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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속죄해야” 오에 겐자부로가 남긴 ‘일본의 양심’

등록 2023-03-13 19:05수정 2023-03-21 17:39

‘일본의 양심’ 지난 3일 별세
일본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시아 대표적 지성인·평화운동가
오에 겐자부로. 사진은 생전인 2005년 방한 때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오에 겐자부로. 사진은 생전인 2005년 방한 때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아시아의 대표적 지성인이자 작가로 일본에 두번째 노벨문학상을 안겨줬던 오에 겐자부로가 생을 마감했다. 향년 88.

‘추한 일본’을 고발하고 고백해온 실천적 지성으로서 국제사회 평화 운동에 헌신해온 오에 겐자부로가 지난 3일 노환으로 숨졌다고 일본 출판사인 고단사가 13일 발표했다.

1935년 1월 일본 에히메현에서 출생한 오에 겐자부로는 도쿄대 불문학과 재학 중인 1958년 단편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까지 최연소 수상 기록이었고, 이는 1999년 히라노 게이이치로가 수개월 더 젊은 23살 수상자로 분류되기까지 깨지지 않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30편가량의 장편소설, 논픽션, 에세이, 평론, 극본 등 장르를 아우른 전방위 작가로 활동해왔다. 전후 평화 재건, 원폭 피해 고발, 천황제 및 헌법 9조 수정 반대와 같은 국내외 정치 이슈는 물론 첫째 아들(1963년생 지적장애를 지닌 히카리)을 통해 더욱 깊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던 장애, 종교와 구원 등의 첨예한 현대 시사를 문학과 삶의 주제로 끌어안았다. 최연소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작으로, 안보투쟁에 나섰던 남성을 주인공 삼아 국가의 폭력을 비판한 첫 장편 <만엔원년의 풋볼>(1967), <설국>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26년 만의 일본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장애아의 부모로서 감당하게 되는 삶을 성찰해낸 <개인적인 체험>(1964) 등은 일관된 생의 응축이자 예고였다. 일본 극우들과 소송으로 다퉈야 했던 논픽션 <오키나와 노트>(1970) <히로시마 노트>(1965) 등도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오에는 노벨문학상 수상(1994년) 소감 당시 앞서 ‘아름다운 일본의 나’를 강조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수상 소감을 실상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과거에 새겨진 고통스런 기억을 지닌 자로서 저는 가와바타와 한목소리로 ‘아름다운 일본의 나’라고 말할 수 없다” “개국 이후 백이십년의 근대화를 거친 현재의 일본은 근본적으로 애매모호함의 양극으로 분열되어 있다. 그 애매모호함에 의한 깊은 상흔을 지닌 소설가로서 저는 살아가는 것이다… 이 애매모호한 진행은 아시아에서 침략자의 역할을 하도록 그들을 내몰았다” 등의 고백(수상 연설)이 그것이다.

오에는 아베 정권이 헌법 9조 수정을 추진하던 2014년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9조의 모임’ 일원으로, 국내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와 그해 6월13일 한 대담에서 “일본은 중국을 침략했고 한국의 땅과 사람을 일본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한 속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은 평생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속죄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의 근본입니다. 그 정신이 평화헌법 9조에 표현된 것”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오에는 2015년 반전 및 평화 운동에 전념하고 싶다며 절필 선언을 했고 이후 사회 운동에 힘을 쏟아왔다. 궂긴 소식은 열흘이 지나 알려졌을 만큼, 그는 근래의 일본 사회에서 침잠해온 것으로 보인다.

오에 겐자부로(왼쪽)가 2014년 6월13일 오전 도쿄 세타가야구 자택에서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한국 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에게 ‘9조의 모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오에 겐자부로(왼쪽)가 2014년 6월13일 오전 도쿄 세타가야구 자택에서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한국 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에게 ‘9조의 모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13일 페이스북에 “전후 일본의 양심이라 칭할 수 있을 작가 오에 겐자부로 선생이 별세”했다며 “아베 2기 정권의 등장 이후 저항의 뜻에서 글쓰기를 중단한다고 선언한 바도 있었는데, 삼가 명복을 빌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권 모두에서 불고 있는 동조 우경화의 현실을 보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썼다.

오에의 상징이기도 했던 둥근 안경테는 사르트르와 제임스 조이스 등에 영향받은 것으로, 안경 너머 그가 한평생 집요하게 바라던 세상은 이제 지상 위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임인택 조기원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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