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낮 서울 경복궁 경내 석물 작업장에서 취재진에 공개된 서수상들. 월대 왼쪽에 있던 상(왼쪽)이 조형적 완성도가 높지만 마모가 심하고 때를 많이 탄데 비해 오른쪽에 있던 상은 새김 양상이 약간 경직된 느낌을 주지만 마모가 덜하고 표면이 깨끗한 편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100년 전 일제가 전차선로를 놓으면서 뜯어냈던 서울 경복궁 광화문 입구 월대의 상징동물 조각상이 이건희 컬렉션에서 튀어나왔다. 이건희 컬렉션의 옛 석조물들을 모아 배치해놓은 경기도 용인 삼성가 호암미술관 정원의 실제 모습과 유튜브 동영상을 지켜본 한 시민이 ‘아무래도 궁궐 석조물 같으니 조사해보라’고 문화재청에 제보한 것이 단서가 됐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정원에서 발견된 광화문 월대 앞머리 서수상 2점. 이건희 컬렉션의 일부로 확인됐다. 회색조의 화강암 재료로 만들었는데 뿔이 하나 달렸고 목과 귀에 갈기털 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문화재청 제공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정원에서 발견된 광화문 월대 앞머리 서수상 2점. 이건희 컬렉션의 일부로 확인됐다. 회색조의 화강암 재료로 만들었는데 뿔이 하나 달렸고 목과 귀에 갈기털 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문화재청 제공
이 조각상이 원래 있던 곳은 지난해와 올해 초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를 벌인 광화문 앞 월대 어도의 앞쪽 끝부분이다. 1867년 조선 26대 임금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한 이래 ‘왕의 길’로 불린 역사적 명소다. 하지만, 1923년 일제가 박람회의 일종인 조선부업품공진회를 경복궁에서 열면서 관객들을 실어나를 전차노선을 까느라 깔아뭉개면서 땅 속에 묻힌 비운을 안고 있다. 이 월대 어도의 첫 머리 장식물이자 궁궐 시작점을 상징하는 서수상(瑞獸像:상서로운 상상의 동물상) 돌조각 2점이 최근 용인 호암미술관 정원에서 발견됐다. 두 돌조각물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소장했던 컬렉션의 일부로 2021년 나라에 기증된 2만3천여점의 고미술·근현대미술 컬렉션과는 별개로 삼성가 유족들이 계속 소장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1910년대에 찍은 광화문 월대의 소맷돌 부분. 파란색 원 안이 서수상이 있는 부위인데, 위치가 변형된 뒤 포착된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문화재청은 지난 4월 산하 궁릉유적본부가 시민 제보를 받고 용인 호암미술관 주차장 옆 정원에서 화강암으로 만든 서수상 2점을 확인했으며 분석결과 이 상이 광화문 월대 유적에서 발굴된 받침석과 치수가 딱 들어맞아 월대 앞머리 서수상으로 판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29일 발표했다. 문화재청 쪽은 이어 “분석 내용을 전해들은 삼성가 유족들이 서수상이 의미있게 활용되길 바란다며 기증 의사를 표명해 2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삼성문화재단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증식을 열어 최응천 청장이 감사장을 줬다”고 전했다. 조은경 궁능유적본부 복원정비과장은 “10월 완공 목표로 복원 중인 광화문 월대에 기증받은 석조각들을 그대로 활용할 방침”이라며 “일단 내달 초부터 서수상과 발굴한 받침대를 실제로 짜맞추고 연결부재로 접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사진에 나온 1910년대 광화문 월대 모습. 사진 양쪽 끝 파란색 원 안이 서수상 부위다. 주변 공간이 바뀌면서 서수상의 위치도 변형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기증받은 화강석 서수상 2점은 문화재청이 올해까지 월대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한 소맷돌(돌계단 옆면의 마감돌) 받침석에 윗부재를 앉히기 위해 가공한 부분의 모양과 크기가 일치한다. 형태와 규격, 양식 등이 사진자료 등으로 확인되는 과거 월대의 것과 똑같아 고종대 건립 당시 쓴 부재임이 확실하다는 설명이다. 자세히 보면, 상에는 하나의 뿔이 달렸고 목과 귀에 갈기털이 새겨져 있는데, 광화문의 해치상, 경복궁 근정전 월대의 서수상 등과도 양식적으로도 유사하다. 또, 뿔의 개수나 눈썹, 갈기의 표현 방식과 가공기법 등을 다른 서수상과 비교해 볼 수 있어 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조선시대 석조미술사 연구자인 김민규 박사(문화재청 전문위원)는 “경복궁 핵심 건물인 근정전 남쪽 계단에 있는 서수상과 기본 모양새가 같아 보는 순간 월대 서수상임을 직감했다”며 “흔히 조선 말기에는 석조각 수준이 크게 떨어진다고 보는 선입견이 있는데 19세기 중반까지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석조상들이 제작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증자료”라고 짚었다.
광화문 월대 복원 조감도. 파란색 원 안이 월대의 끝부분으로 서수상이 놓였던 곳이다. 문화재청 제공
건축사·미술사 전문가들은 광화문 월대 복원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옮겨 보관해온 월대 난간석 부위의 원래 부재와 서수상 등 50여 점에다 월대 어도 가장 앞머리의 원래 상징물까지 이례적으로 찾아내면서 19세기 중반 고종의 중건 당시 모습에 훨씬 가까운 복원 공정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월대 복원을 마무리하는 10월 중 기념행사를 열어 서수상을 포함한 월대를 일반인들에게 내보일 계획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문화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