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가 출간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창비 제공
“정부에 대한 기대가 없어요. 위에 있는 사람들, 정부나 공직자들은 사실관계를 모르지 않는데도 외면하는 사람들인 거니까. (중략) 다만, 저는 보통 사람들을 믿는 거예요. 그들에게 올바른 정보가 주어지고 옳은 사실관계를 알려주면, 욕하고 비난하던 사람들도 시선이 바뀔거고…”
10·29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이주현씨의 말이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이씨처럼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최초 인터뷰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창비)가 29일 출간된다. 이 책은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뜻으로 결성된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하 작가기록단)이 지난 9개월 동안 참사 희생자의 형제자매나 연인을 인터뷰하고 생존자와 이태원 지역 주민,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은 ‘피해자 중심 구술기록’이다. 작가기록단 활동가 2명과 구술 기록에 참여한 유가족 2명은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책을 발간하게 된 이유와 집필 과정, 출간 이후 바람 등을 밝혔다.
작가기록단과 유가족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참사를 기록해야 하고, 시민들이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김의현씨의 누나인 김혜인씨는 이날 간담회에서 “의현이 누나로서는 의현이가 어떤 동생이었고 평범하지만 얼마나 열심히 살았던 사람인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 유가족으로서는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다시 반복될 수 있으니 기억이 되게 하려면 글로 남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며 인터뷰 참여 동기를 밝혔다. 그는 “왜 매년 하던 핼러윈 축제 인파 관리를 (정부나 지자체가) 하지 않았고, 왜 사고 초기에 신고 전화를 무시했고, 왜 사고 후에 처리 과정이 불투명한지, 왜 책임자들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지를 (시민들이) 기억해야 한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와 정부가 2022년 10월29일 그날엔 없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출간 기자간담회를 시작하기 앞서 간담회 참석자들이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을 진행하고 있다. 창비 제공
기획과 집필을 담당한 유해정 인권활동기록가(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는 “젊은이의 시각으로 젊은이의 아픔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엔 유난히 2030 청년들의 희생이 많았다. 그러나 참사 직후 이들에게 ‘왜 놀러갔냐’ ‘외국 귀신 문화를 왜 즐기냐’는 2차 가해성 발언이 계속됐다. 유 위원은 “20·30세대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심할 뿐만 아니라 재난의 희생자로서 부모의 슬픔에만 주목하고 형제자매의 슬픔이나 고통은 가볍게 처리되는 과정을 목격했다”며 “유가족 중 형제자매를 인터뷰하거나 연인이나 지역 주민, 노동자까지 다양한 위치에서 참사의 슬픔을 바라보고 기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이나 생존자들이 슬픔을 겪어내는 방식과 속도, 질감도 다 다른 만큼, 유가족이나 생존자들도 이 책을 통해 “슬픔의 연대를 통해 위로가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것도 밝혀진 것도 없고 정부는 밝히려는 의지도 없습니다. 이제 저희는 국민에게 호소해서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합니다. 참사 생존자, 희생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한 번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억이 조금씩 모여 커진다면 다시는 대한민국에 이러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고 더 이상의 유가족은 없을 것입니다.”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인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대표는 시민분향소에 와서 국화꽃을 놓고 함께 슬퍼하고 말없이 유가족의 어깨를 쓰다듬어준 수많은 ‘시민들의 힘’에 대한 믿음을 내비치며 진상규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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