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 미국 의회 ‘인재 채용 시스템’
하버드에서 인권을 가르치는 사람 중에 요즘 한창 떠오르는 스타로 케네디스쿨의 사만사 파워교수가 있다. 그녀가 쓴 <지옥으로부터의 문제 - 미국 그리고 제노사이드의 시대>는 20세기의 특징적 현상인 제노사이드와 미국 대외정책에 대한 명저로 꼽힌다. 나는 이 곳에 와서 책으로만 접하던 파워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9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삶의 역정, 저널리즘과 인권활동과 학문을 다함께 맹렬히 추구하는 열정, 그리고 이제 삼십대 후반의 나이에 국제인권 정치판을 훤히 꿰고 있는 안목 등 인상적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눈부시게 똑똑한 이 신진학자를 접한 후 내 신세와 비교하는 대조표를 한번 만들어 보았다. 나이 항목만 빼고 하나도 더 높은 점수가 없어 나는 심한 우울증에 빠질 정도였다. (나이 많은 것이 ‘높은’ 점수인지도 확실치 않지만!)
그런데 파워교수의 이력 중 내 눈길을 끈 점이 하나 더 있었다. 2005-6년 사이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바락 오바마 상원의원실에서 대외정책 펠로를 지냈다는 것이다. 흑인 정치인으로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오바마 상원의원은 차기 대통령 출마를 위해 뛰고 있는 민주당의 유력한 후보다. 이런 정치인을 위해 학자가 정식 유급 자문직을 수행했던 것이다. 만일 오바마 의원이 대통령이 된다면 아마 파워교수는 당장 국무부 고위직으로 불려갈 게 분명하다. 나는 이것을 입법부, 학계, 시민사회의 공식적 교류 채널이라고 해석한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한국의 국회에도 이런 제도가 있는지 들어보진 못했다. 궁금증이 생긴 나는 얼마 전 워싱턴에 가는 길에 미국 국회가 공식적으로 어떤 보좌기능을 운영하고 있는지, 시민사회로부터 어떻게 인재풀을 흡수하고 있는지에 대해 기초적인 정보를 알아보았다.
“입법 과정에서 세상을 바꾸겠다”
젊은이들 밤에 접시 닦으며 의회 문턱 대기
오바마의원 무급인턴 1명 뽑는데 천명 몰려
정당 민주주의 힘 과시…우리도 벤치마킹을! 잘 알다시피 미국 의회는 보좌기능이 탄탄하다고 소문이 나 있다. 정책개발과 입법의 전문성이 이런 제도에서 나온다고들 한다. 작년 말 총선 이후 올 초 제110대 의회가 개원하면서 국회의 보좌진용도 대폭 물갈이가 되었다. 워싱턴시에서 발행되는 각종 유가지, 무가지에 국회 일자리 관련 정보기사가 눈에 많이 띠었다. 우선 공식적으로 국회의원들이 어떤 보좌진을 두고 있을까? 100명 정원의 상원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유권자 숫자에 따라 연간 270만에서 430만달러 정도의 보좌진 예산을 배정받는다. 이 돈으로 각 의원실은 지역구 사무실을 제외하고 워싱턴에 평균 30명 안팎의 공식 유급 보좌인력을 둘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자리일까? 괄호 안은 평균 연봉이다. 비서실장(15만7천불), 입법수석(12만), 법률자문(9만5천), 공보수석(9만4천), 총무수석(7만8천), 행정보좌(6만8천), 입법보좌 5명(각 6만5천), 언론담당(6만3천), 비서실시스템관리(6만), 일정담당(5만9천), 기획·용역수석(4만9천), 우편·통신관리(3만8천), 총무보좌(3만6천), 입법서기 4명(각 3만2천), 우편·통신보좌(3만), 실무보조 4명(각 2만8천) 등이다. 이들 중 하급직은 연간 3~5주의 유급휴가와, 봉급중 일부를 대학 다니느라 빌려 썼던 학자금 대출의 상환금 보조로 매달 5백불씩 받을 수 있다.
