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를 떠들썩하게 한 교권 추락과 방치된 학교폭력, 아이를 망치는 학부모의 이기심을 담아낸 영화들이 가을 극장가를 채운다. 영화가 기획되고 개봉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3~4년이 걸리는데 마치 요즘 세태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준비된 영화들이다. 올해 쏟아진 문제들이 이미 수년 전부터 위험징후로 나타나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1일 개봉한 영화 ‘독친’의 뜻은 ‘자식에게 독이 되는 부모’다. 다소 낯선 신조어지만 일본에서는 같은 의미의 단어가 흔히 쓰인다고 한다. ‘독친’은 “다 너 잘되라고”라는 말로 부모의 모든 행동이 자식사랑으로 포장되는 비틀린 행태를 고발한다.
워킹맘 혜영(장서희)은 몇 시간 전 통화한 고교생 딸 유리(강안나)가 외곽 지역에서 집단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딸의 죽음을 납득할 수 없는 혜영은 타살을 확신하면서 형사와 교사를 추궁하고 ‘날라리’ 친구를 의심한다. 경찰 역시 단서를 하나씩 찾아갈수록 혜영의 병적인 행동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형사는 혜영이 딸을 위치 추적하고 도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기에 등급 매기듯이 사람도 품질 따라 만나게 돼.” 생전 딸을 몰아붙이며 혜영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특히 유리의 담임 교사 기범(윤준원)의 존재가 흥미롭게 읽힌다. 더 좋은 엘리트 직업을 선택하지 못해 부모한테 무시당하는 기범은 소명의식을 지닌 좋은 선생님이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혜영에게 의심받고고 억울하게 고소까지 당한 상황에서 학교가 그를 지켜주지 못하자 정신이 무너져간다.
‘독친’으로 장편 데뷔한 김수인 감독은 1992년생 젊은 연출자다. 영화에 뛰어들기 전 대치동 강사로 일하면서 겪은 학생과 학부모의 모습을 시나리오에 담은 김 감독은 “혜영을 마녀사냥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부모의 병적인 불안과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혜영은 한국 사회의 거울 같은 존재다. 첫 연출작에서 장르적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 뚝심있게 메시지를 전한 김 감독의 차기작은 사교육 열풍을 그린 ‘대치동 스캔들’이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박진표 감독의 ‘용감한 시민’ 역시 학교 폭력사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학교의 무능을 그린 작품이다.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인 소시민(신혜선)은 정교사가 되기 위해 얌전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한수강(이준영)이라는 복학생이 부모 배경을 믿고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걸 보자 전직 권투선수로서 참고 있던 울분이 끓어오른다.
웹툰 원작의 ‘용감한 시민’은 코믹 액션 장르로 가면을 쓰고 폭력에 맞서는 분투를 그린다. 만화적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가해의 수위가 높고 무기력한 교사들의 외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전치 9주의 학교폭력을 일으키는데도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학교라는 영화보다 더한 현실에서 웃지 못할 설득력을 획득한다. 박 감독은 “2년 반 전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만 해도 학폭이나 교권 문제가 지금처럼 불거지지 않아서 수위가 센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며 “오래 전부터 문제가 존재해왔기 때문에 이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복잡하고 어두운 사건들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교 폭력을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의 문제를 부모와 교사, 아이의 시선에서 입체적으로 그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은 이달 말 개봉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화제작으로 ‘교무실’이라는 뜻의 독일 영화 ‘티처스 라운지’는 도난사건을 잘 해결하려는 교사의 좋은 의도가 일파만파로 문제를 일으키며 학교와 학생, 학부모의 서로 다른 입장을 날카롭게 그린 작품으로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은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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