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드라마 <디피>로 화제를 모은 김보통 작가는 “내가 분노하고,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일을 쓴다”고 했다. 암 환자, 80년대 광주에 이어 올해는 청소년 자살, 산업재해 관련 드라마를 집필 중이다. 그는 “작품으로 말하고 싶다”며 평소 언론과의 사진 촬영 때 탈을 착용하는데 이날은 <한겨레> 독자들을 위해 마스크로 대신했다. 이 정도도 큰 결심이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보통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작업실에서 만난 김보통 작가와의 인터뷰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때가 되면 결혼하고…. 특별하진 않아도, 좀 재미없어도 무리 없는 삶을 우리는 보통이라 여기지 않았나. 그런데 “그 기준은 누가 세운 건가”라고, 그가 묻는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보통의 삶의 기준이면 좋겠어요. 꼭 1등을 하지 않아도, 평균이어도 모두가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고 느낄 테니까.”
많은 이들이 ‘특별한 인생’을 향해 달릴 때, 보통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 이젠 무슨 작가라고 불러야 하나. 웹툰, 에세이에 이어 지난해 <디피>(D.P.)로 드라마까지 진출한 김보통 작가한테서 ‘보통’의 가치를 들어봤다.
군 폭력을 다룬 드라마 <디피>. 넷플릭스 제공
김.보.통. 이름 석자는 지난해 핫키워드였다. 2014년 말부터 <한겨레>에서 토요일마다 연재한 만화 <디피: 개의 날>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오티티)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방영된 이후 많은 곳에서 그를 찾았다. 국내는 물론 영국 <비비시>, 미국 <뉴욕 타임스> 등 외국 언론에서 인터뷰를 요청하고, 함께 작업하자고 손 내미는 제작사도 많아졌다.
그는 <디피> 이후 지금껏 <디피 시즌2>를 포함해 드라마(3편)와 영화(1편)까지 4편을 집필했다. 집필 중이거나 예정된 작품도 5편이나 된다. 이 많은 걸 노련하게 소화해낸다. “요즘은 6부작, 10부작처럼 호흡이 짧은 드라마도 많으니까요. 작업을 끝낸 것 중에 원작이 있는 작품도 있는데 올해 작업할 다섯 작품은 제가 창작한 오리지널이에요.” 웹툰 <디피 시즌2>도 상반기 중 연재를 시작하고,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각색한 웹툰도 이달 중으로 선보인다. 그는 “<죽고 싶지만…>은 제가 원안을 만들고 다른 작가 2명이 세부 대본 작업을 해서 캐주얼한 느낌을 살렸다. 제 색깔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드라마에 이어 올해는 영화, 국내 오티티 왓챠와의 협업 프로젝트까지 1년 사이 김보통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스타 작가’라는 수식어도 그가 마음먹으면 붙일 수 있다. 그의 삶도 특별해졌을까. 사실, 그를 만나러 가기 전 티빙 드라마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에서 웹툰 공모전 1위를 한 뒤 외모가 화려하게 바뀐 한 작가가 떠올랐다. 그도 바뀌었을까, 궁금하면서도 그대로였으면 하는 마음. 다행히(?) 김보통은 김보통이었다.
“관심받는 거 싫어해요. 작품을 거절하지 않는 이유는 2013년 <아만자> 때부터 거의 8년(2021년 기준) 동안 음지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많은 이들에게 들려줄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웃음)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 기회가 왔어요. 지금이 30대 초반이라면 길게 봤겠지만 그사이 전 노화했죠. 그동안 쌓아둔 이야기들을 지금이 아니면 또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무리해서라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작품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힘들긴 하지만.(웃음)”
집필 중인 드라마 두편의 소재를 들으면 “김보통은 변하지 않았다”에 한표 찍게 될 것이다. 각각 청소년 자살에 관한 내용과 작업 현장 산업재해에 관한 이야기다. “얘기만 들으면 재미없겠다는 생각부터 들겠죠. <디피>처럼 시청자들이 관심 가질 수 있게 잘 풀어야죠.”
그는 2014년 당시에 “<한겨레>가 아니면 어느 매체에서 군을 고발하는 만화를 실어줬겠냐”며 “그때는 <한겨레>가 지금의 넷플릭스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 또한 보통의 삶으로 여겨지길 바랐다. <디피: 개의 날>이 뒤늦게 드라마화되면서 유독 주목받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이 소외된 사람, 비극적인 사건의 피해자 등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안들로 채워져 있다. 2013년 데뷔작인 <아만자>는 젊은 암 환자와 그의 가족들 이야기로 가슴을 먹먹하게 했고, <사람의 사이로>는 5·18을 소재로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사건과 마주한다. 특히 <사람의 사이로>는 1회부터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할 말을 잊게 한다. 그는 작품을 관통하는 가치관을 묻자 “그런 거창한 것은 없지만, 사람들이 안 잊어버리길 바라는 것들을 쓴다”고 했다.
