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매체를 통해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이 세상을 떠돈다. 각종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정치인의 주장이 기사 형식으로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면, 누리꾼들이 댓글로 갑론을박하는 세태가 대표적이다. 부고 소식 빼고 무엇이든 언론에 노출되면 좋다는 정치인과, 광고 수익을 목적으로 휘발성 인용 기사를 남발하는 언론인의 이해타산에 누리꾼들이 합세한 꼴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 조정이라는 정치의 본질은 물론, 객관적 사실 전달이라는 언론의 본질까지 왜곡되면서 세상이 시끄럽다.
왁자지껄한 세상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그릇된 통념이 강화된다.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정보에 근거한 일방적인 주장을 앞세운 떠버리들이 활개 친다. 믿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에 빠지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전후맥락 없이 하나의 단어 또는 문장으로 진실을 호도하는 부작용 때문에 사회적 갈등도 끊이지 않는다. ‘떠버리’와 ‘사기꾼’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드라마 <빅마우스>의 ‘박창호’(이종석)는 말만 앞서는 ‘떠버리 빅마우스(Big mouth) 변호사’와 어둠의 세계에서 지배자로 군림하는 ‘사기꾼 대왕 쥐 빅마우스(Big mouse)’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실 같은 거짓이 판치는 세상을 파헤친다.
박창호는 승률 10%의 보잘것없는 실력 때문에 ‘떠버리’라고 조롱당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렸다. 때마침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다윗’으로 변호사로서의 명예와 막대한 수임료를 챙길 수 있다는 구천시 시장 최도하(김주헌)의 제안을 받았다. 다른 변호사가 준비한 변론을 꼭두각시처럼 대행하면 된다는 조건이다. 돈이 필요했기에 사건을 맡았고, 가족들 앞에서 의기양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치밀하게 짜놓은 음모에 휘말려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 수감되고, 급기야 베일에 가린 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천재 사기꾼 빅마우스라는 혐의까지 뒤집어썼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설계하고 조종하려는 빅마우스는 언론계와 법조계 그리고 의료계와 학계를 포괄하는 기득권 세력을 상대로 천억원을 가로챈 존재이다. 박창호는 자신을 가짜 빅마우스로 만들어 조종하는 진짜 빅마우스를 상대로 목숨을 건 싸움에 나선다. 교도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빅마우스로 행세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살인사건의 진실과 구천시를 장악한 기득권 세력의 실체를 폭로한다. 정의로워서가 아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빅마우스가 설계한 세계에서 벗어나 가족과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다.
박창호는 빅마우스로 행세하면서 개발 비리 특혜가 난무하는 구천시의 현실을 목격했다. “다리를 잃고 군복을 벗어야” 했던 정·재계 ‘어르신’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구천시를 자신이 “한쪽 다리 없이 휠체어 위에서 모든 기적을 일궈”냈다고 주장한다. 놀라운 속도로 경제 개발에 성공했다고 자부하지만, 어르신은 개발 이익을 독점한 기득권 세력의 핵심 인물일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언론계와 법조계 그리고 의료계와 학계의 “특별한 사람들”이 어르신의 후계자로 낙점받기 위해 벌이는 이전투구에 박창호가 휘말리면서 구천시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드러났다.
빅마우스는 박창호가 “괴물들을 상대로 어떻게 이기고, 무엇을 얻어냈는지, 삶과 죽음을 오가며 얼마나 치열한 사투를 벌였는지” 모두 알고 있다. 박창호 또한 빅마우스가 구천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과장이 살해당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논문을 통해 구천시의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을 간파했다. 박창호는 “구천시 변두리를 싹 다 밀어버리고 대규모 택지 개발 사업을 할거 거든. 천억 투자해라. 이익금이 최소 몇 배는 될 거야. 넌 투자해서 돈 벌고, 우린 너한테 뺏긴 돈 회수하겠다”라는 언론사 대표의 제안을 거부하고, 빅마우스 행세를 멈추지 않는다. 이제 빅마우스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떠벌리는 말들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구천시의 개발 특혜 비리를 중심으로 결탁한 기득권 세력의 행태는 개발을 통한 수익 창출을 목표로 폭주하는 사회 현실을 환유한다. 건설 관련 광고를 노리는 언론 매체들은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한 개발 논리를 떠벌리면서 확대 재생산한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부동산 관련 기사들로 세상이 시끄럽지만, 집 없는 서민의 내 집 마련은 요원하기만 하다. 기득권 세력의 탐욕이 강해지는 만큼, 주거 안정이 절실한 사람들의 욕망도 커져간다. 언론이 권력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우리 사회의 포식자로 군림하는 기득권 세력에 기생하는 폐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거짓을 숨기는 가장 완벽한 곳이 어딘지 알아? 진실. 어떤 게 거짓이고, 어떤 게 진실인지 헷갈리거든. 결국, 사람들의 선택은 진실 같은 거짓”이라는 박창호의 통찰력이 필요한 시절이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