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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김광규 “절망해도 괜찮아요…답 찾다보면 희망이 보이더라고요”

등록 2022-02-17 05:59수정 2022-04-20 14:39

[쉼톡②] 인생 자체가 ‘절망 속 희망’ 김광규
현실 피하지 않고 인간·배우로서 삶 이겨내
“열심히 노력하는 자 보답받는 사회됐으면”
“이상하다 말할 수 있는 정의로운 배우 되고파”
지난 10일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김광규는 “좀 더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에 고민한다”고 했다. 진지한 인터뷰를 원한 그에게 사진마저 ‘정색’하면 안될 것 같다고 했더니, 그가 정말 괴로워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 10일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김광규는 “좀 더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에 고민한다”고 했다. 진지한 인터뷰를 원한 그에게 사진마저 ‘정색’하면 안될 것 같다고 했더니, 그가 정말 괴로워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22년을 모두 함께 희망의 해로 만들어가자는 취지의 인터뷰.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시대에 누군가의 진심 담은 이야기는 마음을 데웁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온 사람들, 소소하더라도 값진 자신만의 한 가지를 가진 사람들을 만납니다.

“절망스러운 현실을 얘기해도 되나요?” 배우 김광규는 <한겨레>의 ‘여기서 잠깐, 쉼톡’ 제안에 이렇게 되물었다. ‘여기서 잠깐, 쉼톡’은 누군가가 지켜온 가치관을 독자들과 공유하며 희망을 얘기하는 꼭지다. 지난 1월 첫회에선 야구 선수 박찬호와 배우 박상원이 30년 우정을 이야기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시대를 살지만,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라는 것을 말했다. 그런데 2회 주제가 벌써 ‘절망’이라니.

“왜 새해가 되면 꼭 희망적인 이야기만 해야 할까. 처한 현실이 절망스러운데, 하루아침에 희망적으로 바뀔 수 있나. 난 절망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현실을 피하지 않고, 답을 찾아 충분히 절망하다 보면, 어느새 희망이 보이더라고.”

오미크론으로 ‘레벨 업’ 된 코로나 일일 확진자는 10만명에 이른다. 지난 1년보다 앞으로 다가올 1년이 희망적일 거라는 보장도 없는 시대. 힘들었던 지난날을 하루아침에 털어버리자는 말 자체가 어쩌면 아이러니다. 절망을 얘기하다 보면 정말 희망이 보일까. 지난 1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배우 김광규를 만났다.

누가 김광규일까? 갑갑한 요즘 ‘치유약’이 되어준 드라마 &lt;내과 박원장&gt; 속 김광규. 티빙엔 제공
누가 김광규일까? 갑갑한 요즘 ‘치유약’이 되어준 드라마 <내과 박원장> 속 김광규. 티빙엔 제공

갑갑한 요즘 그의 시원한 연기가 그나마 현실을 잠시 잊게 한다. 지난 12일 종영한 드라마 <내과 박원장>(티빙)에서도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늘 웃음꽃이 피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1999년 영화 <닥터케이(K)>의 단역 물리치료사 역할을 시작으로 23년간 다양한 인물로 변신했다. 영화 <친구>에서는 폭력적인 선생이었고,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는 어수룩한 비서실장,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위엄 있는 ‘척’하는 판사였다. 때론 얄밉고, 괴팍한 역할도 맡았지만, 배우 김광규를 지금껏 살게 한 힘은 “사람 좋은 호감력”이다.

그와 작업을 함께했던 한 드라마 피디는 “김광규는 배우 자체가 내뿜는 호감 이미지가 작품 속에서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는 힘이 유독 크다. 비슷비슷한 인물을 연기한 것 같으면서도, 작품 속 역할이 또렷이 구분되는 것은 호감도에서 비롯된 흡인력과 관련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내전>에서 딱 한번 가발을 썼을 뿐, 작품마다 외적으로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배역을 제 옷 입은 듯 소화했다. 웃을 때와 무표정일 때의 상반된 이미지,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눈빛 등이 그를 뻔한 ‘감초’ 배우가 아닌,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배우로 완성케 했다고들 평한다.

