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그녀들’이 지난 3일 발표된 ‘제50회 한국방송대상’에서 예능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도 ‘제34회 한국피디(PD)대상’ 같은 부문에서 수상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상암동 에스비에스(SBS) 사옥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화정 피디는 호평 이유를 이렇게 짐작했다. “신선함과 선구자 역할을 한 것에 점수를 주신 것 같아요. ‘골 때리는 그녀들’이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스포츠를 하는 여자들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축구를 예능으로 소화하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2021년 6월16일 첫 방송 직후 상반된 시선이 존재했다. ‘여자들이 스포츠에 도전하는 모습이 좋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저 예능적인 재미로 이용하고 있다’는 따가운 눈초리도 있었다. 여느 예능프로처럼 극적 재미를 위해 편집 과정에서 앞뒤 장면의 순서를 바꿨다가 공정성 논란까지 불거졌다. 김 피디는 “많은 분들이 예능이 아니라 스포츠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시청자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감독관과 점수판을 도입하는 등 개·보수했다”고 했다. 예능프로는 모름지기 편집의 미학이 중요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현장에서 흘러가는 과정을 그대로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맛보기(한번 선보인 뒤 반응이 좋으면 정규 편성하는 프로그램) 때는 축구 초심자들로 팀을 꾸려 누군가의 아내거나 엄마였던 이들의 도전에 초점을 뒀다. 시즌을 거듭하면서는 축구 실력에 중점을 두며, 여자 축구 리그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주고 있다. 시즌4를 방영 중인 현재는 운동 유튜버 심으뜸 등 단단한 여성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이들도 많이 보인다. 김 피디는 “출연자는 바로 투입해서 이미 출연 중인 분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이미 실력을 갖췄거나 운동 신경이 좋아서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이들을 주로 선발한다”고 했다. 출연자를 섭외할 때 제작진과 축구 경기를 해보며 실력을 파악하기도 한단다. 그는 “재미 위주의 예능이라고 생각했다가 직접 축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출연을 번복한 이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이 성공한 이후 ‘사이렌: 불의 섬’(넷플릭스) 같은 여자들이 체력을 겨루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남녀가 동등하게 힘을 겨룬 ‘피지컬: 100’(넷플릭스)도 화제였다. ‘골 때리는 그녀들’ 기획안이 명절용으로 나왔을 당시 내부에서는 “온 가족이 연휴에 보기 딱 좋다”는 정도로 봤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 밖 반응으로 정규 프로그램이 된 것만 봐도 시청자들은 이제 스포츠가 남성의 전유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스포츠 예능이 약한 여성을 강조하며 강하게 거듭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골 때리는 그녀들’이 시행착오를 거쳐 단단하게 자리 잡아온 것이 이런 변화에도 도움을 줬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포츠가 승패에 상관없이 열심히 뛴 선수들한테 감동하는 것처럼 이 프로그램도 프로 축구 선수가 아닌 이들이 최선을 다하는 열정과 진심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고 했다.
‘골 때리는 그녀들’로 시작해 달라진 분위기가 오히려 이 프로그램의 숙제가 됐다.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 같은 강한 여성의 모습에 익숙해진 시청자들한테 ‘골 때리는 그녀들’이 최선을 다하는 감동적인 모습만으로 채널을 고정시킬 수는 없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프로 선수에겐 한참 실력이 못 미치기 때문에 ‘사이렌: 불의 섬’ 등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제작비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처럼 풍족한 것도 아니어서 규모도 키울 수 없는 노릇이다.
김 피디는 이런 현실을 직시해 재미 외에 의미를 찾는 데 좀 더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여자 월드컵이 시작됐지만 남자 월드컵만큼 주목을 못 받고 있어요. 여자들이 축구 하는 이 프로그램이 책임감을 느끼고 홍보하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이제 시청률을 떠나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게 다음 임무인 것 같아요.” 김 피디는 사내에서 알아주는 축구 마니아다. 축구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꿈을 축구를 접목한 예능으로 이뤄내고 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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