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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촐라체서 생사 같이한 강식이엔 마음의 짐이…”

등록 2010-04-08 19:22

박정헌씨는 촐라체 생환 후 기업체, 대학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청중들이 당신에게서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 것 같냐는 질문에 “극한상황이라는 대리체험을 통해 성공의 영감을 얻으려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 역시 ‘인생의 목표’는 “산에서 쌓은 노하우와 생각을 가지고 ‘사회의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는 촐라체 조난 때 손가락 8개를 잃었다.    김봉규 기자 <A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박정헌씨는 촐라체 생환 후 기업체, 대학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청중들이 당신에게서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 것 같냐는 질문에 “극한상황이라는 대리체험을 통해 성공의 영감을 얻으려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 역시 ‘인생의 목표’는 “산에서 쌓은 노하우와 생각을 가지고 ‘사회의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는 촐라체 조난 때 손가락 8개를 잃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히말라야서 5년전 기적생환 박정헌씨
* 강식이 : 함께 조난당했던 후배




2005년 1월16일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6440m)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박정헌(당시 34살)과 최강식(당시 26살). 두 사람의 ‘자일파티’(한 줄로 몸을 연결한 등반 동료)는 하산길에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다. 강식씨가 23m 아래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새)에 빠진 것. 각각 갈비뼈와 양 발목이 부러진 두 사람은 자일 하나에 생명을 의지한 채 필사적으로 버텼다. 땅 위의 선배는 후배를 버릴 수 없었고, 추락한 후배는 선배가 절대 줄을 끊지 않으리라 믿었다. 3시간의 처절한 사투 끝에 ‘악마의 입’을 벗어난 두 사람은 침낭도 식량도 없는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또다시 이틀 낮밤을 혹한의 눈밭을 기다시피 헤매야 했다. 그들의 극적인 생환은 경이와 감동이었다. 삶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생사를 뛰어넘은 우정이 수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북처럼 두드렸다.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법정 스님의 유언, 천안함의 비극적 침몰 등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던 무렵, 불현듯 촐라체의 그 ‘자일파티’들이 기억 속을 스쳐갔다. 죽음 앞에 선 사람은 과연 무엇을 보는 것일까? 영웅적 스토리는 이미 전설이 되었지만, 현실로 돌아온 영웅은 자신이 바라봤던 죽음을 얼마나 내면화하고 객관화했을까? 과연 객관화라는 게 가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무엇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산악인 박정헌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박정헌(39·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경남 사천 생. 히말라야 거벽 등반가. 안나푸르나 남벽(8091m, 1994), 에베레스트 남서벽(8848m, 1995), 초오유(8201m, 1996), 낭가파르바트(8125m, 1997), 케이투(K2) 남남동릉(8611m, 무산소 등정, 2000), 시샤팡마 남서벽(8012m, 코리안루트 개척, 2002), 촐라체 북벽 등정. 체육훈장 맹호장(2006). 높이(altitude)가 아니라 방식과 태도(attitude)를 중시하는 이른바 등로주의 알피니스트로 유명했다. 촐라체 조난 때 손가락 8개를 잃은 뒤 산악 패러글라이딩 비행가가 되었다. 현재 열기구 등을 이용해 히말라야 2400㎞를 종주하는 이른바 ‘X-히말라야 프로젝트’(2011년 9월 예정)를 추진중이다.

크레바스서도 자일 감은채 서로 의지했는데
손가락·발가락 잃게 했다는 생각에 ‘죄책감’

