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에서 소현세자 역을 한 배우 김성철. 뉴 제공
“내가 영화 홍보를 해야 하는데, 성철이 홍보만 하고 있네.”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올빼미>(감독 안태진)에서 인조를 연기한 배우 유해진이 소현세자를 연기한 배우 김성철(31)에게 농담처럼 한 칭찬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포스터에도 등장하지 않는 김성철의 연기가 유해진과 류준열, 두 주연배우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한다.
소현세자가 당한 의문의 죽음은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지만 캐릭터 자체는 이렇다 할 강렬함이 없다. 출연 분량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김성철의 소현세자는 경수(류준열)가 어두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거나 인조와 대립하며 인조의 광기가 드러나도록 하는 장면 등 영화의 중요한 고비마다 긴장감을 고조하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전부터 실존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 해보게 됐어요. 그 인물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면서도 내 식대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두가지 도전인 셈이잖아요. 허구의 인물을 연기할 때는 날것을 추구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소현세자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면서 체화하려고 노력했어요.”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김성철이 말했다.
영화 <올빼미>에서 소현세자 역을 한 배우 김성철. 뉴 제공
그는 소현세자를 ‘어질다’와 ‘큰 그릇’이라는 두개의 열쇳말로 이해했다. 소현세자는 조선이 병자호란에서 패한 뒤 20대 중반 청나라에 끌려가 8년 만에 돌아왔다. “자료를 보면 소현세자는 볼모로 끌려간 청나라에서 스스로 일을 해서 노예로 팔려간 식솔들을 다시 사왔다고 해요. 책임감이 강하고 진취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감정의 굴곡이 크지 않고 침착한 인물이어서 어떻게 다가갈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소현세자는 이제 연기 경력 9년차에 도착한 그의 고민이 담긴 캐릭터이기도 하다. “정말 많은 캐릭터를 만나고 매 순간 집중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제 감정의 순수함이 연기에 있어 더는 무기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짝사랑하다 실패하고 힘들어하고, 그런 감정 연기들은 접어두고 이제 더 나아가야지라는 생각으로 올 한해를 보냈어요.” 올해 그가 뮤지컬 <데스노트>와 영화 <올빼미>에서 차분하고 이성적인 캐릭터를 선택한 이유다. 그는 뜨거운 감정보다는 “정확한 연기를 해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 정확함이 미세한 균형을 잘 맞췄을 때 감정적 울림 이상의 깊은 인상을 준다는 걸 <올빼미>의 소현세자가 보여줬다.
영화 <올빼미>에서 소현세자 역을 한 배우 김성철. 뉴 제공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김성철은 뮤지컬로 시작해 연극, 드라마, 영화로 넓히며 착실하게 계단을 밟아왔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tvN)에서 어릴 적부터 감옥을 들락거려 ‘감빵생활’에 빠삭한 법자, <그해 우리는>(SBS)에서 국연수(김다미)를 짝사랑하는 김지웅 역을 맡아 안정된 연기로 주목받았다. “한 계단씩 밟아 50살쯤 정점을 찍고 싶다”고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변화무쌍한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그라고 10계단의 도약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어릴 때는 매 작품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많이 넘어지다 보니까 ‘모든 게 하나에 모여져야 작품이 잘되는 거구나, 그리고 작품이 잘되어야 배우도 빛이 나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올빼미>는 “모든 게 잘 어우러진 영화”라는 점에서 김성철의 도약을 예감케 한다.
영화 <올빼미>의 한 장면. 영화에서 소현세자 역을 한 배우 김성철(사진 왼쪽)과 인조를 연기한 유해진. 뉴 제공
그는 소현세자처럼 ‘큰 그릇’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이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릇이 커진 사람이, 그릇이 큰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연습이나 연구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눈빛과 표정, 말투에서 그런 것들이 배어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는 30대가 되면서 “애 같지 않은 아저씨, 멋있는 아저씨가 되고 싶다” “어른의 연기를 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콕 집어 어떤 캐릭터냐’고 물으니 인공지능에게 사랑을 느끼는 남자의 이야기인 영화 <그녀>(2013)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테오도르를 꼽았다. “대사가 거의 없이 눈으로 많은 생각을 보여주는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