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현장서 만난 안휘준 문화재위원장
[한겨레가 만난 사람] 숭례문 화재현장서 만난 안휘준 문화재위원장
안휘준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요즘 무척 바쁘다. 숭례문 화재 사건 이후 자문에 응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건물이 소실된 마당에 국보 자격을 유지해야 하는가 등등 직간접 소관이 아닌 게 없다. 바쁜 가운데 짬을 낸 안 위원장의 첫 마디는 “참담하다”는 말이었다. 스트레스로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돼 점심으로 죽을 먹는다고 했다. 숭례문 목조 2층 화재 현장도 인터뷰 사진 촬영차 지난 14일에야 들렀다. 분주한 수습현장에 행여 방해될까 염려했다지만 무엇보다 숭례문이 큰 부상을 입어 빈사지경에 이른 데에 자기 책임도 있다는 죄의식 때문이었다. 현장을 돌아본 뒤 그는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원화된 관리 시스템 구축 광역지자체에 ‘지청’ 설치해
‘전화위복’ 계기로 삼아야
일상과 분리돼 박제된 문화재 보존 만큼 계승 방식 중요
“문화재 보호가 이익 된다는 것 정부가 국민들에 입증할 때” - 문화재위원회가 화재에도 불구하고 숭례문의 ‘국보 1호’ 지위는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목조 2층은 소실됐지만 1층은 80%가 잔존하고 돌 구조인 육축이 고스란히 남아 전체적으로 4분의 3이 남아 있다. 대체로 70% 이상 남으면 자격을 유지한다. 회진(남김없이 소멸)된 부분도 정밀한 실측도가 남아 있다. 애초 국보 지정 당시 함께 고려됐던 서울 도성의 정문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도 훼손되지 않았다. 건축·사적분과 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위원들의 생각이 모두 일치했다. 여론을 의식한 것은 아니다.” - 이번에 드러난 문제와 해결책은? “관리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명목책임은 문화재청, 실질관리는 지자체가 맡고 있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아래로 갈수록 책임의식이 옅어진 듯하다. 명목과 실제를 일치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재청이 하부구조를 갖춰야 한다. 다른 관청과 달리 문화재청은 지방에 연구소만 있을 뿐이다. 광역지자체급까지 지청을 따로 두어야 한다. 또 문화재 개방에 따른 관리방식도 걸맞게 개선되어야 한다. 화재대책도 철저하게 재정비해야 한다. 너무 슬퍼만 할 게 아니라 문화재의 효율적인 관리와 보존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 관리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것을 중시하는 풍조가 약한 것 같다. 일제 36년이 심어준 우리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이 뿌리다. 그들은 문화수준이 더 높은 한민족을 지배하려 우리의 전통문화를 왜곡, 폄하, 말살했다. 중국 영향권이니, 독자성 없는 문화니 하면서…. ‘엽전은 별 수 없다’는 무력감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문화재를 훼손하거나 도굴하는 행위도 그 연장선이다. 이제는 그러한 피해를 완전히 극복할 때도 된 듯한데, 현실은 아직 그렇지 않다. 우리의 전통문화보다 외국, 특히 서양의 문화를 좋아하고 중시하는 경향이 짙다. 예를 들면 샤갈, 반 고흐 등 외국전시는 항상 성황을 이루는데 우리 박물관 기획전시는 늘 한산하다. 우리문화와 외래문화가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 전통 단절이 문제 아닌가? “최근 개방과 함께 문화재가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것은 겉보기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전통문화가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있다. 유·무형 문화재들 대부분이 일상현실과 단절돼 있다. 문화재는 현실과 연결되지 못한 채 소외돼 있고 전통공예 역시 일반의 수요가 끊겨있다. 현대적으로 계승되는 것은 도자기 등 상업성이 있는 일부 분야에 국한돼 있고 대부분이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서 겨우 맥을 잇는 형편이다. 8세기 방식의 비단짜기까지도 수요를 바탕으로 잘 이어지고 있는 일본과 무척 대비된다. 보존이 중요하지만 그 방식도 중요하다.” - 근본적인 해법은 있는가?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주입식 교육 탓에 단순지식을 외우게 할 뿐 한국인의 미의식과 창의성 등 전통문화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우쳐주지 않는다. 전통문화를 바르게 소개하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 창의성 있는 인재들이 그 능력이 필요한 분야, 즉 예술, 인문, 기초과학 등 분야로 가지 않고 정치, 경제, 경영, 법학 등 사회과학 계열에 몰리고 있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예술, 인문과학에 대한 소양이 미흡하다. 그리고 서울·지방의 격차가 크다. 전에 한 대학의 음미대 신입생을 조사해보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출신이 70~80%였고 군면 단위는 거의 없었다. 경향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 문화재가 때로는 개발과 주민생활 향상에 족쇄가 되기도 하는데…. “문화재를 보호하면 손해가 아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정부가 입증해야 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면밀한 조사와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재와 문화유적의 보호, 개발에 따른 보상 등을 위하여 문화재 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이 요구된다. 그리고 서울, 경주, 공주, 부여 등 옛 도읍지는 특히 개발에 따른 문제들이 더욱 심각하기 때문에 신도시 건설을 포함한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외국의 사례에 대한 연구와 검토도 필요하다고 본다. - 한반도 대운하는 어떻게 보나? 유역 문화재 훼손 우려가 높다. “경제뿐만 아니라 환경, 생태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문화재에 대한 영향 평가 없이 밀어붙여서는 안된다. 전란이 잦았던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에 비해 남아 있는 문화재와 유적이 적다. 더 이상의 파괴는 안된다. 문화재가 풍부하게 남아 있지 않으면 우리 전통문화의 훌륭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운하의 건설은 문화재의 보존을 포함한 여러가지 사항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조사하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화위복’ 계기로 삼아야