다시 크레바스 앞에서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때 강식씨가 깊은 크레바스 속으로 추락한 상태였고, 당신이 자일을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숱하게 받은 질문이겠지만, 자일을 끊고 싶은 유혹이 정말 없었나요?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간 것이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원제 Touching the Void, 서로를 연결한 자일에 의지해 동료의 추락을 막고 있던 등반가가 더 버틸 힘을 잃자 자일을 끊고 혼자 살아 돌아왔는데, 추락한 동료가 나중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세계적인 논픽션)였습니다. 내게 지금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구나, 그러나 나는 같은 실수를 해선 안 된다, 그런 생각만 했습니다. 필사적으로 강식이를 불러댔습니다. 그런데 처음 한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때부터 진짜 유혹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인간적으로 버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사람 속에 또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힘에 부치기 시작하다 이번엔 아예 처음부터 로프로 연결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러면 강식이가 빠지는 것도 못 본 것이 되는 것 아니냐는 속삭임이 수없이 이어졌습니다. ‘형, 나 살아 있어’라는 강식이의 절박한 외침을 들었을 때도 반가움에 앞서 아이고, 이젠 진짜 죽었구나 하는 두려움이 먼저 들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사람이란 게 그런 존재더군요.”

그런 상황에 처하면 누군들 나약한 존재가 아닐 수 있을까요? 하물며 하찮은 일상에서조차 거짓의 유혹이 비일비재한데….

“한동안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 미스터리가 있었습니다. 크레바스를 간신히 탈출해 눈밭을 헤매다 바위 밑에서 잠을 자야 할 때였습니다. 그때 강식에게, 난 여기서 잘 테니, 넌 저기서 자라고 자리를 정해주었습니다. 보통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는 서로 부둥켜안고 체온을 나눠도 모자랄 판인데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왜 나는 그 추운 밤을 강식이와 같이하지 않았을까? 세월이 얼마큼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 인정하게 되더군요. 강식이가 크레바스에 빠진 순간부터, 그가 크레바스에서 기어나오던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한 원망이 싹트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그를 멀리하려 한 거였다는 걸….”

그래도 두 사람은 함께 살아 돌아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둘 다 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조건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합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데 있었습니다. 둘이란 사실이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못 돌아왔을 겁니다.” 원망과 미움이 이미 싹트고 있었음에도? “그런 건 순간의 감정일 뿐입니다. 강식이가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깜깜한 어둠 저쪽에서 자고 있는 강식이가 고통으로 신음소리를 흘리는데, 그 소리가 안 들리면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비명조차 희망의 나팔소리가 됩니다.” 한 사람의 절망의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희망의 소리라…. “미움, 원망 따윈 순간에 끼어들었다가 사라지는 연기 같은 것이지만, 살고 죽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죽음의 문턱에서

또 잔인한 질문입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의 내면이 궁금했습니다. 생사의 기로를 헤매면서 무슨 생각이 제일 가슴에 남던가요?

“숱한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지만, 가장 뼈아프게 닿아온 건 ‘결국 이렇게 죽게 되는데 왜 그토록 많은 적을 만들며 산에 갔을까’ 하는 회한이었습니다. 특히 직장 산악팀 선배와 심한 갈등을 빚었던 게 가장 마음에 걸렸습니다. 나중에 생환기를 책으로 냈을 때 맨 먼저 그분에게 책을 보내드린 것도 그 때문이었죠. 두번째 화두는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은 제대로 하고 가는 것일까?’ 하는 미련이었습니다.” 이렇게 가게 될 걸 왜 그리 아등바등했나, 그 시간에 하고 싶은 일 조금이라도 더 하지 하는 후회와 미련, 공감이 갑니다. 그 선배와는 화해가 됐나요? “그럼요. 뭔가 꽉 막힌 듯한 체증이 뻥 뚫린 기분이었습니다. 거기서 참 많은 교훈을 얻었는데, 그런데 (그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그쳤다) 이상하게 잘 안되는 게 강식이 부분이었습니다.” 함께 살아서 돌아온 사이 아닌가요? 의외군요. “사람의 관계란 게 묘하더군요. 난 나대로 괜히 데려갔다가 장애인(강식씨는 손가락 9개와 발가락 전부를 잃었다)을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그는 그대로 자기 실수에 대한 자책감이 서로의 마음속에 숨어 있었나 봐요. 생사를 같이한 동반자라는 관계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내면의 세계 속에서는 뭔가 아쉬운 것들이 자꾸 의문부를 만들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어쨌든, 인간이란 게, 관계라는 게 참 어렵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도 친하게는 지내죠? “그렇게 친하지도 않아요.(웃음)” 자주 안 만나서 그렇겠죠. “저나 나나 아직은 마음속의 그 무엇인가가 다 정화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정상은 쓸쓸한 바람뿐이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아가보죠. 촐라체 북벽은 세계 3대 난벽의 하나로 ‘악마의 벽’이라 불린다면서요. 거의 수직에 가까운 75도 경사의 절벽이 1500m나 되고. 그곳에 단 2명이 갔습니다. 영웅심인가요?

