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어 시리즈의 수상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길 희망합니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2022년 9월13일(한국시각) 에미상 감독상을 비영어 시리즈의 ‘첫 번째’로 수상하고 남긴 소감이다. 감독상을 비롯한 남우주연상(이정재), 여우게스트상(이유미) 등 에미상 6개 부문 수상은 <오징어 게임>이 2021년 9월17일 오티티(OTT·방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인터넷 플랫폼)를 통해 공개된 이후 남긴 무수한 기록들의 정점이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나라 83개국 중 82개국에서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또한 가장 긴 기간 1위를 한 시리즈 드라마로 기록됐다.
<오징어 게임>은 ‘마지막’이 아니라 물꼬였다. <오징어 게임> 시즌2뿐 아니라 또 다른 <오징어 게임>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오징어 게임> 이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은 <오징어 게임>보다 더 빨리 넷플릭스 1위에 올랐다. 현재는 윤종빈 감독의 <수리남>이 넷플릭스 글로벌 3위에 올라 있다. ‘글로벌’해 보이는 시리즈뿐만이 아니다. “이런 걸 왜 보지?”(이진숙 프로듀서) 싶은 시리즈 드라마도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사와 아가씨> 같은 드라마가 그렇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2022년 8월 13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신사와 아가씨>는 인도네시아·카타르 등에서 글로벌 1위까지 올랐다. <신사와 아가씨>는 기억이 상실된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KBS 주말드라마다.
한 번 휩쓸고 갈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건대 사건은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 콘텐츠의 선전은 시스템적이기 때문”(김봉석 영화평론가)이다.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상 작품상 수상작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최초의 에미상 감독상 수상작 <오징어 게임>에는 다른 콘텐츠들과의 차이가 있다. 작가와 시스템이라는 차이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짬뽕’이라는 점이다. ‘콘텐츠’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배경도 출신도 다양하다. 황동혁 감독은 이전에 이지연 프로듀서와 영화를 만들었고(<남한산성>), 현재 한국 넷플릭스 1위를 하는 <작은 아씨들>의 정서경 작가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헤어질 결심> 등을 함께했다. <지옥>은 최규석의 네이버 만화가 원작이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함께 만들던 연상호 감독이 시리즈를 진행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2009년 네이버 웹툰이 원작이다.
배경만큼 콘텐츠 내용 역시 ‘짬뽕’으로 뒤섞인다. <오징어 게임>의 감독과 제작자는 <남한산성>이라는 아주 한국적인 영화도 함께 만들긴 했지만, <오징어 게임>에서는 <도박묵시록 카이지> <라이어 게임> <배틀로얄> 등 ‘일본적’인 서바이벌 구조를 가져왔다. 정서경 작가는 일본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마더>가 첫 드라마 대본이었다. <작은 아씨들>은 한국의 이른바 ‘막장드라마’를 비롯한 스릴러와 공포물·로맨스·소녀물·복수극 등 여러 장르의 극단적인 조합이다. <지옥>은 전형적인 만화적 상상력이 화면으로 옮겨졌으며,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무수한 좀비물 중 하나다.
시스템의 인적자원은 1990년대 후반 시작된 한국 문화산업 부흥을 함께했던 세대다. “이전 세대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작가주의를 보며 자랐다. 이전 세대가 이념과 계급을 중요하게 여기고, 도식화가 있다면 이 세대는 국적과 이념 등에서 자유롭다. 이전 세대는 서구에서 유행한 문화가 늦게 들어왔다면, 이들은 동시대적으로 감각하면서 자랐다.”(김봉석 영화평론가)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1971년생), 제작자 김지연, <작은 아씨들>의 정서경 작가(1975년생), <지옥>의 연상호 감독(1978년생), 최규석 만화가(1977년생) 모두 1970년대생이다.
이런 융합(짬뽕)적 특징은 케이팝에서도 보이던 특징이다. 케이팝은 장르가 아닌 ‘국적’이 이름에 들어간 ‘스타일’이다. 장르의 변종이 특징이다. 이디엠(EDM)으로 시작해 랩 구간이 있으며 클라이맥스에서는 발라드와 록풍의 고음이 가해지면서 단체 춤을 선보인다. 장르의 전환도 순간적이고 빠르다. 국적이 들어간 스타일이 ‘혼종’이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액션이면 액션, 코미디면 코미디, 로맨스면 로맨스인데 한국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특징이 있다. 액션을 하더라도 사회비판을 하고, 로맨스 불륜을 넣어도 감정적으로 진실하게 묘사된다. 에로영화에도 좌절한 청년 세대의 고민이 녹아 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특징이다.”(차우진 문화평론가) 여기에 더해 차 평론가가 말한 한국 콘텐츠의 특징은 ‘지적’인 양념이다. “댄스뮤직에도 앨범의 지향점과 가사의 상징을 넣는 게 한국이다.”
<뉴욕타임스>는 “<오징어 게임>은 한국의 뿌리 깊은 불평등과 기회의 상실에 대한 절망감을 활용해 전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최근 한국 문화의 수출품이다. 성공하기 힘들어졌다는 내용은 미국 등 다른 나라 국민에게도 친숙한 이야기”(2021년 10월6일치,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라고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이진숙 프로듀서는 “할리우드의 주인공이 평범하다면 한국의 주인공은 가난하다. 양극화가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자본주의가 영악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돈을 벌어 일확천금을 얻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이후로도 이어진 흐름을 설명한다.
차우진 문화평론가는 ‘케이’(K)를 내세운 언론의 호들갑과 달리, 에미상 수상은 ‘무국적 세계’로의 진입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우리 것인데, 미국 드라마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버렸다.” 애플이 4천억원을 들여서 제작한 <파친코>는 “한국적인 스토리여서가 아니라 호소력 있는 이야기여서”이며, 에미상에서 한국 시리즈에 상을 준 것은 이제 ‘한국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로 편입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류 드라마’ ‘케이팝’ ‘케이컬처’ 등 이전에 없었기에 ‘케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장르’는 에미상이라는 극적 계기로 ‘케이’를 떼고 ‘글로벌’로 융합해 들어간다. 바로 오티티 등의 인터넷이라는 한없이 평등해 보이는 세계로, 대자본이 형성한 흐름 속에서.
구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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