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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고인돌 훼손’ 이면 보니…학예사 빠진 ‘문화재 행정’

등록 2022-09-07 07:00수정 2022-09-07 08:46

김해시 소속 학예사 14명 있지만
대부분 문화재 관리 대신 박물관 근무
다른 지역도 비슷…잡무 동원까지
“학예사 증원 등 관련법 처리 시급”
경남 김해시 구산동 고인돌 무단 훼손 현장. 노형석 기자
경남 김해시 구산동 고인돌 무단 훼손 현장. 노형석 기자

“최근 세계 최대 고인돌을 갈아엎은 김해시는 절대로 무식한 지자체 조직이 아닙니다.”

한 지방자치단체 문화재 부서에서 일하는 중견 학예사 ㅇ씨는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잘라 말했다. 여기엔 근거가 있다. 경남 김해시엔 전문가로 불리는 학예사가 국내 기초지자체 중 가장 많은 14명이나 된다. 예산이 열악한 다른 기초지자체들은 많아야 4~5명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더욱이 김해시 학예사들은 박물관, 문화예술과, 가야사복원과 등 여러 부서에서 일해왔다. ㅇ씨는 “김해시 학예사들이 왜 제구실을 못 했는지를 살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김해시 학예사 중 11명은 일선 발굴 조사 현장의 문화재 행정을 하는 게 아니라 박물관 소속이었다. 문화예술과 소속의 진영역철도박물관, 한글박물관, 인도박물관에 각 1명씩, 그리고 박물관 시설 및 정책담당 1명이 일하고 있다. 수도과엔 수도박물관, 산림과엔 목재문화박물관이 있어 역시 각 1명씩 일한다. 송원영 관장을 포함해 학예직 3명이 소속된 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을 제외하면 관장 없이 학예사만 홀로 있는 박물관이 많은 직제 구조는 김해시가 구산동 고인돌 무단 훼손 사태를 일으킨 배경 중 하나다. ‘박물관 도시’를 공약으로 내건 전임 허성곤 시장 시절 맹목적으로 학예직 배속 숫자만 채우면서 기형적 직제 구조가 생겼다.

훼손된 구산동 지석묘 복원공사 현장을 공중에서 바라본 모습. 문화재청 제공
훼손된 구산동 지석묘 복원공사 현장을 공중에서 바라본 모습. 문화재청 제공

고고학 전문가인 송원영 관장에다 가야사복원과에도 4명의 학예사들이 있었지만, 공사 실무 과정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복원과 근무자 중 1명은 정책팀으로 실내 사무를 보고, 나머지 3명은 문화재관리팀에 배속됐으나 저연차인데다 다른 능묘의 단순 관리에 투입돼 고인돌 현장에는 발도 붙이지 못했다. 사태가 터진 뒤 많은 언론이 김해시 쪽 학예사들에게 문의했지만,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제가 담당이 아니어서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전혀 모릅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지자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자체 문화재 관리는 별도의 전담 과 대신 문화예술과의 일부 업무로 취급되고, 극소수 학예사가 배속돼 다른 잡무를 하면서 문화재 관리를 떠맡는 상황이다. 현재 전국 광역지자체 17곳 중 충북, 대구, 울산, 광주 4곳이 문화재과가 없고, 기초지자체 226곳 중 불과 6.2%인 14곳에만 문화재과가 있다. 학예사들은 검표원, 산불 관리, 비상상황 관리, 예술인 지원, 사회단체 보조금 업무 등에 숱하게 동원된다. 구산동처럼 문화재 정비 공사가 생길 경우 토목직이 맡아야 하는 공사감독직을 학예사가 떠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기초지자체까지 문화재 관리를 맡을 복수의 학예직 채용을 법으로 규정하고, 산하 문화재관리직, 산하 미술관·박물관 관장은 반드시 학예직을 임명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에 두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별개로 문화재 현장에서 실권을 행사하는 행정직·토목직 공무원과 현장에서 발굴 작업을 담당하는 포클레인 기사 등 작업 인력들에게 문화재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자체 공무원들이 문화재 관련 교육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명문화하면 무지와 행정 일변도에 따른 유적 파괴나 방치 등의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학예직들의 연대단체인 전국학예연구회 회장인 엄원식 경북 문경시청 문화재과장(학예관)은 “국가 시도문화재 지정 점수에 따라 학예사 인원을 증원할 수 있도록 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과 각 지역 지자체 공립박물관 관장의 학예직 채용을 의무화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안이 김예지 의원 등의 발의로 국회에 올라 계류 중인데, 이를 먼저 통과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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