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열린 주한 프랑스대사관 개관식 때 김건희 여사가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복원된 업무동을 돌아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국의 얼과 프랑스 고유의 매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건축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51) 여사는 올해로 61살이 된 한국 현대건축의 명작 앞을 거닐고 나서 이런 찬사를 내놓았다. 지난달 15일 서울 충정로 프랑스대사관 경내에서 열린 건축거장 김중업(1922~1988)의 대사관 업무동 복원과 신관 개관식 자리에는 예정 없이 김 여사가 참석해 건물 못지않게 주목을 받았다. 그는 김중업의 스승이었던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건축거장 르 코르뷔지에(1887~1965)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했다.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삶 이전에 전시 사업을 하면서 2016년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전’을 열었고 프랑스 작가들도 소개했어요. 그 때마다 대사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르 코르뷔지에를 사사한 유일한 한국 건축가 김중업 선생이 설계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마침 한국을 방문한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도 “원형으로 복원된 이 건물은 이제 서울의 아이콘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화답했다.
지난 3월 복원공사 중인 프랑스대사관 업무동을 내려다본 모습.
6년여의 리모델링 공사 끝에 60년 전 김중업이 디자인한 휘어진 처마선 외형과 구조를 되찾은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이날 김 여사의 방문으로 양국 정계와 권력자들에 얽힌 일화를 추가하게 됐다. 처마선으로 대표되는 한국 전통건축의 형태미가 서구의 기하학적 근대건축언어와 절묘하게 만난 수작으로 꼽히는 이 건물은 사실 국내 어떤 현대건축 명작들보다 국내외 권력자들의 시선과 입김이 많이 닿은 건물이다.
한국이 세계 건축계의 변방 중 변방이던 1959년 프랑스 정부가 경쟁 공모방식으로 대사관을 신축하기로 결정했을 때 김중업은 자신이 1952~55년 프랑스 파리의 건축사무실에서 조수처럼 일하면서 사사했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추천으로 프랑스 건축가 7명을 물리치고 당선됐다. 그의 설계안은 샤를 드골 당시 대통령과 소설 <인간의 조건>으로 유명한 당시 문화성 장관 앙드레 말로의 검토와 재가를 거쳐 1962년 2월 낙성된다. 빈곤했던 당시 한국에는 철근과 콘크리트 등 자재가 절대 부족해 김중업은 직접 현장에서 콘크리트 양생 과정을 감독하고 건물의 각을 맞추는 실시 설계도 즉석에서 스케치해서 진행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최근 조민석 건축가의 설계로 복원된 주한프랑스대사관 업무동. 다시 개관하면서 ‘김중업 관(파빌리온)’으로 이름붙여졌다. 개관식을 하기 전인 지난 3월 공사중 찍은 사진이다.
한국 건축계는 최고의 명품으로 추앙하지만, 프랑스 정부나 현지 건축계는 건립 이후 김중업의 대사관 건물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게 국내 건축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김중업의 작업에 진중하게 관심을 가졌던 고고인문학자 출신의 로제 샹바르 초대 대사 외에 후임 대사들은 업무동의 형태미나 역사적 가치에 무관심했고, 10여년 뒤 지붕에 균열이 발생하자 1970년대부터 업무상 편의대로 내부 구조를 마구 뒤바꿨다. 구조안전상 이유로 업무동 건축의 핵심인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지붕의 처마선이 예각으로 바뀌고 1층 필로티는 벽체가 메워져 내부 기둥 배열까지 바뀌는 무지막지한 변형이 일어났다. 하지만 지붕 구조를 완전히 개악해버린 이 변형이 언제 누구에 의해 진행됐는지 알려주는 명확한 정보는 없다. 막연하게 1970년대 말이나 1980년대 초에 프랑스 유학파 출신의 한국 건축가들을 동원했을 것이라는 추정만 전해질 뿐이다.
복원 전 프랑스대사관 업무동. 날렵하게 휘어졌던 처마선이 예각으로 꺾였고, 비어있던 1층 필로티는 벽체가 메워져 있다.
2000년대 이후 프랑스 쪽은 시설이 낡고 좁다며 전면 철거 및 신축방안을 추진해 국내 건축계와 미묘한 갈등을 빚었다. 당시 프랑스대사관 쪽과 면담을 진행했던 국내 건축계의 한 중견 연구자는 “놀라울 정도로 이들은 협조적이지 않았다. 김중업의 건축물 보존에 관심이 없었고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대사관저 앞 언덕배기 땅을 팔겠다는 계획을 2000년대 이후까지 추진했다. 심지어 그 땅을 한국정부가 사서 일반인들이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면 대사관 앞 경관은 자연스럽게 보존되지 않느냐는 황당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한국의 전통 석물 조각에 김중업의 업적을 새긴 공로석. 서울 충정로 프랑스 대사관 경내에 있었다.
다행히도 2010년대 이후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관계자가 건물 보존을 간곡히 요청하는 서한을 프랑스 정부에 전달하고 각계에서 보존 여론이 일어나자 프랑스 정부는 2016년 12월 업무동 지붕을 원형으로 복원하고 그 주위에 타워와 갤러리 신관을 신축하는 조민석·윤태훈 건축가의 복원 리모델링안을 공표하고 2020년까지 공사를 마무리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공기가 예산 문제로 차일피일 미뤄지는 곡절을 겪다 결국 올해 들어서야 업무동 일대의 복원 리모델링을 마무리하기에 이르렀다.
조민석 건축가는 이렇게 회고했다. “부임하는 대사에 따라 생각과 관점이 다르고 건립예산은 턱없이 부족해 정말 많은 곡절을 겪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샴페인과 와인을 마셔야 김중업 선생의 건물이 복원될까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6년 12월14일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조민석 건축가(가운데)와 파비앵 페논 당시 대사(오른쪽 첫째)가 대사관 신축 리모델링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조 건축가 왼쪽에 조윤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 있다. 조 장관은 불과 1달여 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공작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장관직을 사퇴하게 된다.
국내외 문화권력자들도 김중업의 프랑스대사관 업무동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했다. 지난 2016년 12월14일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조민석·윤태훈 건축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업무동을 복원하는 리모델링 안을 발표할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공작에 관여했던 조윤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사관 회견장에 직접 나와 발표를 지켜보며 건물 복원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강조했던 모습은 지금도 건축인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그는 불과 한 달여 뒤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공작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장관직을 사퇴하게 된다.) 김건희 여사의 갑작스런 개관식 방문도 이 건물에 대한 유난한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읽힌다.
프랑스 전 대통령 드골과의 인연도 빠질 수 없다. 그는 대통령으로 재임중이던 1965년, 43살의 건축가 김중업에게 대사관을 디자인한 공로로 국가공로훈장 슈발리에(기사장)를 특별히 수여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인 1971년, 김중업은 박정희 정권의 건축·주택 정책을 비판하다 3개월짜리 단수여권만 지닌 채 프랑스로 강제추방되는데, 이 훈장 덕분에 불법체류자 신세를 면하고 무난히 망명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