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의사’ 우종영 원장이 한겨레신문사 옥상에 조성된 생태숲을 살펴보고 있다. “나무는 한번 뿌리를 내리면 싫어도 평생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지만, 결코 불평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은 모두 나무에게서 배웠습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나무의사 26년’ 우종영 원장
‘나무의사 26년’ 우종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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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체념하는 이들, 나무를 보라
쉬운 절망은 나무에 예의 아니다 -가방끈 짧은 남자가 나무만 바라보고 살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제대하고 곧바로 중동으로 갔다. 78년인가 중동 건설 특수가 시작됐는데 인력이 부족하자 정부는 제대 군인들을 건설노무자로 훈련시켰다. 기업이 돈을 대고 군대가 훈련을 시키는 방식이었다. 2년간 중동에서 일한 돈으로 결혼도 하고 원예농사를 시작했는데 3년도 안 돼 완전히 말아먹었다.” 그때 희귀 꽃과 작물을 심었는데 수확을 시작할 무렵 ‘광주사태’(80년 광주민주화운동)가 터졌다. 경제는 최악이었고 사람들은 돈을 안 썼다. 삶 자체가 불안한 판국에 누가 꽃에 돈을 쓰겠는가. 2~3년도 안 돼 손을 들었다. 16살 때 첫눈에 반해 11년을 쫓아다닌 뒤 처갓집 앞에 텐트 치고 시위를 벌여 얻은 아내를 빼면 그가 의지할 곳이라곤 아무데도 없는 시기였다. “솔직히 북한산에 올라가 죽을 결심을 했다. 그때 문득 바위틈에 선 소나무를 보며 쟤들도 저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살려고 하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그날 이후 매일 새벽 4시에 도봉산에 올라 반대편쪽 수락산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용역, 노가다, 정원 공사 일꾼 등이 당시 그의 직업이었다. 그렇게 한 1년쯤 지나자 이번엔 머릿속이 하얘졌다.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신문을 봐도 무슨 소린지 감이 오질 않는데,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명상가들의 말로는 꽤 높은 경지에 가본 것”이라고 했다. 일마다 즐거웠다. 즐거우니 일이 더 잘됐다. 다시 아내는 꽃집을 차렸고, 자기는 나무를 찾아 전국을 떠돌았다. “나무를 잘 본다고 제법 소문이 나자 어느날 삼성에서 연락이 왔다. 시내 빌딩 앞에 심은 소나무 20~30그루가 오늘내일 하는데 살릴 수 있겠냐고. 3년 만에 내가 완전히 쌩쌩한 나무로 되살려 놓자 전국 각지에서 전화가 왔다. 그렇게 나름대로 나무 고치는 법을 터득한 뒤부터는 아예 나무의사란 이름을 내걸었다.” -아픈 나무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나무가 사람처럼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병증은 금세 알 수 있다. 우선 가지 끝을 본다. 아픈 나무는 가지 끝이 죽어들어간다. 다음은 이파리다. 병증 있는 나무는 이파리가 작아지고, 곰팡이가 들어가 얼룩이 진다. 뿌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픔의 표현이다. 다음은 주변 지형이다. 나무도 사는 곳이 나빠지면 병이 생긴다.” -서울은 나무가 살기 참 어려운 도시다. 가로수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우린 가로수들을 너무 구박한다. 디자인 서울이니 뭐다 하면서도 나무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하다. 나무가 건강해야 도시가 건강해지고 도시가 건강해야 사람이 건강할 수 있는데 이걸 모른다. 가로수를 제2의 시민으로 제대로 한번 대우해 보자. 그러려면 먼저 시민들이 나무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시민들이 먼저 주장하지 않으면 관료와 건축가들의 손에 늘 놀아날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좀더 많은 시민들이 좀더 많이 아는 방법밖에 없다. 공익을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지식이 자신들이 사는 도시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거다.” 원래 꿈은 천문학자, 색약탓 좌절
