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비현실 겹쳐진 한강변 담아
아리 그뤼에르는 아버지가 아그파 공장 소속 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친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늘 카메라와 필름 가까이에 있었다. 1962년 파리에서 패션 사진을 알게 된 그는 기법을 배우고 싶어 유명 패션 사진작가 윌리엄 클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사진은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개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룻만에 그와 갈라섰다.
그뤼에르는 독자적인 사진가로 <엘르> 같은 패션잡지에서 일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는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비록 내가 여성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의상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 것은 ‘우리가 가본 장소’ 같은 것이었다.”
패션사진을 그만둔 뒤 그가 처음 주력한 작업은 텔레비전 화면을 찍는 것이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과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 장면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찍었고, 그는 이것을 ‘첫 저널리스트적 임무’였다고 회고한다. 이 작업은 숱한 논쟁을 불러왔다. 텔레비전 문화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고 뉴스 사진, 나아가 포토저널리즘의 관행에 대한 급진적 도전이기도 했다. 그래서 1982년 그가 모로코와 벨기에에서 찍었던 사진과 함께 텔레비전 화면을 찍은 사진을 매그넘에 보냈을 때 주변에선 “그뤼에르를 회원으로 받아들이면 매그넘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매그넘은 그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철저한 포토저널리스트인 아바스와 함께 그뤼에르도 받아들였다. 그뤼에르는 자신이 저널리스트적 기반 없이 예술적 배경만으로 매그넘 회원이 된 첫 사례였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스스로 예술가라고 칭하는 것이 건방지다는 생각 때문에 그는 자신을 ‘사진가’라고 부른다.
그뤼에르는 자신의 사진작업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주제를 중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여러 장짜리 사진이 아닌 한 장에 모든 것을 담는 것이다. “브레송의 작업이 풍요로운 이유는 그가 많이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진을 한다면 집안에 앉아 ‘나는 예술가다’라고 하지 말고 어딘가로 가서 계속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낫다.”
그뤼에르는 한국에서 서울의 이모저모와 한강 주변을 기록했다. 이런 작업을 이해하려면 그가 오랫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해변에서 기록해온 사진들을 보는 게 도움이 된다. 서울의 강변에서 그는 현실과 비현실이 포개지는 듯한 장면들을 여럿 남겼다.
그는 말한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사진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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