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늘로 치솟은 지붕 원형을 되살린 서울 충정로 주한프랑스 대사관 업무동 건물. 건축 거장 김중업이 30대 시절 설계한 그의 대표작이자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최고의 수작으로 손꼽힌다.
새봄, 우리는 이 명작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61년 전 젊은 건축가 김중업이 서울 충정로 언덕에서 하늘로 훌쩍 띄워 올렸던 양탄자 같은 지붕을.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유명한 그 ‘지붕’이 온전히 되살아났다. 국내 최고의 건축 거장 김중업(1922~1988)이 1962년 완성한 대표작이자, 이 땅의 현대건축 역사상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꼽히는 서울 충정로 주한프랑스대사관 업무동이 최근 원형을 되찾았다. 지난 2018년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 지 약 5년 만이다. 대사관 전체 공사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이달 초 업무동 지붕과 벽면, 기둥의 복원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지금 충정로 대사관 앞에 가면 곡선형의 처마 선과 1층을 비운 필로티 공간을 원형대로 돌린 건물의 복원된 외관을 볼 수 있다. 그 옆에는 길쭉한 갤러리 동, 뒤쪽에는 신축한 11층짜리 타워형 업무동이 호위하듯 들어섰다.
2층 얼개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인 업무동은 완공 당시 네 귀퉁이 처마가 전통 절집이나 궁궐의 전각처럼 허공을 향해 날아오를 듯한 기세로 솟은 날렵한 지붕을 이고 있었다. 서구 거장 르코르뷔지에를 사사하고 돌아와 50년대 말 국내 주요 대학 캠퍼스 건물을 다수 설계하면서 형성된 김중업의 곡선 스타일 건축미학이 한국 전통건축의 미학과 절묘하게 만난 지점이었다. 실제로 김중업은 이 건물을 두고 “한국의 얼이 담긴 것을 꾸미려고 애썼고 프랑스다운 엘레강스를 나타내려고 한 피눈물 나는 작업”이라면서 “나의 작품세계에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날렵한 지붕이 원형대로 복원된 김중업의 프랑스 대사관 업무동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건물 뒤와 옆으로 신축한 타워 업무동과 길쭉한 갤러리 동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1970~80년대 구조 안전상의 문제로 대사관 쪽에서 지붕 네 처마의 곡선을 꺾고 날카로운 예각의 모양새로 건물을 개수하면서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 지난 2018년부터 대사관 전체 리모델링 작업을 맡은 조민석 건축가는 지난 연말과 연초 수개월 간 이 지붕 처마 부분의 곡선을 살리기 위해 공들이며 집중 작업을 벌였다.
지붕 처마 부분에 거푸집을 치고 인장 케이블을 집어넣어 지붕 중심부로 처마선을 당겨주는 포스텐션 공법을 활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김중업이 구현했던 부드럽고 날렵한 곡선 형상을 21세기 강도 높은 콘크리트 재료를 써서 복원해냈다. 조 건축가는 “말 못할, 굉장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난겨울 김중업 선생의 원형을 살린 지붕과 건물 공간의 거푸집을 뜯어낼 때는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면서 “복원된 업무동의 공식명칭도 대사관 쪽에서 파빌리온 김중업으로 지었다”고 전했다.
1962년 서울 충정로 합동 언덕 위에 준공됐을 당시 주한프랑스대사관 전경. 왼쪽이 관저 본관동이며 오른쪽이 업무동이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업무동 지붕의 이미지가 선연하게 다가온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1970~80년대 이후 원형을 잃고 변형됐던 시기의 프랑스 대사관 업무동의 외관. 지붕 귀퉁이의 날렵한 처마를 꺾어 예각으로 만들고 1층의 비어있는 필로티 공간도 벽을 치고 메워버렸다.
주한프랑스대사관은 아직 일반인에게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연중 특정한 날을 정해 일반 대중에게 김중업의 걸작들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해왔던 국내 건축계에서는 여름이 되기 전 대사관 내부 정비가 얼추 마무리되면 공개 행사를 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하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방한 시점에 복원된 건축물의 공개 행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1965년 봄 자신이 설계한 프랑스 대사관 업무동 앞 정원에 서 있는 김중업. 당시 <신동아>에 실렸던 사진이다.
프랑스대사관과 쌍벽을 이루는 대표작이지만 1996년 다른 건물 신축으로 철거된 국립제주대본관(1967년 건립)을 재건하는 방안도 지난해부터 추진 중이다. 지난 2021년 총장 선거에서 제주를 대표하는 건축유산인 본관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김일환 현 총장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비공식 전문가회의를 열었고, 현재도 학계와 도내 여론을 수렴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재건 작업이 실행된다면 사라진 국내 현대건축 유산을 문화적 명분으로 되살리는 첫 사례여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원래 터 아닌 곳에 재현 방식으로 지어야하는 한계와 100억원 넘는 재원 마련 등을 놓고 현지 여론이 엇갈려 사업 논의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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