공부에 흥미 잃고 방황하던 시절
원예하우스서 식물에 첫 이끌림 -오랫동안 나무와 가까이 살았으니 알지 모르겠다. 나무에게도 감정이 있나? “식물들도 나름의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이건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어느 빌딩 나무들을 관리해줄 때다. 나무들은 보통 컴컴한 새벽에 물을 주는데, 어느날 뿌리를 타고 물이 나무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나무가 물을 빨아올리며 환희에 찬 듯이 온 가지의 이파리를 흔드는 듯했다. 내가 너무 놀라 옆에 있는 직원에게 ‘야, 물이 올라가는 게 보여!’ 그랬더니, ‘사장님 새벽인데 아직 꿈에서 안 깨셨수’ 그랬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뒤 그 친구가 사장이 된 뒤 어느날 전화를 걸어와 외쳤다. ‘사장님! 저도 봤어요!’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 정말로 나무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느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나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사람도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좋아하는 나무는? “나무 중에도 오래 사는 종류는 따로 있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향나무. 가끔은 소나무. 이런 종들은 수백년을 넘게 산다. 시간을 품은 나무들은 신령스럽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나무는 없다. 내가 누굴 편애하면 나무들이 금세 눈치를 챌 것 같다. 그럼 다른 나무들이 삐질 게 아닌가, 하하.” -하긴 수백년을 산 나무들인데 눈치가 백단이겠다. “마흔아홉살이 되었을 때, 더 나이 먹기 전에 혼자서 산을 걷는 여행을 시도했다. 그때 용문사 은행나무에게 가서 막걸리 한 사발 붓고 발원문을 읽었다. 내가 그동안 나무를 살리는 일을 많이 했으니, 나무의 왕이시여, 전국의 나무들에게 연통을 띄워주시오. 우아무개가 이제 여행을 떠나니 잘 지켜주도록. 강원도 고성까지 혼자 걷는 그 17일 동안 나는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한밤중에도 두렵지 않았다. 나무들이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고 믿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진짜 나무에게 정령이 있다고 믿나 보다. “글쎄, 그런 건 아니고. 옛날 무당들이 신수에 금줄 걸고 빌었지만, 나무 자체에게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나무는 신령과 교신하는 안테나이자 강림의 통로이다. 나무가 신의 메신저인 셈인데, 그런 나무를 학대하고 죽이면 신으로부터 전달받을 게 없게 된다. 신과 통하는 길이 끊어지는 거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오래된 나무를 신령스런 존재로 숭배한 게 아닌가?” -직접 나무를 가꿔본 경험이 있을 텐데 나무의 습성이나 생태가 궁금하다. “20여년 전 화천에 농장을 짓고 자작나무를 심었다. 1만주를 심었는데 지금 150여그루가 남아 있다. 나무는 처음에 그렇게 많이 심지 않으면 잘 자라지 못한다. 많이 심은 뒤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점차 개체수를 줄여준다.” -경쟁을 붙이는 셈인가? “예를 들어 자연상태에서 숲 100평에 대여섯 그루의 큰나무가 적정한 식생이라고 하면 처음에는 수십만개의 씨앗에서 출발한다. 그런 생존경쟁을 겪고 살아남은 나무가 튼튼하고 우아하다. 뒤집어 말하면 그런 소수의 크고 아름다운 나무는 주변에 생장을 이끌어주는 다른 나무들이 없으면 안 나온다는 거다. 마라톤에 페이스메이커라는 게 있다. 완주를 못하는 대신 기록을 이끌어주는 레이서들. 나무 세계에도 그런 페이스메이커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고 할 때 둘 중 하나가 페이스메이커가 돼주지 않으면 둘 다 크게 자라지 못한다. ‘교란’이라고 하는 조건이다. 교란을 겪으며 살아남은 나무는 대부분 큰 나무가 된다. 태풍이 부는데 모두 다 안 쓰러지면 그 숲은 콩나물 시루마냥 고만고만해진다. 다 쓰러지는데 안 쓰러지고 버틴 나무가 있어야 그게 거수가 된다. 쓰러져서 햇빛의 길을 열고 거름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는 숲에서 거목이 나오는 거다.” 나무의사 소문에 삼성에서 연락
