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미스트 랜드(promisedland)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성경에 나오는 프라미스트 랜드(promised land), 즉 ‘약속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그땐 젖과 꿀이면 충분했던 모양이다. 요즘 세상에야 어디 그런 ‘젖’ 같은 약속만으로 사람 마음 사로잡을 수 있나. 현대인에게, 특히 현대 미국인에게 ‘약속의 땅’이란 곧 “석유와 가스가 흐르는 땅”일지니. 수킬로미터 지하에 매장된 셰일가스의 축복으로 주가 대박의 은혜를 입으려는 미국의 에너지 기업들이 앞다투어 ‘프라미스트 랜드’를 선점하려 애쓰는 이때. 펜실베이니아 작은 시골 마을 매킨리에 스티브(맷 데이먼)라는 자가 나타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회사 이름부터 아예 ‘글로벌’이라고 지어 붙인 거대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최연소 부사장 자리를 예약해 놓은 자로서, 특히 깡촌의 주민들을 싼값에 구워삶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매번 같은 풍경이 연출되었는데, “당신네 땅 밑에 가스가 매장되어 있으니 어서 현금 받고 구원받으세요~” 하고 스티브가 외치면, 주민들이 순순히 제 논밭을 집어던지고 보상금 받아 떠나느라 바빴다는 것이다.
돈다발의 약발이 여느 깡촌에서와 같이 매킨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스티브의 간절한 기도는 이번에도 통하는 듯하였다. 마을의 존경받는 과학 교사 프랭크가 아주 과학적인 근거를 들이대며 딴죽을 걸기 전까지는. 몹시 핸섬하고 매우 젠틀한 환경운동가 더스틴(존 크러신스키)이 환경파괴 운운하며 주민들을 ‘선동’하기 전까지는. 모든 게 그저 순조롭기만 했단 말이다.
맷 데이먼이 각본을 쓰고 거스 밴 샌트가 연출한 영화 <프라미스드 랜드>. 얼핏 순조롭게만 보이는 모든 개발 사업마다, 알고 보면 하나도 순조롭지 않은 사연들을 숨기고 있다고 일러바치는 영화다. 힘센 글로벌 기업이 하는 일이란 게, 고작 힘없는 시골의 농토에 빨대 꽂아 단물 빠는 일이라고 고자질하는 영화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은 달변가 스티브의 말문이 막힐 때 나온다. 가령 이런 장면. 당신 땅에서 가스를 뽑아야 하니 동의 좀 해달라는 스티브에게, 왜 하필 우리 땅이냐고 되묻는 농부. “딴 이유 댈 것 없어요. 우리가 가난해서죠. 맨해튼이나 피츠버그에 가스정이 몇개나 있죠? 필라델피아는? 세상이 그런 거죠. 없는 놈이 만만하니까.” 이렇게 쏘아붙이는 농부의 주름진 얼굴 앞에서, 말 잘하는 남자 스티브는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또 이런 장면. 역시 동의서에 사인 받으러 온 스티브에게 자기 집 뒷마당의 텃밭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초등학교 여선생님. “이건 학생들 학습용이에요. 데려와서 농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보여주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스티브가 말하길, “농장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한테 또 농작물 키우는 법을 가르친다고요?” 그러자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누가 잘 키우는 법을 가르친대요? 잘 돌보는 법을 가르치는 거지.” 예쁘게 웃으며 자신을 타박하는 여자 앞에서, 이번에도 말 잘하는 남자 스티브의 말문이 막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매킨리의 농부가 한국 경상남도 밀양의 농부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없는 놈이 만만한 거라고, 그러니 대도시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이곳에서는 이리도 쉽게 밀어붙이는 거 아니냐고, 영화 속 ‘촌놈’의 입을 빌려 현실의 ‘촌로’들이 역정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한국의 어른들에게 묻고 있었다. 왜 아이들에게 ‘잘 돌보는 법’은 가르치지 않느냐고. 온통 잘 부수고 잘 내쫓고 잘 끌어내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동안 우리의 땅을, 강을, 바다를, 생명을, 그리고 그저 오늘과 내일의 소박한 일상을 잘 돌보려는 사람들이 자꾸 외로워지면 어떡하냐고 묻고 있었다.
누구는 가스만 퍼올리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누구는 남아서 자신의 일생을 퍼올려야 한다. 누구는 송전탑만 세워 놓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또 누구는 남아서 자신의 내일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보상금 몇 푼 더 받으려고 버틴다’며 눈을 흘기는 타지 사람들에게, ‘보상금과 맞바꾸는 것이 당신의 평생이자 가족의 일생이라면 그것을 과연 ‘몇 푼’이란 말로 낮잡아 부를 수 있느냐’고 되묻는 영화. 아니, 평생이니 일생이니 하는 그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애초에 돈 몇 푼과 맞바꿀 수나 있는 성질의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영화. <프라미스드 랜드>에서 나는 밀양을 보았다. 용산을, 강정을, 그리고 삼척과 영덕을 보았다. 우리에게 ‘잘 돌보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약속의 땅’을 보았다.
김세윤 방송작가
김세윤 방송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