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윈-윈이 될 것이라는 정부의 낙관적 자세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여전히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서울에서 한미 FTA 협상이 이틀째 진행되고 있던 지난 1월16일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열린 리셉션장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가 건배를 하며 김종훈 수석대표에게 귀엣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체국 완전민영화돼도 250원에 편지 가능?
전기 민영화돼도 시골까지 전봇대 세울까?
대학보조금 없어져도 등록금 수백만원 유지?
자본 세계화 맞선 공공역할 없다면 끔찍
전기 민영화돼도 시골까지 전봇대 세울까?
대학보조금 없어져도 등록금 수백만원 유지?
자본 세계화 맞선 공공역할 없다면 끔찍
안과 밖 /
끔찍한 상상을 해본다. 소방산업(?)을 민영화한다고 생각해보자. 여러 업체들이 경쟁을 하게 되면 서비스(?)가 개선될 수도 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것보다 효율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불을 더 빨리 잘 끄고 인명피해도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 심지어 장난전화를 걸어도 지금보다 더 친절하게 응대할지도 모른다. 그때쯤이면 아마 소방서 광고를 TV에서도 보게 될 것이다. “불이 나면 ○○○로 연락하세요. 가장 확실하게 꺼드립니다.”
어디에선가 불이 나면 여러 업체의 소방차가 한꺼번에 출동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통사고 현장의 견인차량을 생각하면 쉽다. 민영화 이후에는 화재신고를 받고 소방차가 현장에 나타나는 시간이 지금보다 더 짧아질 수도 있다. 심지어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출동할 수도 있다. 놀랍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민영화를 하게 되면 정부 예산이 줄어들고 그만큼 국민들 세금 부담도 줄어든다. 대선 공약으로 내걸면 많은 표를 얻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일단 기업 입장에서는 실적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든 이익을 내야하고 주주들에게 배당도 줘야 한다. 문제는 이 업종의 특성상 사전에 용역비를 받을 수 없다는데 있다. 이를테면 기껏 불을 꺼주고도 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냉정하고 현명한 경영자라면 선택과 집중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이왕이면 돈 되는 지역을 골라 영업점을 세워야 하고 아예 회원제로 운영하는 방법도 있다.
최악의 경우, 화재 신고와 함께 신용카드 번호를 불러줘야 할지도 모른다. “일시불로 하시겠습니까. 3개월 무이자 할부로 하시겠습니까.” 화재 규모가 크다면 재산 피해와는 별개로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청구서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은 섣불리 소방차를 부르는 것보다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게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다. 변두리 지역이라면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계신 지역은 저희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
돈 안 내면 불 안 꺼준다?
황당무계하게 들리지만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공부문의 민영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적으로 시장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상대적으로 정부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전기와 통신, 가스 등 에너지 산업은 물론이고 교육이나 교통, 물류, 심지어 마시는 물까지 민영화하자고 주장한다.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고 서비스도 개선되고 게다가 가격까지 낮아지게 된다는 주장이다.
자유무역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도 비슷한 논리에서 출발한다. 관세나 보호무역으로 국내산업을 보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논리다. 경쟁력 없는 산업은 과감히 도태시키고 경쟁력 있는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하나마나 한 소리도 이 연장선 위에 있다. 정부는 뒤로 물러나고 기업에 맡겨두기만 하면 알아서 다들 잘할 거라는 이야기다. 정부는 갈수록 불필요한 간섭만 하는 애물단지가 돼 간다.