정식 채용땐 학자금 상환 보조 다음, 435명 정원의 하원의원들은 약 130만달러의 예산으로 평균 15명씩 다음과 같은 보좌진을 워싱턴에 둘 수 있다. 비서실장(13만), 법률자문(8만), 입법수석(7만7천), 공보수석(5만5천), 기획·용역코디(5만4천), 입법보좌(5만2천), 비서실 총무(5만), 행정보좌(4만8천), 입법보조 2명(각 4만1천), 비서실시스템관리(4만), 입법서기(3만1천), 실무보조(2만8천) 등이다. 이들도 매년 일정 기간의 유급휴가와 학자금 대출 상환금 보조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정규 보좌진으로 일하기 시작하면 이 일이 자신의 평생직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정계, 관계, 언론계, 공식 로비업계를 잇는 정책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얼추 입법부 주변에만 공식적으로 약 만명의 인재가, 비공식 인턴을 합치면 수 만명의 인재가 모여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워싱턴에서 식당을 하는 내 초등학교 동기에 따르면 이들이 ‘교양 있고 친절한’ 고객이라고 한다. 새우잠…모의면접…기쓰고 도전 이런 공식적 체계보다 더 중요한 초기 진입단계에서 의회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어떠한가? 미국 의회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 공익시민단체의 활동가 및 자원활동 경험자들에게 공직진출의 중요한 채널이 되고 있었다. 의원실에서 방학중 한 두달 자원활동 하는 것을 빼고도, 학교 졸업 후 정식으로 무급인턴 자리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길을 통해 입법부의 정책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원실에서 작년에 무급인턴직 1명을 공채했는데 천명이 몰렸다는 소문도 있다. 이들은 물가 비싼 워싱턴에 사는 지인들을 수소문해 거실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밤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면서 낮에는 의원실에서 무급인턴을 한다. 이런 생활을 1, 2년씩 하면서 정식 직원의 길을 찾는 경우도 있다. 불확실한 인턴의 길을 걷기 위해 아는 사람들의 거실 소파에서 공짜 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는 것을 ‘카우치 서핑’ (couch-surfing)이라고 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왜 전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기업체에 비해 대우도 낮고 확실한 보장도 없는 자리에 기를 쓰고 도전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공직’에 대한 꿈 때문이다. 자신의 이상을 입법과정 속에서 실현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꼭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의회를 둘러싼 전문집단의 일원이 됨으로써 미국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상하원 모두 국회사무처 차원에서 이런 지망생들의 이력서 접수창구를 갖추고 있고, 각 의원실에서 최종면접을 보기 전에 모의면접까지 실시해 준다. 의회경영재단 (CMF)이라는 곳에서는 이런 무급인턴들의 정규직 승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첫째, 항상 정장을 하고 프로처럼 처신하라. 둘째, 입법부와 행정부의 운영방식에 대해 늘 귀동냥을 하라. 셋째, 국회에서 발행하는 의회조사연구보고서는 읽고 또 읽고 껴안고 자라. 넷째, 인턴이라고 기죽지 말고 자신 있게 행동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법을 익혀라. 다섯째, 공식행사, 리셉션 같은 데 꼭 참석해서 안면을 익히고, 남은 음식을 조용히 챙겨가서 식비를 절약하라. 여섯째, 절대 포기하지 말고 언제나 이력서를 들고 다니면서 끈질기게 도전하라. 한국도 똑똑한 시민에 문호개방을 물론 시민단체의 올챙이 간사로부터 중견 간부까지 의회 정책전문가로서 진출할 수 길이 열려 있고 그런 자리바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어디서 일하든 ‘공익’을 위한다는 면에서는 똑 같다고 생각한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포함한 공무원 전문 노동시장도 형성되어 있다. 입법부 공직 지망생을 위한 대표적인 구인·구직 단체로는 폴리템스(www.politemps.com), 중견 간부들을 위한 헤드헌팅 단체로는 캐피털웍스(www.capitolworks.com)가 있다. 연초에 의회가 개원할 때 이런 시장이 제일 붐볐지만 앞으로 몇 달 동안 제2의 구인 물결이 올 것이라고 한다. 처음 몇 달 사람을 써보고 자리에 안 맞을 경우 보좌진을 새로 채용하는 의원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동안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을 놓고 많은 논의가 있었고 정당민주주의를 정착시킬 방안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았다. 정당정치가 원론으로는 이상적이겠지만 우리 정당의 현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예컨대 요즘 한국의 집권여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 곳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납득시키기는 대단히 어렵다. 내 영어가 딸려서 그럴 수도 있겠고 한국의 정당정치가 ‘설명 불가능’한 실체여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정당을 통한 정치발전의 길이 이렇게 어렵다면 차라리 입법부 자체의 몸집을 키우고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정책공동체를 조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참여정부 들어 행정부와 시민사회의 교류가 대폭 늘었지만 그것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차라리 입법부가 ‘참여국회’라는 기치를 내걸고 적극적으로 시민사회와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원리적으로 보아도 입법부가 시민사회와 민간의 자유로운 숨결을 소화하기에 훨씬 좋은 위치에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열성적인가? 장기적으로 입법부가 살려면 이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게 제일 현명한 투자일지도 모른다.
조효제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인권펠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젊은이들 밤에 접시 닦으며 의회 문턱 대기
오바마의원 무급인턴 1명 뽑는데 천명 몰려
정당 민주주의 힘 과시…우리도 벤치마킹을! 잘 알다시피 미국 의회는 보좌기능이 탄탄하다고 소문이 나 있다. 정책개발과 입법의 전문성이 이런 제도에서 나온다고들 한다. 작년 말 총선 이후 올 초 제110대 의회가 개원하면서 국회의 보좌진용도 대폭 물갈이가 되었다. 워싱턴시에서 발행되는 각종 유가지, 무가지에 국회 일자리 관련 정보기사가 눈에 많이 띠었다. 우선 공식적으로 국회의원들이 어떤 보좌진을 두고 있을까? 100명 정원의 상원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유권자 숫자에 따라 연간 270만에서 430만달러 정도의 보좌진 예산을 배정받는다. 이 돈으로 각 의원실은 지역구 사무실을 제외하고 워싱턴에 평균 30명 안팎의 공식 유급 보좌인력을 둘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자리일까? 괄호 안은 평균 연봉이다. 비서실장(15만7천불), 입법수석(12만), 법률자문(9만5천), 공보수석(9만4천), 총무수석(7만8천), 행정보좌(6만8천), 입법보좌 5명(각 6만5천), 언론담당(6만3천), 비서실시스템관리(6만), 일정담당(5만9천), 기획·용역수석(4만9천), 우편·통신관리(3만8천), 총무보좌(3만6천), 입법서기 4명(각 3만2천), 우편·통신보좌(3만), 실무보조 4명(각 2만8천) 등이다. 이들 중 하급직은 연간 3~5주의 유급휴가와, 봉급중 일부를 대학 다니느라 빌려 썼던 학자금 대출의 상환금 보조로 매달 5백불씩 받을 수 있다.