“영웅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두렵지 않았나요? “암벽 등반가의 가장 큰 공포는 추락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촐라체에 오를 때 우리는 베이스캠프에서 보름 동안 오로지 먹고 마시기만 했습니다.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 그렇게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별안간 생각난 듯이 스타트합니다. 절벽을 기어오를 때도 순간순간 지금 떨어지면 나는 어떻게 죽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걸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그냥 무작정 올라가는 수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두려움을 떨쳐내는 일이 늘 어려웠습니다.” 산과 그걸 오르려는 인간 사이의 심리전? “기싸움이라고 해야죠. 큰 산일수록 더욱 치열한. 케이투 같은 산이 대표적이지만, 촐라체도 음침하고 귀기 서린 거대한 벽입니다. 그 검은 벽을 바라보며 기싸움을 벌이다가 본능적으로 등반을 결정하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출발합니다. 위성 데이터에 의존하는 에베레스트 등반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1500m 절벽을 3박4일 동안 올라갔습니다. 정상에 선 기분은 말할 수 없었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은 정상에 오르면 환희에 찬 넓은 파노라마가 펼쳐질 것으로 상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상은 바람뿐입니다. 사진 찍고 한 1분쯤 머문 뒤 ‘강식아, 내려가자’고 말한 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종종, 인생에서도 그러하듯이) 고생고생하며 오른 정상이 막상 올라가보면 별 의미가 없을 때가 있지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건. 다만 이런 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상에 오른 자만이, 거기에 서 본 자만이 자신의 다음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내 경우 정상에 올랐을 때 다른 건 안 보이고 그저 다음에 오를 산만 주욱 보이더라구요. 요번에 촐라체에 올랐으니, 다음엔 저 봉우리, 그다음엔 저기 하는 식으로… 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 여기도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구나 하는 걸 올라가 본 사람만 느끼게 되는 걸까요?” 정상에 오른다는 게 희열만은 아니라는 말로도 들리네요. “진정한 희열은 정상에서 무사히 내려와 평지에 두 발을 디뎠을 때입니다. 아, 살아서 내려왔구나 하는 안도감. 그게 가장 큰 희열이죠. 온전히 땅을 딛고 있지 않는 한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요.”


히말라야서 5년전 기적생환 박정헌씨
히말라야서 5년전 기적생환 박정헌씨
박정헌과 최강식 두 자일파티는 2004년 12월24일 한국을 떠나 2005년 1월13일 새벽 3시 촐라체 북벽 4900m 고지를 출발해 1월16일 오전 11시 6440m 정상에 섰다. 알파인 스타일의 겨울철 촐라체 등정은 우리나라 히말라야 등반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이들의 하산길 조난 소식은 18일 한국에 전해졌으며, 두 사람은 국내외 산악 동료들의 노력으로 1월21일 현지 구조대에 인계돼 1월23일 서울로 귀환했다.

