 다른 국제경기보다 더 제대로 현장을 담아내야 하니 이번만큼은 돌아가며 보내는 식의 출장이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피디가 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국제경기를 두 번 경험한 피디가 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세 번째 국제경기에 출장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여왕의 눈부신 비상도, 빙속 여제가 탄생하던 순간도, 모태범·이승훈의 질주도 모두 아직도 생생하다. 밴쿠버의 영웅들을 바로 눈앞에서 본 짜릿한 순간을 떠올리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한 달간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결심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월드컵 출장도 가자. 여름·겨울 올림픽, 아시안 게임, 월드컵까지 4대 국제경기를 모두 취재한 스포츠전문 피디로 거듭나자!
하지만 나는 너무 겁이 많았다. 2014년 월드컵이 열린 브라질이 치안이 불안하다는 소식에 바로 꼬리를 내렸고 브라질에는 후배 피디가 목숨을 걸고 다녀왔다. 올해 2018년 월드컵은 러시아에서 열린다는데, 러시아는 안전할까? 국제대회 3관왕으로 만족할까? 얼마 전에 끝난 평창 올림픽을 보면서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했다. 운동 젬병이던 소년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음악 얘기는 언제 나오냐고? 짧고 굵게 지금부터. 4대 국제경기가 열릴 때면 늘 공식 주제가가 선정된다. 그 외에도 각종 응원가가 불리며 스포츠의 감동을 배가한다. 내 또래의 아재들이라면 코리아나가 부른 1988 ‘서울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 잡고’를 떠올릴 테다. 2002년 월드컵 때 시청 앞을 쩌렁쩌렁 울리던 ‘오 필승 코리아’도 잊지 못할 노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공식 주제가가 실종되었다. 이번 평창올림픽 공식 주제가가 뭐였는지 아는 사람?
내가 꼽는 최고의 공식 주제가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컵 오브 라이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응원가다. 리키 마틴의 열광적인 노래를 들으면 20년 전 카투사 시절 미군들과 맥주를 마시고 소리를 지르며 월드컵을 보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고고고! 알레 알레 알레!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날뛰던 청춘의 여름이 되살아난다. 독자님들도 저마다 열광했던 응원가를 다시 들어보며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보시길.
에스비에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