일상과 분리돼 박제된 문화재 보존 만큼 계승 방식 중요
“문화재 보호가 이익 된다는 것 정부가 국민들에 입증할 때” - 문화재위원회가 화재에도 불구하고 숭례문의 ‘국보 1호’ 지위는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목조 2층은 소실됐지만 1층은 80%가 잔존하고 돌 구조인 육축이 고스란히 남아 전체적으로 4분의 3이 남아 있다. 대체로 70% 이상 남으면 자격을 유지한다. 회진(남김없이 소멸)된 부분도 정밀한 실측도가 남아 있다. 애초 국보 지정 당시 함께 고려됐던 서울 도성의 정문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도 훼손되지 않았다. 건축·사적분과 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위원들의 생각이 모두 일치했다. 여론을 의식한 것은 아니다.” - 이번에 드러난 문제와 해결책은? “관리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명목책임은 문화재청, 실질관리는 지자체가 맡고 있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아래로 갈수록 책임의식이 옅어진 듯하다. 명목과 실제를 일치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재청이 하부구조를 갖춰야 한다. 다른 관청과 달리 문화재청은 지방에 연구소만 있을 뿐이다. 광역지자체급까지 지청을 따로 두어야 한다. 또 문화재 개방에 따른 관리방식도 걸맞게 개선되어야 한다. 화재대책도 철저하게 재정비해야 한다. 너무 슬퍼만 할 게 아니라 문화재의 효율적인 관리와 보존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 관리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것을 중시하는 풍조가 약한 것 같다. 일제 36년이 심어준 우리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이 뿌리다. 그들은 문화수준이 더 높은 한민족을 지배하려 우리의 전통문화를 왜곡, 폄하, 말살했다. 중국 영향권이니, 독자성 없는 문화니 하면서…. ‘엽전은 별 수 없다’는 무력감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문화재를 훼손하거나 도굴하는 행위도 그 연장선이다. 이제는 그러한 피해를 완전히 극복할 때도 된 듯한데, 현실은 아직 그렇지 않다. 우리의 전통문화보다 외국, 특히 서양의 문화를 좋아하고 중시하는 경향이 짙다. 예를 들면 샤갈, 반 고흐 등 외국전시는 항상 성황을 이루는데 우리 박물관 기획전시는 늘 한산하다. 우리문화와 외래문화가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 전통 단절이 문제 아닌가? “최근 개방과 함께 문화재가 가까워지고 있지만 그것은 겉보기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전통문화가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있다. 유·무형 문화재들 대부분이 일상현실과 단절돼 있다. 문화재는 현실과 연결되지 못한 채 소외돼 있고 전통공예 역시 일반의 수요가 끊겨있다. 현대적으로 계승되는 것은 도자기 등 상업성이 있는 일부 분야에 국한돼 있고 대부분이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서 겨우 맥을 잇는 형편이다. 8세기 방식의 비단짜기까지도 수요를 바탕으로 잘 이어지고 있는 일본과 무척 대비된다. 보존이 중요하지만 그 방식도 중요하다.” - 근본적인 해법은 있는가?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주입식 교육 탓에 단순지식을 외우게 할 뿐 한국인의 미의식과 창의성 등 전통문화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우쳐주지 않는다. 전통문화를 바르게 소개하는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 창의성 있는 인재들이 그 능력이 필요한 분야, 즉 예술, 인문, 기초과학 등 분야로 가지 않고 정치, 경제, 경영, 법학 등 사회과학 계열에 몰리고 있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예술, 인문과학에 대한 소양이 미흡하다. 그리고 서울·지방의 격차가 크다. 전에 한 대학의 음미대 신입생을 조사해보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출신이 70~80%였고 군면 단위는 거의 없었다. 경향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 문화재가 때로는 개발과 주민생활 향상에 족쇄가 되기도 하는데…. “문화재를 보호하면 손해가 아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정부가 입증해야 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면밀한 조사와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재와 문화유적의 보호, 개발에 따른 보상 등을 위하여 문화재 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이 요구된다. 그리고 서울, 경주, 공주, 부여 등 옛 도읍지는 특히 개발에 따른 문제들이 더욱 심각하기 때문에 신도시 건설을 포함한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외국의 사례에 대한 연구와 검토도 필요하다고 본다. - 한반도 대운하는 어떻게 보나? 유역 문화재 훼손 우려가 높다. “경제뿐만 아니라 환경, 생태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문화재에 대한 영향 평가 없이 밀어붙여서는 안된다. 전란이 잦았던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에 비해 남아 있는 문화재와 유적이 적다. 더 이상의 파괴는 안된다. 문화재가 풍부하게 남아 있지 않으면 우리 전통문화의 훌륭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운하의 건설은 문화재의 보존을 포함한 여러가지 사항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조사하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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