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만난 조한혜정 교수는 마을살이 같은 전환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대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겉으론 조용하지만 안에선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시기다. 그들이 나비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관직에 대한 생각은 없냐는 질문엔 “거긴 창조적 공동체가 아니다”라며 웃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정년퇴임하는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조한혜정(66)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이달 정년퇴임한다. 1979년 연세대 사회학과 시간강사로 시작했으니 35년의 세월이다. 독재정권 반대 투쟁으로 최루탄 가득한 80년대 캠퍼스에서,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수업시간에 “(운동도) 너희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는, 막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사회학과 유일한 여성 교수의 모습은 분명 이질적, 어쩌면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지만 이후 곧 만개할 개인의 개성과 일상의 민주화가 강조되는 시대를 예고하는 목소리였을지 모른다. 1984년 만든 여성주의 동인집단 ‘또하나의 문화’나 2000년대 탈학교 청소년들을 품어 설립한 하자센터 등은 개인성과 공공성이 결합된 새로운 주체를 발견하는 장이었다. 평생 ‘창조적 공동체’의 화두를 놓지 않은 그가 요즘 진력하는 것은 ‘마을살이’다.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만난 조한 교수는 올해 이곳에서 ‘마을인문학’ 강의를 하고 3권의 책도 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1세대 여성학자인 그는 이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던 많은 여성들이 아빠가 된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모성’을 통한 공공영역의 복원을 이야기했다.
4대강 닮은 ‘대학 난개발’
비판하며 천막농성 벌여 모성보호에 소홀한 우리 사회
육아보다 경력 쌓기로 내몰아
결국 모성성의 결핍 초래 적대와 경쟁 프레임 벗어나
‘사회적 모성’ 바탕으로
창의적 공공영역 만들어야 -조직의 시대인 80년대보다 개인의 시대인 90년대 인물이란 느낌을 받는다. 본인은 어떻게 느끼나? “내 개인주의적 성향도 있고 페미니즘의 핵심 모토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인데, 개인의 삶에서 시작하는 정체성의 정치학이 내게는 자연스러운 운동이라 내 물을 만났단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90년대 학번들이 제일 편하다. 그런데 난 개인성이 강하면서도 사실은 엄청나게 공동체성이 강한 사람이다. 90년대 학번들이 이 사회의 중추가 됐을 땐 좀더 개인이 존중되는 민주적 사회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세대 탓은 아니지만 실제론 살아남기 위해 성공해야 되는 쪽으로 쏠려간 듯하다. 이에 비해 486세대는 자신의 개인성을 찾고 성찰하게 됐다. 기본적으로 토론이 되는 세대이고 공공성에 대한 감각이 뚜렷하니까. 하지만 90년대 학번들도 이제 40살이 되면서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건가 고민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대를 두고 모든 사안을 비용으로만 따지고 통합적 판단이나 행동 능력은 손상된 ‘초합리적 바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영화 <변호인>을 보고 젊은 조카가 너무 정치적이라 싫다고 해 충격을 받았다는 글을 읽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보수적이라기보다 안 풀리는 구도에서 계속 문제제기하는, 안 그래도 어수선한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하는 좌나 우나 다 싫은 거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성과를 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탈락한다는 식의 주입을 받으며 커왔다. 연대에 외고 나온 애들이 많은데 보통 학창시절에 자살한 아이들이 매년 한두명 있다고 말하더라. 그럴 때 학교 방송에선 동요하지 마라, 누가 뭐라 해도 얘기하지 마라 하고 끝이다. 책상에 꽃을 바치고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어떤 사안을 봐도 자기와 연결시키지 않는 훈련이 된 것이다. 적어도 내 아이를 그런 냉혈한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부모들이 많아져야 하고 교육계를 바꿔가야 한다.” 네그리와 하트가 시장이 사적인 것을, 국가가 공적인 것을 독점한다고 말하는 시대, 조한 교수는 ‘안티고네’의 후예들을 이야기한다. 아버지 국왕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들을 묻어주었던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말이다. -‘또문’이나 여성학의 세례를 받은 세대들이 사회로 진출했다. 우리 사회가 그래서 달라졌나? “나와 동료들이 이야기했던 페미니즘은 여성 권리의 문제라기보다 여성이 주체가 돼서 여성도 행복한, 남녀가 모두 행복한 사회였다. 