“사람들이 잊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을 굳이 꺼내서 ‘이것 좀 보세요’라고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는 것, 알아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5·18의 경우는 누군가는 그 일이 잊히길 바라며 왜곡하고 은폐하잖아요. 그럴수록 우리는 더 기억해야죠.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우리가 알려야죠.” <아만자>에서는 진통제를 맞고 의식이 없을 때의 몸속 상태를 숲속에 온 듯 표현하고, <사람의 사이로>에서는 떠돌이 요괴 가족을 등장시켜 독자들의 마음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처음엔 슬픈 이야기가 아닌 척하며 시선을 붙들고 싶었어요. <디피>에서 ‘정해인이 나온다고 해서 봤더니 그런 내용이더라’는 반응처럼.”
그는 작품이 사회를 바꾸는 데 일조하기를 바라는 걸까. “한 소설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작가 역할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게 아니고 현실에서 눈을 돌리려는 사람들을 끌어다 앉히고 이게 현실이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굳이 작가론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이 현실의 괴로움을 잊으려고 웹툰이나 드라마를 소비하잖아요. 현실의 괴로움을 외면한다고 해서 현실이 변하지는 않죠. 콘텐츠를 통해 의문을 갖게 하고 싶어요. 탈영은 개인 일탈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내가 몰랐던 뭔가에 대해 의문을 던져주는 게 작가의 역할 같아요.”
그는 “작품을 쓸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은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작품을 보며 시청자들이 깨달음이 아닌 의문을 느꼈으면 좋겠다”며 “의문을 갖고 생각하고 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젊은 암환자 이야기로 삶을 돌아보게 한 2013년 데뷔작 <아만자>.
그는 보통의 삶을 응원하는 마음을 이제 행동으로 보여줄 참이다. 올해나 내년에 “오랫동안 꿈꿔왔던” 장학재단을 설립해 1등이 아닌 중간인 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려고 한다. 그런데 왜 중간? 장학금 받으려고 1등을 ‘안’ 하면 어떡하려고?
“그게 제가 바라는 거예요. <1등에게 박수치는 게 왜 놀랄 일일까>(오찬호 지음)라는 책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그래 왔기 때문에 1등한테 박수치고, 1등한테 모든 혜택이 돌아가는 것에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아요. 1등에게 몰아주는 사회가 되다 보니 애들은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1등이 모든 걸 가져가는 불평등한 세상이 되고. 1등이 아닌 이들이 다른 능력이나 역할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전 평준화된 사람들이 대접받았으면 좋겠어요. 보통이어도 괜찮다 응원하고 싶어요.”
그가 ‘김보통’이란 필명이 없던 때부터 자연스레 쌓인 생각들이다. 김보통 작가는 고등학교 때까지 네 가족이 단칸방에서 살았다고 한다. “우리 집이 방앗간을 했는데 그에 딸린 골방이었죠. 전 정말 행복했어요. 문을 열면 365일 부모님이 계시고, 네 가족이 모두 부둥켜안고 자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가난이라는 개념을 모르고 살았어요. 부모님이 곁에 있다는 게 심리적 안정감을 줬고 전 밝은 아이였어요.” 대학에 가서야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못사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을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자 생각했어요. 그럴 사람이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어쩌면 그날 그 다짐은 지금 행복한 걸 하자는 김보통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기업에 들어갔고, 암 환자였던 아버지 문병조차 가기 어려운 회사 생활이 힘들었지만 가족을 위해 꾹 참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사표를 던졌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는 멋진 결정처럼 보이지만 사실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말했다. 병원에 갔더니 몸은 망가져가고 있고, 또 하나 우울증이 시작됐다고 했다. “자살 충동이 심했어요. 나는 행복한 삶을 살려고 회사에 왔는데 4년 다닌 결과가 이거라니. 쉬라는데 쉴 수 없고, 약을 먹으면 낫지는 않지만 죽고 싶진 않을 거라고 하고.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이었는데. 어머니한테 딱 1년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회사를 그만뒀어요.”
1회부터 멍해지는 작품. 80년대 광주가 배경이다. <사람의 사이로>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견디자는 생각이 불행의 원천. 지금 행복하자”라는 그의 말은 체험에서 나온 거나 다름없다. 웹툰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1년은 그가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는 클럽 디제이를 하려고 레슨을 받았고, 디제이 장비 도매상이 되려고 준비했고, 작은 도서관, 케이크 가게를 열려다가 포기도 했다. 로스쿨에도 도전했다. “면접에서 떨어졌죠.” 최규석 작가의 권유로 트위터에서 만화를 그리게 됐고, 2013년 <아만자>로 정식 데뷔를 했다. “어머니가 만화가 됐으니 다시 회사 가라고.(웃음)”
곰곰 들여다보니 김보통 작가는 좀 특별했다. 재능뿐 아니라 사람 자체가 ‘예상 불가능해’ 계속 말을 붙이고 싶어졌다. 웹툰 학원에 다닌 것도 아닌데 어떻게 1년 만에 연재를 시작했을까? 드라마 집필은 또 어떻고? 그런데 특별하다는 느낌 한편으로,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줬다. 어린 시절, 부모님, 군대, 직장까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의 만화 속 인물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갖고 있던 불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대학에 갔더니 학생들이 민주항쟁을 모르면 화가 나고, 군대 폭력이 문젠데 사람들이 모르면 불만을 갖게 되고. 제 이야기는 늘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을 겁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