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통신회사 메가폰은 지난해 영화계를 은퇴한 할리우드 액션스타 브루스 윌리스를 인공지능으로 재현해 그가 등장하는 광고를 제작해 내보냈다. 유튜브 캡처
#1. 러시아 통신회사 메가폰은 지난해 언어장애의 일종인 실어증으로 영화계를 은퇴한 할리우드 액션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등장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폭탄 실린 요트에 묶인 브루스 윌리스가 러시아 억양을 섞어 “미시시피”라고 말하는 ‘딥페이크 광고’다. 영국 언론 <데일리메일>은 지난달 27일 윌리스가 러시아의 인공지능 기업인 딥케이크에 얼굴 이용 권리를 팔아, 실어증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기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딥케이크가 지난해 브루스 윌리스를 디지털로 복제해 메가폰 광고를 내보낸 것을 계기로 아예 그의 초상권을 사들였다며 “브루스 윌리스가 자기 권리를 팔아 ‘디지털 트윈’이 스크린에 등장할 수 있도록 허용한 첫 할리우드 배우”라고 전했다. 하지만 윌리스의 대변인은 지난 2일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딥케이크와 어떤 합의도 한 적이 없다”며 계약 사실을 부인했다.
#2.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5일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미국의 부동산투자 기업 리알파테크 홍보모델로 등장하고, 인공지능 기계학습 기업 페이퍼스페이스 광고에서 톰 크루즈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대화하는 장면 등이 딥페이크 기술로 제작된 사실을 보도했다. 두 광고는 등장인물들의 동의가 없는 상태로 제작됐지만, 현행 저작권법에는 딥페이크 광고에 대한 조항이 없고 패러디와 교육적 사용 등 공정이용 조항이 있어 법적 규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숨졌거나 은퇴한 연기자나 예술가를 되살리는 작업은 이미 진행중이다. <스타워스> 시리즈에서 “내가 네 애비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다스베이더 목소리의 주인공인 제임스 얼 존스(91)는 2019년 고령으로 은퇴했지만, 인공지능 음성 합성 기술을 활용해 앞으로도 계속 다스베이더의 역할을 맡기로 했다. 2021년 1월 SBS가 방영한 ‘세기의 대결: 인공지능 대 인간’ 프로그램에서는 인공지능이 작고한 가수 김현식의 목소리를 되살려내어 그가 생전에 부르지 못한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했다.
진짜와 식별되지 않는 가짜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딥페이크 기술은 영상산업과 개인의 정체성 영역에서 새로운 논란을 만들고 있다. 딥페이크는 원하는 대로 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해주는 효율성 높고 편리한 제작도구인 한편, 기존의 저작권·초상권·퍼블리시티권 개념을 뒤흔드는 기술이다.
딥페이크는 유명 연예인을 실제 촬영장이나 카메라 앞에 세우지 않고도 영화나 광고에 등장시켜 원하는 내용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해준다. 과거에 대역을 쓰거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해야 했던 고비용의 위험한 작업을 적은 제작비로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다. 2019년 중국 이안 감독이 제작한 <제미니 맨>은 퇴역 특수부대 요원이 자신을 없애려는 자신의 복제인간과 싸우는 이야기인데, 윌 스미스가 각각 50대 요원과 20대 복제인간 역을 맡아 1인2역을 연기했다. 20대의 윌 스미스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딥페이크를 활용하면 요절한 영화배우를 새 작품에 출연시킬 수 있으며, 유명 연예인이 은퇴와 사망 이후에도 디지털 트윈을 통해 돈 벌 길을 열어준다. 딥페이크를 이용해 동의 없이 유명인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광고나 동영상에 사용하는 것도 논란이지만, 개인의 정체성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게 된 상황 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
얼굴 등 개인의 이미지를 보호하는 초상권과 달리 퍼블리시티권은 초상·목소리·이름·이미지 등 개인의 동일성을 나타내는 표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국내엔 퍼블리시티권 법률이 없고 판례가 엇갈리지만, 퍼블리시티권은 특허·저작권처럼 개인의 정체성 이미지를 사고팔고 관리할 수 있는 재산권적 권리다. 퍼블리시티권 인정은 연예인의 권리와 콘텐츠 산업 보호를 위해 필요하지만, 유명인을 비평하거나 패러디 만드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표현 자유와 콘텐츠 생산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딥페이크를 통해 개인 이미지를 마음대로 생성하고 양도가능한 권리로 만드는 일은 기존에 불가능했던 연기 표현과 산업 수요를 만들어내지만, 개인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퍼블리시티 전문가인 제니퍼 로스먼은 지난 17일 <와이어드> 인터뷰에서 “개인 정체성을 양도할 수 있게 하면 인격권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딥페이크가 만들어내는 ‘진짜같은 가짜’가 허위정보·가짜뉴스를 넘어 콘텐츠 산업과 개인 정체성에도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논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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