정부는 12일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7차 협상에 돌입했다. 소고기와 자동차, 의약품, 스크린 쿼터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파격적으로 양보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농산물시장 개방 등 핵심 쟁점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정부의 계획대로 6월 말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이 만료되기 전에 협상을 타결하려면 늦어도 3월 말까지는 핵심 쟁점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산업에 따라 이해득실을 따져볼 수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 이 모든 논의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당연한 의문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멕시코에서는 저임금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다. 기업들 생산성은 올라갔지만 평균 임금은 NAFTA 체결 이전보다 더 떨어졌다. 대외 의존도가 높아졌고 핵심 우량 기업들의 외국인 지분 비율도 높아졌다. 내수 기업들의 도산도 잇따랐다. 미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NAFTA 체결 이후 10년 동안 무려 30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는데 미국 기업들 이익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3만8천가구 이상의 농가가 사라졌지만 카길이나 ADM 등 대형 농업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더욱 높아졌다. 멕시코는 물론이고 미국의 노동자들과 농민들도 자유무역의 희생양이 됐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장밋빛 기대를 접어두고 일단 묻고 싶어진다. 이 모든 게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인가. 한미 FTA의 핵심쟁점 가운데 하나인 투자자 국가 소송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나라에 투자했다가 부당한 차별대우로 사유재산에 피해를 입을 경우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1999년 미국의 택배회사 UPS가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UPS는 캐나다 정부가 우체국의 택배 서비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UPS의 희망사항처럼 우체국을 완전히 민영화한다고 상상해 보자. 지금처럼 서울 한복판이나 강원도 산골짜기나 단돈 250원이면 전국 어디든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은 그때도 가능할까. 하루 30명도 채 오지 않는 시골 우체국은 그때도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때도 집배원 아저씨가 우체통을 돌면서 편지를 수거해갈까. 결정적으로 적자를 보면서도 지금의 우편 요금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전기를 완전히 민영화한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이 전기회사 사장이라면 수많은 전봇대를 세워가며 시골 마을까지 전기를 끌어다 넣을 이유가 있을까. 당장 전기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발전설비를 굳이 넉넉히 늘릴 필요가 있을까. 전기회사 입장에서는 전기를 많이 만들어 못 팔고 남기는 것보다 적당히 만들어서 모두 파는 게 좋다. 가끔 공급이 부족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 정전 사태가 그랬다. 한편 KTX 승무원 사태에서 보듯이 철도 민영화의 폐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철도는 애초에 이익을 낼 수 없는 사업구조다. 철도회사가 굳이 이익을 내려면 철도 요금을 올리거나 인력을 감축하거나 유지 보수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하루 세 번 점검할 것을 두 번만 점검하면 그만큼 인력과 비용이 줄어든다. 물론 사고의 위험은 더 커진다. 대형 철도사고가 났던 영국에서는 실패를 인정하고 민영화한 철도를 다시 공영화하기도 했다. 자본의 연대- 정부의 역할은 없나 만약 한미 FTA가 체결되고 미국 대학의 분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면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명백한 차별대우니까 할 말이 없게 된다. 결국 대학 보조금이 모두 폐지된다고 상상해보자. 가뜩이나 등록금 때문에 난린데 머지않아 5천만원 이상의 등록금을 구경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경제자유구역에서는 영리적 목적의 교육기관 설립이 허가돼 있는 상태다. 의약품 특허를 둘러싼 논쟁도 눈여겨 봐야 한다. 신약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허 기간을 20년 이상으로 늘리는 건 문제가 많다. 특허를 보호하자는 주장의 의도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당연히 제약회사들 독점이 연장되고 그만큼 이익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짚고 넘어갈 것은 그 이익이 고스란히 아픈 사람들과 그 가족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내친 김에 건강보험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건강보험을 받지 않으면서 훨씬 수준 높은 치료를 하는 병원을 따로 만들자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건강보험을 받는 병원과 안 받는 병원으로 나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건강보험을 안 받는 병원이 늘어나면 결국 건강보험은 축소 또는 폐지될 수도 있다. 기꺼이 돈을 더 내면서 좋은 병원을 찾는 사람과 상대적으로 수준 낮은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나뉘게 된다. 한미 FTA가 통과되면 이런 모든 상상이 좀 더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미 FTA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자본이 국경을 넘어 연대하는 과정이다.
한 나라의 국익 차원을 넘어 세계적으로 자본과 노동의 양극화가 확산되는 과정이다. 자본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국경을 넘고 공공부문까지 시장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정부 역시 기꺼이 자본의 편에 서 있다.
한미 FTA의 체결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줄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아직도 정부의 역할이 유효한가, 또는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반문해볼 필요도 있겠지만 자본이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고 자본의 공격에 맞서 공공의 영역을 지켜내는 것이 막연하나마 실마리가 될 것이다.
