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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랑꾼’ ‘나이스한 멍멍이’…나쁜 남주에 왜 심쿵?

등록 2023-04-04 08:00수정 2023-04-04 16:43

드라마 속 ‘나쁜 남자’
2023년 등장한 ‘나이스한 개XX’ 대표남 <더 글로리> 하도영. 넷플릭스 제공
2023년 등장한 ‘나이스한 개XX’ 대표남 <더 글로리> 하도영. 넷플릭스 제공

“알고보면 하도영이야말로 진짜 나쁜 사람인데…나 왜 자꾸 ‘심쿵’하는 거니?”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는 내내 어떤 이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했다. 학교폭력 가해자 박연진(임지연)의 남편으로 나온 하도영(정성일)한테 빠져드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다. 하도영은 언뜻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최혜정(차주영)의 대사를 빌려 표현하면 “자세히 봐야 ‘개XX’인 걸 알 수 있는, ‘나이스한 개XX’”이다. 자신은 ‘급’이 다른 부류라 여기고 남을 하대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아이를 뺏어가려는 전재준(박성훈)은 공사장 시멘트 물에 빠뜨려 죽여버렸다. 그런데도 “공사장 다음 장면인 공항에서 하도영 얼굴이 서서히 등장하자 다시 심쿵했다”는 반응(댓글)들이 적지 않았다.

하도영한테 설렜다는 건 다른 악역들을 사랑한 마음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달 24일 <더 글로리> 종영 인터뷰에서 정성일은 “하도영은 ‘나이스’와 ‘멍멍이’(그는 이렇게 표현했다)라는 양면성을 가진 것이 (예전 캐릭터들과) 다른 것 같다. 의도를 갖고 상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살아온 과정에서 늘 지시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몸에 밴 행동 같다. 의도가 없으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이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종 캐릭터’ 하도영이 등장하기까지, 사랑받는 ‘나쁜 남주(남자 주인공)’는 변화해왔다.

2016년 등장한 ‘쓰랑꾼’ 대표남 &lt;굿와이프&gt; 이태준. 소속사 제공
2016년 등장한 ‘쓰랑꾼’ 대표남 <굿와이프> 이태준. 소속사 제공

나쁜 남주의 변화

‘나이스한 멍멍이’는 이른바 ‘츤데레’(겉으론 차갑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사람)가 시대 흐름에 맞춰 변화해온 나쁜 남주의 ‘최강 버전’같다. 한국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2002년 <겨울연가>의 부드러운 남자 강준상(배용준)이 대표 격이었다가 점차 나쁜 남주로 확장했다. 나쁜 남주의 시발점은 2007년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이었다. 권력 욕망을 숨기지 않는 당시 드문 주인공이었다. 2010년 이후로는 ‘사랑보다 복수’를 외치며 여자 주인공을 가슴 아프게 하는 이들이 많았다. 2010년 <나쁜 남자> 심건욱(김남길)처럼 대부분 아픈 과거를 지닌 채 성공을 목표로 달리거나, 사랑 따윈 믿지 않는다는 부류였다. 그래도 ‘착한 본성’은 갖고 있었지만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선과 악이 모호해졌다. 2015년 <킬미힐미>의 차도현(지성)은 ‘다중인격’이라는 설정으로 당당하게 선과 악을 오갔다.

나쁜 남주는 2016년 <굿와이프> 이태준(유지태)을 만나 제대로 폭발했다. 이태준은 대놓고 나빴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 같지만 결국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사였다. 그런데도 아내를 향한 사랑만큼은 끔찍했던 이태준을 누리꾼들은 ‘쓰랑꾼’(쓰레기+사랑꾼)이라 부르며 열광했고, 이후 쓰랑꾼 남주들은 드라마에 계속 등장한다. 2022년 <트롤리> 남중도(박희순)는 이태준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쓰랑꾼이다.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해 자식도, 아내도 이용한다.

‘의도 없는 하대’까지

드라마는 사회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나쁜 남주의 진화는 개인주의화하고 성공지향적 가치관이 팽배해진 현실에서 기인한 셈이다. ‘수저계급론’이 등장하는 요즘 시대에 <더 글로리> 하도영은 정점을 찍은 인물이다. 극 중 건설회사 대표로 재벌가에서 나고 자란 설정인데, 기존 드라마 속 재벌과 달리 대놓고 ‘갑질’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가족처럼 대하지도 않는다. 정성일이 운전기사한테 와인을 선물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운전기사가 자신한테 우산을 잠깐 들게 하고, 자신이 준 비싼 와인을 거절하자 표정은 일그러지지만 태도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대신 비싼 와인 마시는 법을 알려주며 ‘급’차이를 느끼게 한다.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숙명여대 교수는 웹예능 <문명특급>에서 이 장면에 대해 “편의점 만원짜리 와인과 고급 와인을 비교한 것은 운전기사와 자신의 급을 비교한 것으로, 이 장면이 하도영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2022년 등장한 새로운 ‘쓰랑꾼’ &lt;트롤리&gt; 남중도. 소속사 제공
2022년 등장한 새로운 ‘쓰랑꾼’ <트롤리> 남중도. 소속사 제공

높은 인기 우려도

나쁜 남주들의 도덕성은 실종되고 있는데, 그들을 향한 시청자의 애정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남자들이 매력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나쁜 남주들은 하나같이 슈트를 빼입고 머리에 매끈하게 포마드를 바른 채 등장한다. <더 글로리> 악역 전재준을 연기한 박성훈도 인터뷰에서 “전재준을 소화하려고 그 어떤 작품보다 의상 피팅을 많이 했다. 식단 관리도 하고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이들은 또 큰 표정 변화 없이 조곤조곤하게 얘기한다. 2020년 <머니게임>에서 유진한(유태오)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을 때 한쪽 눈에 주름이 지는 식으로, 늘 차가웠던 이들이 보여주는 짧은 순간의 변화가 시청자들을 잡아끈다. 박희순은 2021년 <마이네임>에 이어 2022년 <트롤리>까지 두 작품에서 이런 매력을 보여주며 사랑받았다.

올해 방영작 중에도 하도영과 ‘비슷한 과’들이 많다. 방영 중인 <판도라: 조작된 낙원>에서 표재현(이상윤)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지만, (초반에는) 예의 바르고 가정적이다. 이런 나쁜 인물이 사랑받는 것이 불편한 시청자들도 있다. 하도영을 두고도 “그가 살인하는 모습을 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댓글에 놀랐다”는 반응도 있다. 정성일은 “하도영의 삶은 (살인을 선택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런 선택을 하고 영국에 가서 예솔을 제정신으로 키울 수 있을까? (이보다 더 나쁜 짓을 하는) 더 이상의 ‘나이스한 개XX’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웃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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