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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예술인 블랙리스트’, 진상조사가 우선이다

등록 2017-04-19 19:12수정 2017-04-20 08:57

파보자, 문화정책 ①블랙리스트 없는 나라

제도개선 접근방식 차이
문 “예술인 정책결정 참여 확대”
안 “문화계 서열·착취 구조 해소”
심 “인적청산 뒤 제도 보완”

예술인 지원제도 개선책
문 “원점 재검토…투명성 확대”
안 “공공기관 위원장 호선제로”
심 “맞춤형 지원, 기본소득 도입”

문화판 일거리는 역대 대통령선거마다 언제나 뒷전이었다. 하지만 올해 대선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불씨가 된 최순실·차은택 국정농단 사태의 텃밭이 바로 문화예술계였기 때문이다. 정권 입맛에 맞춰 예술인의 돈줄을 죄는 블랙리스트 공작도 드러나, 박근혜 정부에 치명타를 안겼다. 자괴감과 분노에 휩싸인 현장의 문화예술인들은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 국정농단 부역자 청산과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의 탈바꿈과 공공문화 지원정책 대수술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는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 문화정책 분야에서 대선후보들의 생각과 대안을 비교검토하는 연재기획물을 싣는다. 각 후보 진영에 보낸 설문에 답변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문화정책 구상을 집중 분석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쪽은 응답하지 않았다.

‘진상조사부터 제대로 하자.’ ‘처벌과 인적청산이 우선이다.’

문화예술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블랙리스트 공작 재발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 세 진영은 큰 틀에서 이견이 없었다. 블랙리스트가 현장에 전파되어 지원 배제에 이르게 된 구체적 경로와 예술인 피해 사례를 낱낱이 파악하는 조사부터 하겠다는 구상을 너나없이 내놓았다. 문 후보 쪽은 민관 합동 진상조사반 활동을, 안 후보 쪽은 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백서 발간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심 후보 쪽도 블랙리스트 작성 과정과 관련자, 문건 활용 경위 진상조사를 역설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가 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헌법소원 청구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가 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헌법소원 청구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블랙리스트’ 방지 대책은 다만 제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식에서는 다소 차이를 드러냈다. 블랙리스트 공작을 실행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월 예술가 권익 보장을 위한 법률 발의, 예술가 권익보장위 가동 계획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예술의 자유 침해 사례를 신고받아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문체부의 이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집권할 경우 어떤 재발 방지 대안을 제시할 것인지를 후보들에게 물었다.

문 후보 쪽은 “문체부 대책이 어느 정도 실효성은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문화예술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정치 및 정권의 가치관에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재발방지책으로 △문화예술인의 정책결정 참여 확대 △주요 문화예술 공공기관 임원 등의 추천권 보장 △문화 분야 옴부즈맨 제도 도입 등을 제시했다.

안 후보 쪽은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문체부 감사가 진행됐지만, 무엇보다 피해자 관점이 빠져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권 눈 밖에 난 예술인의 차별과 배제 문제뿐 아니라 문화예술계에 뿌리 깊은, 서열에 따른 착취 문제까지 해소하는 ‘문화예술 공정화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심 후보 진영은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과 인적 청산에 좀 더 강하게 방점을 찍었다. “우선 필요한 것은 부역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인적 청산이며 그런 뒤에 제도적 보완을 하는 게 순서”라는 것이다. 권력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양심선언을 할 수 있도록 정부기관의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표현의 자유 보장과 예술인 지원 예술인 지원 제도의 개선책에서는 차이가 더 명확해졌다. 문 후보 쪽은 “앞으로 원점부터 재검토하겠다”며 정부지원 사업심사 때 투명성 확대 등을 간단하게 언급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원천적으로 문화예술인의 뜻이 정부정책에 반영되지 않은 결과로 본다. 현장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담당 공무원 등의 갑질 행정이 타파될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론이었다.

안 후보 쪽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공공기관이 “문체부만 바라보는 독임제 기관이 되어버렸다”고 진단하면서, 각 기관의 자율성 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기관을 위원들의 “중의를 모으는 컨센서스형 자율기구”로 변모시킬 방안으로, 위원장을 문체부가 임명하는 게 아니라 참여정부 때처럼 위원들이 호선하는 체제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심 후보 쪽은 창작지원금 확대와 예술가 기본소득제도를 개선책으로 꼽았다. 예술가들의 기존 작업에 필요한 부분은 맞춤형으로 지원하고, 나아가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꿔나가겠다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 관료들은 예술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부와 예술가가 ‘협력’하는 관계라는 인식전환이 절실하다”며 고민의 심도 측면에서도 차별성을 보였다.

국정농단 무대 ‘콘텐츠진흥원’ 운명은 현장의 문화예술인들과는 별개 영역으로 인식되어온 문화산업 분야의 기구, 조직, 사업 재편 방안도 쟁점이다. 지난해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문화융합벨트 사업 등을 통해 최순실·차은택씨가 이권을 챙기며 국정농단의 주무대가 됐던 까닭이다. 이 분야도 심 후보 쪽의 진단과 대안이 가장 구체적이고 문제의식도 뚜렷했다. 심 후보 쪽은 ‘대기업 위주의 양적 성장’이 문화산업 개혁의 핵심 대상이라며 △한국콘텐츠진흥원 해소 △게임, 대중음악, 만화 등 세분화한 진흥기구 설립 △중소기업에 초점을 맞춘 개별산업별 지원체계 분화에 방향을 맞춰야 한다고 짚었다.

문 후보 쪽은 문화예술위 등과 뭉뚱그려 “지난 정권에서 물의를 빚었던 기관 및 위원회 위원장, 임원을 새로 구성할 때 추천단계부터 업계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고만 답했다. 안 후보는 “방송영상, 게임 관련 공공기관을 흡수한 거대한 한국콘텐츠진흥원 체계는 현장 소통이 상당히 어려운 구조”라며 “분야별 생태계는 상당히 다른 개별적 특성을 갖기에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며, 정책조정, 기술연구, 통상교류 등의 기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노형석 김지훈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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