이정환/ 프로슈머 기자
정부는 12일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7차 협상에 돌입했다. 소고기와 자동차, 의약품, 스크린 쿼터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파격적으로 양보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농산물시장 개방 등 핵심 쟁점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정부의 계획대로 6월 말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이 만료되기 전에 협상을 타결하려면 늦어도 3월 말까지는 핵심 쟁점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산업에 따라 이해득실을 따져볼 수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 이 모든 논의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당연한 의문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멕시코에서는 저임금 일자리가 크게 늘어났다. 기업들 생산성은 올라갔지만 평균 임금은 NAFTA 체결 이전보다 더 떨어졌다. 대외 의존도가 높아졌고 핵심 우량 기업들의 외국인 지분 비율도 높아졌다. 내수 기업들의 도산도 잇따랐다. 미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NAFTA 체결 이후 10년 동안 무려 30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는데 미국 기업들 이익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3만8천가구 이상의 농가가 사라졌지만 카길이나 ADM 등 대형 농업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더욱 높아졌다. 멕시코는 물론이고 미국의 노동자들과 농민들도 자유무역의 희생양이 됐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장밋빛 기대를 접어두고 일단 묻고 싶어진다. 이 모든 게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인가. 한미 FTA의 핵심쟁점 가운데 하나인 투자자 국가 소송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나라에 투자했다가 부당한 차별대우로 사유재산에 피해를 입을 경우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1999년 미국의 택배회사 UPS가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UPS는 캐나다 정부가 우체국의 택배 서비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UPS의 희망사항처럼 우체국을 완전히 민영화한다고 상상해 보자. 지금처럼 서울 한복판이나 강원도 산골짜기나 단돈 250원이면 전국 어디든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은 그때도 가능할까. 하루 30명도 채 오지 않는 시골 우체국은 그때도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때도 집배원 아저씨가 우체통을 돌면서 편지를 수거해갈까. 결정적으로 적자를 보면서도 지금의 우편 요금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전기를 완전히 민영화한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이 전기회사 사장이라면 수많은 전봇대를 세워가며 시골 마을까지 전기를 끌어다 넣을 이유가 있을까. 당장 전기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발전설비를 굳이 넉넉히 늘릴 필요가 있을까. 전기회사 입장에서는 전기를 많이 만들어 못 팔고 남기는 것보다 적당히 만들어서 모두 파는 게 좋다. 가끔 공급이 부족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 정전 사태가 그랬다. 한편 KTX 승무원 사태에서 보듯이 철도 민영화의 폐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철도는 애초에 이익을 낼 수 없는 사업구조다. 철도회사가 굳이 이익을 내려면 철도 요금을 올리거나 인력을 감축하거나 유지 보수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하루 세 번 점검할 것을 두 번만 점검하면 그만큼 인력과 비용이 줄어든다. 물론 사고의 위험은 더 커진다. 대형 철도사고가 났던 영국에서는 실패를 인정하고 민영화한 철도를 다시 공영화하기도 했다. 자본의 연대- 정부의 역할은 없나 만약 한미 FTA가 체결되고 미국 대학의 분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면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명백한 차별대우니까 할 말이 없게 된다. 결국 대학 보조금이 모두 폐지된다고 상상해보자. 가뜩이나 등록금 때문에 난린데 머지않아 5천만원 이상의 등록금을 구경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경제자유구역에서는 영리적 목적의 교육기관 설립이 허가돼 있는 상태다. 의약품 특허를 둘러싼 논쟁도 눈여겨 봐야 한다. 신약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허 기간을 20년 이상으로 늘리는 건 문제가 많다. 특허를 보호하자는 주장의 의도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당연히 제약회사들 독점이 연장되고 그만큼 이익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짚고 넘어갈 것은 그 이익이 고스란히 아픈 사람들과 그 가족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내친 김에 건강보험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건강보험을 받지 않으면서 훨씬 수준 높은 치료를 하는 병원을 따로 만들자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건강보험을 받는 병원과 안 받는 병원으로 나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건강보험을 안 받는 병원이 늘어나면 결국 건강보험은 축소 또는 폐지될 수도 있다. 기꺼이 돈을 더 내면서 좋은 병원을 찾는 사람과 상대적으로 수준 낮은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나뉘게 된다. 한미 FTA가 통과되면 이런 모든 상상이 좀 더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미 FTA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자본이 국경을 넘어 연대하는 과정이다.
이정환/ 프로슈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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