정식 채용땐 학자금 상환 보조 다음, 435명 정원의 하원의원들은 약 130만달러의 예산으로 평균 15명씩 다음과 같은 보좌진을 워싱턴에 둘 수 있다. 비서실장(13만), 법률자문(8만), 입법수석(7만7천), 공보수석(5만5천), 기획·용역코디(5만4천), 입법보좌(5만2천), 비서실 총무(5만), 행정보좌(4만8천), 입법보조 2명(각 4만1천), 비서실시스템관리(4만), 입법서기(3만1천), 실무보조(2만8천) 등이다. 이들도 매년 일정 기간의 유급휴가와 학자금 대출 상환금 보조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정규 보좌진으로 일하기 시작하면 이 일이 자신의 평생직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정계, 관계, 언론계, 공식 로비업계를 잇는 정책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얼추 입법부 주변에만 공식적으로 약 만명의 인재가, 비공식 인턴을 합치면 수 만명의 인재가 모여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워싱턴에서 식당을 하는 내 초등학교 동기에 따르면 이들이 ‘교양 있고 친절한’ 고객이라고 한다. 새우잠…모의면접…기쓰고 도전 이런 공식적 체계보다 더 중요한 초기 진입단계에서 의회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어떠한가? 미국 의회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 공익시민단체의 활동가 및 자원활동 경험자들에게 공직진출의 중요한 채널이 되고 있었다. 의원실에서 방학중 한 두달 자원활동 하는 것을 빼고도, 학교 졸업 후 정식으로 무급인턴 자리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길을 통해 입법부의 정책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원실에서 작년에 무급인턴직 1명을 공채했는데 천명이 몰렸다는 소문도 있다. 이들은 물가 비싼 워싱턴에 사는 지인들을 수소문해 거실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밤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면서 낮에는 의원실에서 무급인턴을 한다. 이런 생활을 1, 2년씩 하면서 정식 직원의 길을 찾는 경우도 있다. 불확실한 인턴의 길을 걷기 위해 아는 사람들의 거실 소파에서 공짜 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는 것을 ‘카우치 서핑’ (couch-surfing)이라고 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왜 전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기업체에 비해 대우도 낮고 확실한 보장도 없는 자리에 기를 쓰고 도전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공직’에 대한 꿈 때문이다. 자신의 이상을 입법과정 속에서 실현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꼭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의회를 둘러싼 전문집단의 일원이 됨으로써 미국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상하원 모두 국회사무처 차원에서 이런 지망생들의 이력서 접수창구를 갖추고 있고, 각 의원실에서 최종면접을 보기 전에 모의면접까지 실시해 준다. 의회경영재단 (CMF)이라는 곳에서는 이런 무급인턴들의 정규직 승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첫째, 항상 정장을 하고 프로처럼 처신하라. 둘째, 입법부와 행정부의 운영방식에 대해 늘 귀동냥을 하라. 셋째, 국회에서 발행하는 의회조사연구보고서는 읽고 또 읽고 껴안고 자라. 넷째, 인턴이라고 기죽지 말고 자신 있게 행동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법을 익혀라. 다섯째, 공식행사, 리셉션 같은 데 꼭 참석해서 안면을 익히고, 남은 음식을 조용히 챙겨가서 식비를 절약하라. 여섯째, 절대 포기하지 말고 언제나 이력서를 들고 다니면서 끈질기게 도전하라. 한국도 똑똑한 시민에 문호개방을 물론 시민단체의 올챙이 간사로부터 중견 간부까지 의회 정책전문가로서 진출할 수 길이 열려 있고 그런 자리바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어디서 일하든 ‘공익’을 위한다는 면에서는 똑 같다고 생각한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포함한 공무원 전문 노동시장도 형성되어 있다. 입법부 공직 지망생을 위한 대표적인 구인·구직 단체로는 폴리템스(www.politemps.com), 중견 간부들을 위한 헤드헌팅 단체로는 캐피털웍스(www.capitolworks.com)가 있다. 연초에 의회가 개원할 때 이런 시장이 제일 붐볐지만 앞으로 몇 달 동안 제2의 구인 물결이 올 것이라고 한다. 처음 몇 달 사람을 써보고 자리에 안 맞을 경우 보좌진을 새로 채용하는 의원실이 많기 때문이다.
조효제 /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인권펠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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