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동~ 전국~ 노래자랑~!”
지난 2일 새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JTBC)를 보던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1회 첫 장면에서 그리운 그 얼굴, 고 송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용필(지창욱)과 조삼달(신혜선)이 어릴 때인 1994년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한 장면에서 송해는 무대에 올라 관객들한테 우렁차게 인사했다. “오늘은 천혜의 도시 제주에서 일요일의 남자 송해 인사 올리겠습니다!”
제이티비시 쪽은 “이 장면에서 딥페이크 기술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만든 가짜 영상물을 의미한다. 1994년 방영한 ‘전국노래자랑’ 속 송해 영상을 모아 인공지능을 학습시킨 뒤 나온 얼굴을 대역에 합성했다. 풍채에서 차이가 느껴지고 웃는 모습이 어색한 면은 있지만, 한국 드라마에서는 이례적인 시도다. 제이티비시 쪽은 “조용필을 좋아하는 주인공 조용필이 ‘전국노래자랑’에서 ‘단발머리’를 부르는 장면은 중요했고, 시청자와 송해를 향한 그리움도 나누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웰컴투 삼달리’ 주인공 아역들과 대화 나누는 가상버전 송해. 제이티비시 제공
가짜뉴스에 악용되는 등 우려가 커지는 딥페이크 기술이지만, 매체에서는 내용을 알차게 만드는 데 활용되고 있다. 주로 ‘웰컴투 삼달리’처럼 세상을 떠난 연예인을 다시 출연시키는 데 요긴하다. ‘전원일기’ 출연진이 나오는 예능프로그램 ‘회장님네 사람들’(tvN STORY)에서는 지난 1월 고 박윤배를 딥페이크 기술로 복원했다. 되살아난 박윤배는 김수미 등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전원일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달 17일 공개된 영화 ‘독전’ 시즌2(넷플릭스)의 백종열 감독은 시즌1에 출연한 고 김주혁을 딥페이크로 재현해 다시 출연시키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한다.
딥페이크는 배우들이 특수 분장이나 대역 없이도 다양한 연령대를 연기하는 데도 사용된다. 지난 3월 종영한 드라마 ‘카지노’(디즈니플러스)에서는 60대 최민식이 극 중 차무식의 30대 시절을 직접 연기했다. 최민식이 가발을 쓰고 연기한 뒤 그가 30대에 출연한 영화 속 얼굴을 인공지능이 학습해 덧입혔다. 올해 선보인 한 티브이 광고에서는 1971년 영화 ‘화녀’ 속 윤여정 얼굴과 70대인 현재 얼굴을 섞어 20대 윤여정을 탄생시켰다. 한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는 “딥페이크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위화감이 줄어 올해 드라마나 예능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가상 버전 인물이 소재인 ‘블랙미러’ 시즌6 ‘존은 끔찍해’. 넷플릭스 제공
아직은 긴 분량을 처리하기에는 디테일 부족 등 한계는 있다. ‘카지노’의 강윤성 감독은 “시간이 많이 들고 비용도 만만찮다. 분량 많은 인물은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렵다”고 했다. ‘웰컴투 삼달리’ 제작진도 송해가 나오는 5분 남짓 장면을 구현하려고 유족과 1년 가까이 소통하며 테스트 영상을 공유하는 등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계약서 없이 악용될 사례와 윤리적 문제도 제기된다. 배우들의 생계를 위협할 우려도 있다. 지난 6월 공개된 넷플릭스 영국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6에서는 살마 하이에크(셀마 헤이엑)의 가상 버전 역할을 딥페이크로 구현해 내보내는 내용을 방영했다. 한 중견 배우는 “작은 역할이라도 유명 배우의 가상 버전한테 맡길 수 있어 조연의 설 자리는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우들의 각종 사건·사고로 사장 위기에 처한 작품을 되살리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작 현장에서는 긍정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사전 제작이 기본이 된 한국 드라마 현실에서 재촬영 없이 배우 얼굴만 바꿀 수 있다면 배우 리스크로 인해 모두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상황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은 “2022년 이후 인공지능 관련 기술 투자가 급증하는 등 콘텐츠와 기술의 결합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시너지를 내어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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