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출산파업’은 기득권에 대한 저항

등록 2006-05-25 19:03수정 2006-05-26 17:30

유럽은 출산저하에 정공법으로 대응했다. 먼저 낙태시술을 합법화하고 수술비를 전액 무료화했다. 이미 1975년 무렵 유럽 국가 대부분이 낙태를 합법화했다. 박승화 <한겨레 21>기자
유럽은 출산저하에 정공법으로 대응했다. 먼저 낙태시술을 합법화하고 수술비를 전액 무료화했다. 이미 1975년 무렵 유럽 국가 대부분이 낙태를 합법화했다. 박승화 <한겨레 21>기자
낙태시술 합법화 여성 건강 보호하고 가족 관련 사회보장제도 대폭 손보라
미혼모 가정·동거가정·다문화 가정 계속 차별하려면 출산 기피 감수하라
안과 밖

한국의 여성들이 출산을 거부하고 있다. 남의 아이를 보면 귀엽다고 어쩔 줄을 모르면서 정작 자신들은 출산을 기피한다. 출산포기는 한국 여성들의 절박한 저항의 몸부림이다. 아이 낳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사회와 한국의 제도, 한국의 기득권 계층, 한국의 보수주의를 엿먹이는 행위다.

한국의 출산율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중 최하위라는 발표가 나왔다. 출산율이 저조하다는 사실을 어제 오늘에야 알게 된 것이 아닌데도, 선진국 중 최하위이고 더구나 나중에 연령 성비가 깨진다는 통계가 나오자 언론은 이러한 현상이 현 정부의 실수인양 매도하고, 빨리 대책을 내놓으라고 다그치고 있다. 사실 산부인과 병원과 소아과 병원이 문을 닫는 곳이 많고 주위의 유치원들도 문을 닫을 정도로 저출산은 심각하다. 이쯤에서 우리는 왜 이런 현상이 대두하게 되었는지를 차분하게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유럽 사람들은 중세 때부터 자기들이 낳은 아이를 포기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17~19세기 독일 뷔르템베르크 지방의 경우, 유아 사망률이 35~50 %에 이르렀다고 한다.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자식들을 다 먹여 살릴 수가 없어, 자식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고의적으로 방치했기 때문이다.(<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김기봉)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너무 가난하면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아이를 버리곤 했다. 자신의 분신을 버리는 것은 사회와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강한 분노의 표시였다. 물론 사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은 자살이요, 그 다음은 미쳐버리는 일이다. 자식을 버리는 것은 아마 그 다음쯤에 해당될 것이다. 사람들은 전쟁 때가 되면 출산을 거부했고 자연 피임이 되기도 했으며, 식량배급이 열악하면 일부 여성들의 경우 생리마저 중단되기도 했다.

‘자식 버리기’는 분노의 표시

19세기나 20세기에 오면 부르주아는 유산상속에 필요한 수만큼의 자녀만 출산하고는 피임을 하고 낙태를 하면서, 인구 증가는 무산계급이나 중산층에게 미루었다. 하지만 곧 중산층도 부르주아를 따라 산아제한을 했다. 1860년대에 이미 영국에서는 콘돔 1개의 가격이 10펜스에서 1페니로 떨어졌으며(<부르주아전>. 서해문집). 1890년대에 유럽에서는 부르주아와 중산층에서 낙태수술이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다(<풍속의 역사 IV>. 푹스). 경제적 이유와 삶을 즐기려는 ‘이기적인’ 이유로 중산층은 인구증가에 대한 부르주아의 요청을 거부해버렸던 것이다. 노동자계급만이 낙태비용이 없어 출산을 했고, 계속해서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출산기피 현상을 피하기 위한 여러 원인분석과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성사회참여 욕구로 보는 견해, 자녀들의 독립심을 가로막는 모성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주장, 심지어 ‘출산율 기피 걱정 없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구체적인 대책으로는 기업 내에 보육시설을 설치하기로 한 곳도 있고, 출산장려를 위해 불임비용에 건강보험부터 적용하라고 주문하는 곳도 있으며, 많은 신문들은 12명의 자녀를 둔 다둥이 가족사진을 게재하면서 모델을 제시하는 방법에 의존했다. 여기서 제시된 방안들은 일회적이고 예산을 적게 들이고 생색만 내는 임기웅변적인 방안들이거나, 사회의 양극화로 비롯된 현상을 애써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시도들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아이가 많으면 미개인 가정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육체와 생식까지 관리하던 오랜 독재정권 덕택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둘만 낳기! 하나 낳기! 같은 구호들을 머리 깊숙한 곳에 각인시켜왔다. 정관수술 남성들에게 아파트를 우선 분양하는 정책까지 시행하지 않았던가! 아시아 여타 국가에서 공무원들이 산아제한 정책을 한 수 배우겠다고 우리나라에 연수를 올 정도로 우리는 산아제한 모범국가였다. 공무원들이 국민들을 얼마나 다그쳤으면 그렇게까지 되었을까? 독재정권이 그런 정책을 시행한 가장 큰 이유는 국민소득 수치를 높여 집권을 연장하려는데 있었을 것이다. 이제 산아제한을 독려했던 정부부처가 그러한 정책은 너무 근시안적이었다고 공개사과를 해서, 국민들이 자녀 출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유럽은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공법을 택했다. 우선 낙태시술을 합법화하고 수술비를 전액 무료화 하는 방안을 먼저 도입했다. 낙태합법화는 유럽 국가 대부분이 1975년 이전에 시행한다. 그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시절에, 종교단체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여성의 건강을 위해 법제화를 단행했다. 우리가 현재 유럽의 국가들처럼 못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당파적인 이유 때문이다. 음성적 낙태 시술로 고수익을 올리던 의사들의 반대가 가장 거셀 것이고 교회들의 반발도 있겠지만 그들의 반발 때문에 한국 사회의 미래를 망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럽의 종교단체들은 자신들이 보육시설에서 대신 아이를 키우겠다고 제의했고, 미혼모가 출산 후 후유증 없이 원래대로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으며, 또 미혼모가 사회로부터 차별받지 않도록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겠노라는 약속까지 하면서 낙태를 반대했다. 하지만 유럽 정부들은 온정주의적 임시방편보다 제도적인 해결책을 선택했다. 일부 사람들은 낙태 수술 때문에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낙태시술과 출산율 저하는 전혀 관계가 없다. 교회가 낙태를 강하게 반대하면 사람들은 교회 나가는 것을 포기했고, 법으로 낙태를 금지하면 음성적으로 낙태수술을 했다. 돌팔이에게 수술을 하다가 생명을 잃거나 출산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상실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법이나 의사나 종교나 제도나 전통이 여성에게 출산을 억지로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래서 여성자신이 원할 때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조건을 갖추는 선에서 멈추었고 여성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성 당사자가 결정할 일로 보았던 것이다.

