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컬링장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15일 밤 <문화방송> 해설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면은 바뀌었다. 스피드스케이팅 1만미터 경기가 채 끝나기 전이었다. 마지막 6조에서는 최강자 스벤 크라머가 대기중이다. 우리나라 선수는 아니지만 유독 1만m와는 인연 없는 그의 질주는 이번 대회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이 핵심 경기를 앞두고 화면은 바뀌었다. 왜? 5조 경기가 끝난 뒤 이승훈 선수가 메달권에서 떨어진 게 확실시 됐기 때문이다. 3조에서 뛴 이승훈은 1위에서 점차 3위까지 밀렸고, 5조에 출전한 테드 얀 블로먼이 결승선에 들어오는 순간 4위가 됐다. 우리 선수가 메달권을 벗어났으니 더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평창겨울올림픽에서도 ‘편향 중계’는 여전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린 겨울올림픽이지만, 텔레비전만 틀면 경기중계는 한국 중심으로만 쏠릴 뿐 다른 나라 선수들간의 빅게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17일 아이스하키 라이벌로 꼽히는 ‘러시아 출신 올림픽선수(OAR)와 미국’의 명승부는 지상파 3사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모두 우리나라 선수가 나오는 쇼트트랙을 중계했기 때문이다. 평창겨울올림픽 시작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스키 스타 린지 본이 나오는 알파인스키 슈퍼대회도 생중계하지 않았다. 3사 모두 한국 선수가 나오는 남자 피겨를 내보냈다.
지난 19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에서 열린 평창겨울올림픽 스키점프 남자팀 예선에서 김현기 선수가 비행하고 있다. 김 선수의 경기 장면은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봅슬레이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를 중계하느라 텔레비전으로 볼 수 없었다. 평창/연합뉴스
그렇다고 우리나라 선수가 나오는 모든 종목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아니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컬링 등 메달 가능성이 높은 데 집중한다. 19일 우리나라 선수들이 출전한 스키점프 남자 단체팀 경기는 3사 모두에 홀대받았다. 봅슬레이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김현기 선수는 20일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시비에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올림픽 동안 점프 경기가 생중계된 적이 거의 없었다”며 “가족들이 티브이로 지켜보지도 못해서 서운하다”고 말했다. 스키점프는 참가국 12개 나라 중 12위를 차지했다. 스켈레톤처럼 메달권이었으면 이들을 모른척 했을까. 10일에도 <문화방송>은 ‘남북단일팀’ 여자아이스하키의 역사적 첫 경기를 단독중계했는데 쇼트트랙 결승전이 시작되자 내내 스위스에 밀리던 아이스하키 경기를 끊고 곧바로 쇼트트랙 중계로 넘어갔다.
방송사들의 ‘편향 중계’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는 한국팀이 결승에 오른 배드민턴 남자 단체전 경기도 중계하지 않아 12년 만에 금메달을 따는 감동의 순간을 시청자들이 함께하지 못했다. 광고 수익을 내려 시청률 높이기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지상파 관계자는 “올림픽 광고는 사전에 판매도 하지만, 시청률이 높거나 경기 결과가 좋으면 중간에 투입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상파 3사는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에서 남북아이스하키만 번갈아 중계하고, 나머지 종목은 각사가 알아서 내보낼 수 있는 자율 중계를 하고 있다.
하지만, 30년 만에 한국에서 겨울올림픽이 열리면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세계 유명 선수들의 멋진 경기와 다양한 종목의 재미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겨울올림픽은 15개 큰 종목 아래 세부종목 102개 경기를 펼치는데 그 많은 경기들은 대체 왜 볼 수 없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방송사가 인기 종목을 찾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방송사가 중계를 해야 해당 종목이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요즘 시청자들은 메달을 못따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한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시민들의 의식은 높아졌는데 방송사는 돈벌이에만 매달려 메달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방송 3사는 평창겨울올림픽에 역대 최다 인원을 투입하며, 올림픽의 감동을 전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이 말하는 감동이란 건 무엇일까?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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