‘비행으로 히말라야 대종주’ 목표로 두번째 삶
세번째 인생선 다시 강식과 ‘자일파티’ 되고파

지상으로 돌아와서

히말라야를 떠나며 무슨 생각을 했나요? 다시 오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구조해 준 소몰이꾼 할아버지 집에 누워 있을 때 소설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돌아가면 동상 걸린 손발을 잘라야 하는데,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여기서 할아버지의 딸들과 살면 어떨까 하고….” 만약 조난당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면 인생이 많이 달라졌겠지요? “손가락 8개를 자르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얘들을 너무 혹사시켰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쉬라고 빨리 데려가나 보다. 저 손가락들처럼 사라지기 전에 이쯤에서 멈추라는 신호였나 보다… 그때 그렇게 산에서 나를 내려놓지 않았다면, 아마도 더 높고 더 큰 산봉우리들을 오르려 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어느 산에선가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릅니다.”

산사람이 산을 떠나면 어디로 가나요? 방황이 찾아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을 것 같은데요.

“마음의 갈등이 많았죠. 새로운 삶의 목표가 필요했는데, 이 손으로 이제 암벽은 불가능하고. 그때 누군가는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권했지만 그건 내 길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산을 아주 떠났나요? “아닙니다. 암벽을 안 할 뿐이었죠. 병원에서 퇴원하고 이듬해 촐라체에 다시 갔습니다. 조난 때 필름이 든 배낭을 두고 왔는데 그걸 찾으려고. 그때까지도 머릿속에는 항상 히말라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갔는데, 배낭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배낭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자, 비로소 자유가 느껴지는 거였습니다. 더는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 새로운 산, 새로운 삶을 찾아가야 한다는.” 그 배낭이 말하자면 과거에 대한 미련의 끈이었군요. “참 이상하더라구요. 그게 주는 메시지가.”

지금은 산악비행가, 산악모험가로 활동중입니다. 새로운 목표를 찾은 셈인가요?

“현재의 목표는 ‘히말라야 대종주’입니다. 열기구 등 여러 동력·무동력 수단을 동원해 히말라야 산맥 위를 비행하는 대모험이지요. 지구 환경 최후의 보루인 히말라야의 장대한 모습을 하늘에서 촬영하여 히말라야의 가치를 세계인들에게 알리려 합니다. 지금껏 지구상 그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프로젝트입니다.” 디데이는 언제인가요? “내년 9월 예정입니다. 파키스탄 케이투 부근 훈자를 출발해 카라코람, 인도 히말라야, 네팔 히말라야 지역 고봉을 거쳐 안나푸르나~에베레스트~칸첸중카로 이어지는 총연장 비행거리 3500㎞의 대장정입니다.” 이건 최종 목표인가요, 하나의 단계인가요? “히말라야에 관한 한 마지막 미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너와 자일파티가 되고 싶다

오늘도 산으로 떠나는 산악인들이 많습니다. 왜 산에 가느냐는 진부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면?

“산은 죽음을 불사하고 가는 것이지만, 죽기 위해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삶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산에 간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왜 산에 가는지 솔직히 잘 모릅니다. 다만, 너는 왜 산에 갔느냐고 물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유일하게 잘하는 일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표정이 밝아 보입니다. 지금의 삶이 행복한가요?

“저요? 때론 행복하고, 때로는 아니고. 에이, 사람이 어떻게 매일매일 행복하나요? 날씨도 하루는 흐렸다 하루는 맑았다 하는데.(웃음)” 우문이었네요. 강식씨와는 자주 봐야지요? “그럼요. 한 번씩은 봅니다. 강식이가 자기 삶의 에베레스트를 향해 꿋꿋이 가는 걸 보면 흐뭇합니다.” (강식씨는 대학원에서 장애인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가 되든 두 사람이 다시 자일을 묶고 인생이란 등반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해 보나요?

“저는 촐라체까지를 제1의 삶, 히말라야 대종주까지를 제2의 삶, 그리고 그 이후를 제3의 삶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 세번째 인생에서는 꼭 강식이와 동행하려 합니다. 제3의 삶이 생각대로 잘될지는 모르지만(웃음), 죽음도 불사하고 산에 갔는데, 안될 게 뭐 있어? 하는 자세로 함께 가자고 하렵니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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