특히 <내과 박원장>은 2022년 ‘김광규의 호감 파워’를 기대하게 한다. 장사꾼에 가까운 개원의의 현실을 꼬집은 이 드라마에서 그는 ‘박원장’(이서진)의 이웃 병원 산부인과 원장 ‘지민지’로 나왔다. 이서진의 변신이 화제를 모은 한편으로, “그를 주연으로 웹드라마처럼 ‘비(B)급’ 감성을 더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이 쏟아졌다. 물론 그는 “이서진 그 멋진 배우가 가발을 쓰고 여장까지 하며 열연했기에 화제가 됐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오티티 시대를 맞아 김광규 주연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보는 이들을 들뜨게 한다. 김광규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면 그의 희망을 응원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티브이 속 김광규와 티브이 밖 김광규. 수십년의 인생이야기는 히어로물 캐릭터의 변천사다. 물론, 과장을 좀 보태자면! 김태형 기자
티브이 속 김광규와 티브이 밖 김광규. 수십년의 인생이야기는 히어로물 캐릭터의 변천사다. 물론, 과장을 좀 보태자면! 김태형 기자

절망의 현실 속 희망의 궤적

그의 인생은 절망과 희망의 연속이었다. 그가 살면서 처음 느낀 ‘절망’이 초등학교 때 부의 차별이다. “잘사는 집과 못사는 집을 차별하는 건 어린 나이에 이해할 수 없었어요. 육성회비 안 가져왔다고 학교에서 맞았던 기억이 잊히지 않죠.”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국방부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군 위탁장학생을 선발했고,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졸업 뒤 바로 입대해 직업군인으로 약 6년을 근무했다. 그는 “그게 내가 했던 최초의 정의”라고 표현했다. “엄마가 힘들게 삼 형제를 키운 그 삶을 너무도 잘 아니까요. 장학금 받아서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만 했죠.”

제대 뒤 택시 운전, 영업사원, 국제시장 장돌뱅이 등 돈 벌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내 꿈’을 꾸지는 못했지만, 매일 오늘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가를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가슴 설레는 일이 뭘까. 그게 연기라는 걸 알았고, 졸업한 지 11년이 지나 우리나이로 서른한살에 대학 문을 두드렸어요.”

당시 서울예전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뒤 부산예전에 간 것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시작”이었다. “그곳에서 열정 가득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독립영화도 찍게 됐고, 연극도 제작하게 됐다”는 그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이 시작된 순간이라면 그때 학교 친구들을 만났을 때죠. 함께 영화 찍고 이야기를 나눴던 시절에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당시 사제 관계로 만난 곽경택 감독이 그가 출연한 독립영화를 보고 영화 <닥터케이>에 캐스팅하면서 1999년 배우로 데뷔하게 됐다. 두번째 출연작 역시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였고, 이 작품으로 점차 얼굴을 알렸다. “이제 절망은 끝일 줄 알았는데, <친구> 이후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영화 개봉하고 나서 3년 동안 일이 없었어요. <친구> 이후에도 얼마간은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혼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친구의 조언으로 프로필 사진을 찍어 돌리며 드라마를 두드렸어요.”

전 재산 50만원을 모아 프로필 사진을 찍고 사진을 돌린 뒤 광고 촬영을 하고 100만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다시 프로필 사진을 찍고 사진을 돌리는 식을 반복했다. 아침드라마 단역을 시작으로 3년 동안 이름 없는 누군가의 인생을 살았다. 2006년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공 실장’ 역할을 따내며 ‘감초 천재 김광규 시대’가 열렸다.

고시원을 나와 반지하에 살다가 지상 원룸 등으로 조금씩 집을 넓혀갔다. <환상의 커플> 이후 아파트 전세 사기를 당하며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등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절망은 찾아왔지만, 과거보다 일이 많아진 덕에 조금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환상의 커플> 이후 이제 희망으로 가는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내 인생은 절망에서 희망을 찾고, 다시 절망에 빠지는 과정의 반복이더라고요. 그래도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난다는 걸 믿게 됐죠. 반복되는 과정에서 이겨내는 법을 알았다고 할까요?” 그는 “절망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자. 고민하다 보면 스스로 방법을 찾게 되고 반드시 좋은 날은 온다”고 말했다.