낙태 수술 때문에 출산율 저하?

그들은 가족관련 사회보장책을 보완하고 육아수당, 출산수당, 가족수당 등을 제도화했으며 세금지원 제도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그 결과 변호사들을 비롯한 고액 소득자는 자신들이 아이를 더 낳거나 아니면 입양을 하면서까지 세금제도의 혜택을 누리고자 했다. 이런 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들은 국가예산이 넘쳐나서 그러한 사회보장제를 실시한 것은 아니다. 현재 국내의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인구 증가를 위해 어느 군수는 산모에게 10만원을, 어떤 시장은 50만원을 지원하기도 한다. 지자체 단체장들의 일회성 선심성 선물을 제도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그들은 또한 미혼모나 동거자들이 출산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만들었다.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의 딸 클로드가 결혼도 하지 않고 출산을 했다. 아이를 안고 함박웃음을 웃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텔레비전을 탔고 이로 인해 인기가 올라가기도 했다. 미혼모 가정, 동거가정,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 가정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차별을 고집하는 사회라면 출산기피를 고스란히 감수하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 가족의 구성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내고, 이러한 가족들이 사회에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빨리 제도를 정비해야 지원해야 할 것이다.

상류층 가정은 자신이 축적한 부를 물려주기 위해 2명 정도의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영 미덥지 못해 그 부른 배를 안고 미국까지 가서 출산을 한다. 그렇게 태어난 상류층 자녀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고, 마음만 먹으면 외국의 원하는 대학에 유학도 갈 수 있다. 아니면 이런 외국 대학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진학하면 된다. 한국 사회가 붕괴된다 하더라도 상류층은 한국 사회에 큰 미련을 갖지 않을 것이다. 돈을 챙겨, 자식들이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으로 캐나다로 호주로 뉴질랜드로 떠나가면 된다. 문제는 이 땅에 계속 남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학수/부산교육대학교 강사·역사이해
이학수/부산교육대학교 강사·역사이해
상류층은 ‘다산’…의미 새겨봐야

서민들이 기득권 계층으로부터 지나치게 차별되어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게 되면, 같은 사회구성원이라는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역사에서는 어김없이 서민들은 다양한 형태로 기득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대신 저항을 보였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출산 포기가 저항의 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여성들과 서민층이 자신들의 존재를 포기해 가면서까지 저항하는 이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정치인들과 공무원들과 기득권 계층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1.

경복궁 주변 파봤더니 고려시대 유물이 줄줄이?

71년 전 부산 풍경을 만나다…‘다큐사진 선구자’ 임응식의 시선 2.

71년 전 부산 풍경을 만나다…‘다큐사진 선구자’ 임응식의 시선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 티저, 세븐틴 포스터와 유사성 불거져 3.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 티저, 세븐틴 포스터와 유사성 불거져

현대미술품으로 탈바꿈한 돌덩이 미륵불 4.

현대미술품으로 탈바꿈한 돌덩이 미륵불

영원한 비밀로 남은, 데이비드 린치의 직관을 질투하다 5.

영원한 비밀로 남은, 데이비드 린치의 직관을 질투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