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연출 지시를 하고 있는 안태진 감독. 뉴 제공
1987년 7월17일, 그리고 2022년 11월23일. 35년 4개월 걸렸다. 대한극장에서 <빽 투 더 퓨쳐>를 개봉 첫날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 먹었던 16살 소년의 첫 연출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까지. 긴 세월이었지만 올해 지금까지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가운데 최고로 꼽힐 만한 작품이 완성됐다. 영화 <올빼미>의 안태진(50) 감독 이야기다. <올빼미>는 인조 아들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을 소재로 한 스릴러극. 평단의 찬사와 입소문을 타면서 손익분기점 200만명을 넘어 300만 관객을 향해 가는 안 감독을 13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기다려준 가족들에게 감사할 뿐이죠.” 안 감독은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 조연출을 한 다음 17년 동안 연출 준비를 해왔다.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부터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던 이준익 감독이 <올빼미> 첫 촬영 슬레이트를 쳐줬다. “시나리오 나왔을 때는 ‘재미없다’고 하셨는데 영화를 보고 ‘연출과 연기가 살렸다. 작품 좋다’고 말씀해주셨죠.”
시나리오 쓰고, 투자받고, 캐스팅하고, 엎어지고를 반복하며 기나긴 준비 기간을 보내던 4년 전, 그는 <올빼미>의 시나리오 작업을 제안받았다. “‘주맹증을 가진 주인공이 궁에 들어간다’는 한 줄의 아이템이었어요. 그 전에 사극을 준비한 적도 없었는데 소재가 흥미로웠어요. 여기에 어울릴 이야기를 고민하고 조사하다가 <인조실록>에 나온 한 문장,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는 대목을 발견하면서 소현세자의 죽음을 연결시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올빼미> 안태진 감독.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역사적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사극의 틀 안에서 그가 가장 고민했던 건 엔딩이었다. “시나리오에 썼던 엔딩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실록 속 문장으로 마무리했는데 무기력한 역사적 사실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인조도 소현세자처럼 학질로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지금의 엔딩을 쓰게 됐죠.” 나름의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결말이 ‘제작사 입김 때문 아니냐’는 오해도 일부 있지만 “순전히 내 아이디어”라고 안 감독은 말했다.
<올빼미>는 딱 석달, 계획됐던 회차보다 2회 적은 57회차로 촬영을 마쳤다. 신인 감독답지 않은 추진력이다. ‘17년 쌓은 공력이 발휘된 건가?’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처음엔 이걸 오케이 내도 되는 건지 판단이 안 되고 막막했죠. 현장 편집본을 보는데 18테이크나 찍은 신에서 첫번째 테이크가 제일 좋더라구요. ‘이게 나의 불안이구나. 사람들을 믿고 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촬영 진행이 빨라졌죠.” 촬영 들어가기 전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 배우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 묻는 그에게 이준익 감독은 “뭘 스스로 하려고 하지 마라. 감독은 배우과 스태프를 믿고 중재자 역할만 하면 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올빼미>는 노련한 배우 유해진뿐 아니라 주인공 경수 역의 류준열, 소현세자 역 김성철, 후궁 소용 조씨 역 안은진 등 젊은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가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안 감독은 젊은 배우들에 대해 “다른 세대의 출현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옛날에는 배우가 콤플렉스나 복잡한 내면을 가져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젊은 배우들은 그늘이 느껴지지 않고 너무나 밝다. 컷이 끝나면 장난도 많이 치고 명랑한데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하는 걸 수월하게 다 해내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특히 주연배우 류준열에 대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다 되는 배우다. 또 연기적 측면뿐 아니라 현장 전체를 이끌어나갈 줄 아는 배우로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조출연자까지 다 보고 있다가 어려워 보이면 직접 가서 챙기더라. 주인공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긴 세월을 기다려 낳은 입봉작 <올빼미> 이후 제작사들의 연락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안 감독은 “장르물을 좋아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극으로 데뷔한 것처럼 좋은 이야기와 소재라면 장르에 상관없이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