남녀 모두에게 있는 모성성을 끌어내 사회적 모성으로 꽃피게 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그런데 요즘 의문이 든다. 80년대와 90년대 여성해방 물결이 꽤 거셌고 그때 많은 여성들이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이제 그들은 그냥 ‘아빠처럼’ 된 것은 아닌가. 애를 낳고도 자기 커리어에 더 신경을 쓰는, 이른바 ‘경력단절’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늘고 모성성은 점점 결핍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상한 공포를 심으니 여성들은 아이를 시설에 맡기고 자격증을 따러 전전하게 되는데, 이는 사회 유지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무지한 국가정책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을 경력으로 쳐줘야 하고, 기존 직장만이 아니라 돌봄과 소통 영역에서 다양한 일거리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데 우리 체제가 그걸 못하는 거다.” -여성 단체장이나 여성 기업인들도 늘어났는데 왜 그럴까? “실제로 숫자가 많진 않은데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여자들이 판을 치면서 눈에 띄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적 판에 새로 들어간 신참인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게임의 룰을 익혀온 남성들은 차마 하지 못하는 냉혹한 일까지 서슴없이 해내기도 한다. 영국의 대처 총리가 대표적이다. ‘남자의 질서’는 그런 여성들을 잘 이용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여성 대통령은 어떻게 보나? “여성주의라는 게 사냥꾼적이거나 토건적인 게 아니라 상생, 돌봄의 원리로 균형을 잡아가는 것인데, 너무 ‘대통령의 딸’로 살아와 그런 여성성을 키울 기회가 많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여자이기에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오해와 보이지 않는 ‘구박’을 받으며 길러진 어떤 민감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여성성은 엄마와 동일시를 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박 대통령이 어머니와 동일시를 하는지, 아버지와 동일시를 하는지가 중요하고 또 주요한 고민을 누구와 논의하면서 해결하는지가 중요하다. 준거집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냥꾼들이 만들어낸 경쟁과 적대의 현실을 그대로 지속시킨다면 ‘여성 대통령’이라 부를 이유가 없다. 반대로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여성 대통령’이란 수식어가 빛날 것이다.” -지금의 정치가 힘과 폭력과 적대의 장이라는 지적인데,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4대강 사업이나 밀양 송전탑 밀어붙이기 같은 건 대대로 물려줘야 할 공공재를 무참하게 독점하고 망가뜨리는 거다. ‘4대강 할 돈으로 기본시민수당 주고, 대학생은 학비 전액 지원하고, 대학 안 간 아이들은 활동비 주자. 청년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신이 나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하자.’ 이런 논의가 있어야 우리 사회의 창의적 전환도 가능한데, 이를 제기할 공공영역이나 주체가 너무 파괴되어 있다. 지금은 기존 정치판 프레임에 휘말리지 말고 우리 자체적으로 공공영역을 부지런히 만들 때라는 생각이 든다. 제도적 공적 기구만이 공공이라고 우기며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라 해도,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전환적 삶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최근 빅토르 안 현상이 재미있었던 것도 국가를 신성시했던 그런 생각, 국민국가가 무너져가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돌파구를 요즘 ‘마을살이’에서 찾고 있는 건가? “지금은 각자가 자신의 동굴에서 변신을 하고있는 시기라 생각한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려고 하는 상태처럼 겉으론 가만히 있지만 속으론 엄청난 일들이 일고 있는. 어제 ‘도봉숲속애’라는 어린이놀이터를 만든 엄마들을 만났다. 얼굴만 봐도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는 똑똑한 사람들을 거대한 기계 부속품으로 훈련시켜서 한가지 일밖에 못하는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그 일이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이 아니기에 많이들 괴로워한다. 그러나 후기근대적인 마을살이를 시작한 사람들은 적대와 경쟁의 자아에서 벗어나 협동하는 자아로 다시 태어난다. 당장, 모두가 마을 또는 이웃을 만들어 살라는 말은 아니다. 준비된 사람부터 하자는 것이다. 당연히 달리는 폭주기관차 안에서 얼마간 더 있어야 할 사람도 있고 형편은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 않나? 폭주기관차가 멈추거나 폭파했을 때 갈곳이 있어야 하지 않나?” 인터뷰/ 김영희 문화부장, 이유진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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