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대중문화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
군대는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법원은 사회 정의를 책임진다. 정치적 독립은 기본이고 절대 권한까지 행사한다. 공적 영역의 국가 기구이기에 절대 사유화할 수 없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군대 내에 공공연히 사조직이 만들어지고, 판검사가 정치권력의 눈치를 살폈던 적도 있었지만, 어찌 됐든 지금은 아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군대 내 사조직이 해체되고, 법원의 정치적인 독립성도 강화되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군대와 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군대와 법원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크다는 방증이다. 군인이나 군에 소속된 사람의 범죄 행위를 재판하는 군사법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판사가 내린 형량을 군부대 책임 지휘관이 마음대로 줄일 수 있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국방부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국방부 소속의 검사와 판사가 담당하는 계급사회 특유의 폐쇄성에서 비롯한 폐해다.
드라마 <군 검사 도베르만>(티브이엔)은 군법정의 실상과 폐해를 거침없이 까발린다. 군 검사 도배만(안보현)의 활약 덕분이다. 그가 처음부터 정의로웠던 것은 아니다. 중졸이라는 이유로 법무법인 취직이 어렵자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 용문구(김영민)의 스카우트 제안 조건을 받아들여 군 검사가 됐다. 그는 창군 이래 최초로 여성 사단장 자리에 오른 노화영(오연수)의 법률 대리인 용문구의 지시에 따라 군 검사 권한을 남용하면서 5년간 막대한 돈을 챙겼다. 그에게 군법정은 “법 위에 계급 있고, 계급 위에 돈이 있는 곳”일 뿐이었다.
도배만은 군 검사 생활을 마치고 민간 변호사가 되어서도 돈만 좇는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를 죽게 한 노화영 사단장에게 복수하려는 차우인(조보아) 군 검사의 영향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부모의 죽음이 노화영 사단장과 관련 있다는 기억을 떠올리고 군 검사로 복귀해 차우인의 복수에 합류한다. 도배만은 군 검사로서 저질렀던 악행을 반성하면서 계급장이 지배하는 군법정을 물어뜯는다.
도배만이 군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범죄 유형은 다양하다. 사단장 아들의 면피성 입대와 황제 복무 사건을 시작으로 부하에게 총을 쏜 잘못을 은폐하려고 가짜 ‘지뢰 영웅’ 행세를 하는 수색대대장의 사기 행각, 군사 법관의 주요 직위를 거치고 보병으로 옮겨 군단장이 된 지휘관 남매의 공관병 구타와 갑질 폭력, 선임병의 괴롭힘으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등 계급과 직위에 상관없이 발생한다. 도배만은 군부대 내의 범죄들을 수사하고 기소하면서 “군 검사가 유죄 입증할 의지가 없으면 판사는 죽었다 깨어나도 유죄 판결할 수가 없”었던 군법정을 뒤집어놓는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상황이다. 현실의 군법정에서는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위임한 군대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다 적발되어도 ‘제 식구 감싸기’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도배만이 계급과 직위를 남용하여 발생하는 범죄의 피해자를 외면하고, “돈만 좇는 쓰레기”로 악행을 일삼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권력 보전만 신경 쓰는 타락한 간부급 지휘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괴물이 되어서 남자들을 밟고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사단장 권력을 사유화하고 상해와 살인까지 저지르는 지휘관 노화영이 대표적이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고 끝까지 사냥감을 물어뜯는 도배만의 활약 덕분에 군대와 법원에 대한 현실의 답답증이 일부 해소되는 것 같다. 하지만 ‘공관병 맷값 폭행’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징역형을 선고받자 행패를 부리는 군단장을 제압하면서 “진실 앞에선 누구나 겸손해야 해”라고 충고하는 도배만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군사법원에서 군부대 내의 범죄를 불편부당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언론 보도만 차고 넘친다. 이게 현실이다.
오랜 정치적 공방 끝에 2021년 8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는 7월1일부터 성범죄를 비롯한 일부 군범죄를 민간에서 수사하고 재판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로 군대와 법원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수그러들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세상은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다만 변화와 개혁의 날을 좀 더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군대 내 기득권 세력 옹호로 비판받았던 고등군사법원 폐지처럼, 더디더라도 변화와 개혁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도 세상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