빌딩앞 소나무 20~30그루 살려
그뒤 유명세…전국 각지서 전화 -저 혼자 잘나서는 큰 나무가 되지 못한다? 자연의 오묘한 이치가 전해지는 것 같다. “만약 어떤 숲에 나무가 3000그루가 있는데, 나무들이 적절한 간격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500그루 정도라면 그 숲은 숱한 자연의 순환을 겪은 뒤 결국에는 500그루라는 적정 밀도에 이른다. 그게 자연도태이다. 인간이 숲을 가꾸며 인위적으로 감벌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래야 남은 나무들이 행복하게 적정 크기로 자란다.” -무슨 경제이론 같기도 하다. “이 문제는 생태학자와 임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개별 생명체의 존중이냐 전체 생태계의 건강이냐… 솔직히 나는 어느 쪽도 아니지만, 숲 자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자연계의 순환을 받아들이는 쪽이다. 누군가는 도태의 길을 선택해 자리를 비워주고 나머지 나무에게 거름이 되는 것, 이런 걸 바로 사람에게 대입하는 건 곤란하겠지만, 물질이 순환하는 생태계 차원에서 보면 도태된 나무는 죽은 게 아니라 거름으로 순환하고 거기서 다른 풀꽃의 생명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사람도 죽음으로 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순환한다고 생각하면 좀더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우리나라 숲은 잘 순환하고 있나? 겉으로 보이는 산림은 잘 조성돼 있는 듯한데. “우리나라 숲은 활력이 넘치고 생장이 한창인 젊은 숲이다. 숲이 우거지기 시작한 지 40여년인데 이는 사람 나이로 치면 청년기다. 에너지가 넘칠 수밖에. 숲은 100년 정도가 되어야 어른이 된다. 어른 숲이 되어야 큰 나무들이 이끄는 숲의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서울은 나무가 살기 어려운 도시
나무가 건강해야 사람이 건강한데…
인간과 나무, 서로 교감할 수 있어 -어른 숲이 되면 식생도 많이 바뀌겠다. “숲은 길게 보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데, 이걸 ‘천이현상’이라고 한다. 숲에 사는 식물 구성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10~20년 전만 해도 산에 소나무가 많았지만 지금은 참나무가 대세인 것이 좋은 예다. 생장력이 강한 활엽수가 숲을 차지하고, 소나무는 점점 바위틈이나 능선으로 밀려나고 있다. 숲이 만들어지는 단계에서는 햇볕을 좋아하는 쪽이 세력을 얻고, 어느 정도 그늘이 만들어지면 햇빛이 적어야 유리한 쪽이 세력을 넓히기 시작한다. 점차 큰 나무들이 숲을 덮으면 숲속은 햇볕이 적어도 살 수 있는 식물이 대세를 이룬다. 양의 세계에서 출발해 음의 세계로 변한 것이다. 우리 태극에 있지 않은가, 양 속에 음의 씨앗이 있고, 음 속에 양의 씨앗이 자라는 이치와 같다.” -그게 숲의 순환인 셈이군요. “양에서 음으로 갈 때와 음이 양으로 갈 때가 조금 다르다. 음의 세계를 덮고 있는 건 양의 세계인 큰 나무들이다. 그 큰 나무들이 태풍이나 번개 등 외부 영향에 하나둘 쓰러지면, 그 자리만큼 햇빛이 드는 공간이 열리고 거기에서 부분적으로 양의 세계가 새롭게 시작된다. 부분적인 천이현상. 그러다 보면 하나의 숲 안에서도 오래된 숲과 젊은 숲이 공존하게 된다. 그 상태가 가장 바람직한 숲의 세계다.” -앞으로 계획은? “실제 나무를 다루는 사람들, 나무나 식물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무를 어떻게 대하고 키워야 할지를 알리는 책을 준비중이다. 생각해 보면 지구상에서 움직이는 생명체 중에서는 인간이 가장 진화했고, 움직이지 않는 생물 중에서는 나무가 가장 고등한 생명체이다. 이 두 종은 지구 안에서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상대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자기들끼리도 교감을 못해 애완동물에게 의지하려 하는데, 나는 식물과의 교감이 그보다 높은 단계라고 믿는다. 조건 없는 대화 상대인 식물과 교감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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