거듭된 절망 끝에 곽경택 감독을 만나 &lt;닥터K&gt;로 데뷔하고 &lt;친구&gt;로 얼굴(사진 오른쪽)을 알렸다. 영화사 제공
거듭된 절망 끝에 곽경택 감독을 만나 <닥터K>로 데뷔하고 <친구>로 얼굴(사진 오른쪽)을 알렸다. 영화사 제공

배우의 역할, 내야할 목소리 고민 깊어져

그는 요즘 연기를 넘어 ‘배우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을 한다. “내가 사는 세상을 좀 더 희망적으로 만드는 데 목소리를 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그도 그런 목소리에 힘을 얻어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 동안 공식적인 자리에서 갑갑한 현실 등 연예계 밖의 일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해온 것도 그런 연유다. 그는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배우 데뷔 23년. 최근 수년 사이에 이런 생각이 부쩍 든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드라마, 연극까지 대부분 정의를 얘기하잖아요. 심지어 만화영화까지. 그리고 난 그런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이고. 그런데 정작 현실에선 내가 생각하는 정의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었다는 게 어느 순간 부끄러워졌어요.”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연예인의 발언에 관대하지 않다. 특정 정치인을 지지한다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사람들은 비난한다. 그도 2020년 방송사 연말 시상식에서 당시 많은 이들이 답답해하던 집값 이야기를 꺼냈는데, 악플 세례를 받았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우리도 해외 시상식 같은 수상 소감이 가능해질까, 기대했는데 김광규를 향한 악플 세례를 보며 나랏일에 관심 끄자는 분위기만 더 팽배해졌다”고 했다. 지금도 그의 주변에선 “배우 인생을 거론하며” 그의 입을 걱정스레 주시한다. “제 노후를 걱정해요.(웃음) 내가 사는 나라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주변에서 배우 인생을 걱정하는 이 상황이 너무 절망스럽죠. 한편으로 자괴감도 들어요. 내가 좀 더 영향력 있는 배우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조금은 더 귀 기울여주지 않았을까.”

인생에서 희망의 비중이 더 커진 계기가 된 작품. 드라마 &lt;환상의 커플&gt;. 문화방송 제공
인생에서 희망의 비중이 더 커진 계기가 된 작품. 드라마 <환상의 커플>. 문화방송 제공

그의 진심이 오롯이 가닿기를

그럼에도 그는 기회가 되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자신의 절망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이유도 말의 힘을 믿어서다. “<친구> 끝나고 2~3년 뒤? 양화대교 중간에서 간혹 우는 사람을 봤다면 저예요. 뛰어내릴까 말까 그런 생각도 했죠. 그럴 때마다 거기 적힌 문장들이 주는 힘이 컸어요." 당시 성공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다는데 그 말들도 큰 힘이 됐다. "절벽 끝에 나를 세워라. 그러고 나면 새로운 용기가 생길 것이다!"

기사에는 다 녹일 수 없었지만 좋은 세상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뜨거웠다. 고민도 깊었다. “좋은 사회를 위해 바뀌었으면 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말하는 ‘챌린지’ 같은 운동도 시작되면 좋겠다”는 등 여러가지 제안도 했다. 그의 이 바람은 올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2022년은 생각이 다르다고 비난하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려 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에 앞서 김광규는 “코믹한 이야기는 빼고, 절망 속 희망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 말은 꼭 해야겠다. 깊은 얘기를 나눠본 김광규는 드라마 속 ‘감초’와는 전혀 다른 사색하는 남자였다. 정의로운 사회에,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그런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절망 끝에 다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희망이 될 것이다. 여러분, 이런 남자를 그냥 둘 것입니까? “이런 거 좀 하지 마라니까. 이런 게 나를 절망에 빠뜨린다고오오오오오!!!!”

그의 인생작 중 하나인 &lt;빛과 그림자&gt;. 그의 다채로운 연기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문화방송 제공
그의 인생작 중 하나인 <빛과 그림자>. 그의 다채로운 연기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문화방송 제공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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