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 빛난 배우들은 명절이 기다려지지 않았을까요. 가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을 테니까요. 이번 추석이 즐거울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목표를 향해 묵묵하게 달려왔고, 그리고 이뤄냈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연휴 뒤 시작할 하반기를 우리가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에 관한 메시지도 읽을 수 있습니다.
① 독립영화로 차곡차곡 대표 캐릭터 만든 하윤경
② 악녀에서 착한 손녀로 목표 이뤄낸 오승아
③ 감초에서 주연까지 스펙트럼 넓힌 강기영
④ 10년만에 우뚝 솟은 놀라운 강태오▶ 12일 공개
“배우는 정말 모르겠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엔에이)가 방영되는 동안 이런 반응이 쏟아졌다. ‘우영우’ 박은빈의 연기도 좋았지만, 파트너 변호사 ‘정명석’으로 나온 강기영의 이미지 변신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주로 코믹 감초로 등장했던 그가 ‘예상을 깨고’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로 등장했다. 시청자들은 1회부터 빠져들었다. “어색하다”가 아니라 “나 왜 강기영한테 설레냐”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감사했죠. 그동안 제가 재미나고 유쾌한 기능을 하는 역할을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시청자들이 제가 어떤 역할을 맡든지 관심 없을 줄 알았어요. 기존과 다른 이미지로 등장해 연기하는 것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는 “이런 결의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두렵기도 했다”는데, 그 외에 ‘또 다른 정명석’은 연상되지 않는다. 데뷔 14년 차인데도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기를 점검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강기영은 “반듯하고 곧은 자세가 되어야 발성과 딕션도 좋아진다”며 “정명석이 되려고 자세에 가장 신경 썼다”고 말했다. “코믹 연기를 할 때 몸을 웅크려서 대사하던 습관부터 고쳐나갔어요. 좋은 악기를 만들어야 좋은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법률용어도 많은데 몸을 웅크린 자세로는 대사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촬영가기 전 30분씩 스트레칭을 하고, 어깨를 웅크리는 걸 경계하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늘 ‘척추를 곧추’세웠다. 변신에 욕심을 내어 ‘멋진 남자’가 되는 데만 집중하지 않았다. “정명석에 제 성격을 많이 반영했어요. 즉흥 대사(애드리브)를 하면서 빈 곳을 채우기도 했고. 그게 제가 가진 무기인 것 같아요.” 그래도 “30~40명 앞에서 법정신을 연기할 때는 심리적 긴장감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하는 게 틀려도 바르다고 생각하고 했어요.”
그는 2019년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 2021년 3월 개봉작인 영화 <자산어부> 이후 <우영우>에 출연했다. 그는 “영화 개봉이 미뤄지면서 본의 아니게 휴식을 취했고, 안 해본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기다리던 중에 <우영우>를 만나게 됐다. (성공은 기다림에 대해) 보상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명석은 배우 강기영의 새로운 모습 외에도 이 시대의 ‘멘토’를 보여줬다. 시청자들은 “현실에서도 저런 상사가 있었으면”하고 바란다. 팀의 잘못을 후배들 탓으로 돌리지 않고 책임을 지고, 사안을 판단할 때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상사. 강기영은 “정명석은 정말 멋진 캐릭터”라며 “회사 동기한테 사과하고, 신임 변호사들한테 ‘열심히 하라’고 얘기했던 식당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정명석 같은 멘토가 있다. “조정석 형도 저를 북돋워 줘요. 연기 잘하고 너랑 주고받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그런 형을 만나면 흥이 나서 연기를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박훈 배우도 같이 공연했을 때 ‘당근법’으로 저를 칭찬해 줬고. 칭찬은 기영이를 춤추게 해요.”
하지만 실제 강기영은 절대 정명석 같은 사람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상사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정명석 보다 좋은 남편인 것은 맞다. 정명석은 일과 가정에서 균형을 잡지 못했지만 강기영은 그렇지 않다. <우영우>로 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강기영의 모습도 조금씩 알려졌다. 그의 장모가 <우영우> 촬영장에 아이 ‘100일 떡’을 보내기도 했다. “강기영은 배우 강기영의 삶도 너무 중요한데 일상 강기영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반반으로 나누고 싶어요. 좋은 아빠와 좋은 남편이 제 로망이에요.” 그래서일까. 그는 <우영우>에서 매회 등장한 메시지 중에서 ‘방구뽕’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잘못된 방법으로 어린이 해방을 선언하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해방은 필요하다고 봐요.”
파트너 변호사 정명석은 신입 우영우를 만난 뒤 초심으로 돌아갔다.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우영우를 보면서 정의를 꿈꿨던 신입변호사 시절을 떠올렸다. 가정의 소중함도 알게 됐다. 강기영도 <우영우>를 통해 배우를 꿈꿨던 시절을 곱씹어 본 것 같다. 그는 “오래 전에 이런 날이 왔다면 기분이 좋아서 ‘방방’ 뛰었을 것 같다. 이젠 작품의 성공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고 했다. 이 관심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제2, 제3의 정명석이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알고 또 다짐하는 것 같았다. “<우영우>를 통해 ‘저 친구 저런 모습도 있네’ 라는 걸 보여준 것에 감사해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에 전념해보고 싶어요. 시청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저 친구 저렇게 하니 신선하네’라는 반응을 얻고 싶어요. 실패할지언정 도전해보고 싶어요.”
강기영의 이미지 변신은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배우라도 고정된 이미지는 없다는 것, 그리고 제작진이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한테서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내는 건 연출, 감독의 몫이다. 배우들은 누구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다. 코믹 감초만, 악역만, 주인공의 속 좋은 친구만 하고 싶은 배우는 없다. 그것만 잘하는 배우도 없다. <범죄도시>의 진선규가 그랬듯이 기회를 얻지 못해 못 보여준 배우들이 많다. <우영우> 유인식 연출이 강기영한테서 정명석을 보지 않았다면, 우리는 강기영의 더 다양한 모습을 못 만났을 것이다. “감독님 입장에선 저를 그렇게 중요한 배역에 캐스팅한다는 게 정말 모험이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잘 해내야 했습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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