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까말까 고민은 이제 그만! 매주 수요일 11시 <수요 드라마톡 볼까말까> ‘평가단’이 최근 시작한 기대작을 파헤칩니다. 주말에 몰아볼 작품 수요일쯤에 결정해야겠죠?
‘백이진 유죄인간!’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돌아다니는 남주혁, 아니 ‘백이진’의 별명이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티브이엔)에서 세상 달곰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시청자의 심장을 때리기 때문이다. “널 사랑하고 있어.” “예쁘게 하고 왔네.”
행동은 또 어떤가. 바닷가에 나란히 앉은 ‘나희도’(김태리)한테 속삭이는 장면에서, 굳이 희도 얼굴을 지나쳐 왼쪽 귀에다 대고 얘기한다. 이진 바로 옆, 희도 오른쪽 귀에 얘기하면 편한걸. 오른쪽 귀에 이어폰? 빼고 말하면 되는걸. 나희도의 “너 때문에 복잡하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듣고는 은근 좋아하며 아닌 척하는 모습은 또 어떻고. 누리꾼들은 이런 “이진의 행동과 말이 사람 심장을 친다”며 “고소하겠다”고 벼른다.
지금 티브이는 멜로시대인데, 시청자들이 유독 백이진한테 설레하는 데는 그런 그한테 순수하고 풋풋하게 반응하는 김태리, 아니 ‘나희도’가 있기 때문이다. 초롱초롱한 눈빛과 활짝 웃는 미소가 순정만화 속 여자 주인공 같다. 백이진의 눈빛에 나희도의 반응이 만나 청춘멜로 속 장면의 효과가 200%가 된다. 청춘멜로에서 남녀주인공의 호흡은 , 세대 불문 드라마 성공의 일등공신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도 1회 시청률 6.4%로 시작해 8회 10%를 넘어선 뒤 10회까지 유지 중이다. 백이진과 나희도를 완성한 남주혁과 김태리의 호흡이 최근 수년 사이 나온 청춘멜로 남녀주인공 중에서 ‘최고’라면 너무 과한 칭찬인가. 수요드라마 평가단 생각은 어떨까.
[남지은 방송연예기자] 과하지 않다. 수년이 뭐야, 분위기에 연기까지 저런 호흡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한술 더 뜨나. 청춘멜로, 로맨틱코미디 같은 ‘간지러운’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나도 모르게 빠져들더라. ‘아 청춘물 재미있구나’에 앞서, ‘저들과 놀고 싶다’ ‘저 팀에 끼고 싶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진짜 존재하는 사람들 같았다. 아니, 존재해줬으면 좋겠더라.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건축학개론>(2012) 이후 이제 더는 그런 설렘은 없을 것만 같던 ‘첫사랑 청춘멜로’의 서사가 돌아온 듯한 작품이다. 일단 ‘자고’ 시작하는 요즘 멜로드라마들과 달리, 10회까지 키스 장면 한 번 나오지 않는데, 그 어떤 멜로보다 가슴 두근거리게 만든다. 이런 평가를 받는 데는 당연히 남주혁과 김태리의 연기가 큰 몫을 한다.
[남지은 기자] 로맨틱코미디나 청춘멜로는 배우의 연기가 8할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두 사람이 연기를 잘해서 느껴지지 않을 뿐이지, 은근 ‘오글거리는’ 대사와 장면도 많다. 나희도와 백이진이 다시 만난 뒤 나희도의 남자친구와 함께 밥 먹는 장면은 대본으로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일까. 나희도가 ‘쁘앙’하고 우는 모습은? 두 사람이 연기를 너무 잘하고, 시청자들이 빠져들어서 예뻐 보이지만, ‘잘못된 만남’이었다면... 이 드라마 캐스팅 누가 했나요. 상 줘야 한다.
[정덕현 평론가] 김태리 연기가 특히 좋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고등학생 역할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해낸다. 나희도라는 이제 막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순수함과 솔직함, 씩씩함을 담은 캐릭터와 만나 어마어마한 청춘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초반에는 다소 과장된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것이 일종의 순정만화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주문 같은 단계였다는 걸 뒤로 갈수록 이해하게 만드는 연기다.
[남지은 기자] 김태리는 움직임을 크게 하며 나희도를 표현하나 했는데, 그냥 그 자체가 나희도더라. 다른 여자 배우들과 영화 시사회장에서 웃는 사진을 봤는데, 두 배우는 입을 가렸는데, 김태리는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나희도가 되려고 한 게 아니라, 자신 안에서 나희도의 모습을 찾은 게 아닐까 싶었다. 영화 <아가씨>,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 어떤 상대와도 호흡이 잘 맞는 배우인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생의 감정에서 느끼는 사랑은 어른의 사랑과는 다를 것이라, 표현하기 힘들었을 텐데, 김태리여서 가능했다.
[정덕현 평론가] 김태리는 영화 <아가씨> <1987> <리틀 포레스트> <승리호>는 물론이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독보적인 몰입의 연기를 보여준 연기자로 이번 작품을 통해 ‘믿고 보는 연기자’라는 말이 나올 거라 생각된다.
[남지은 기자] 남주혁의 연기가 놀라웠다. 나희도를 바라볼 때의 눈빛과 파산한 아버지를 찾아온 사람들한테 “앞으로 어떤 순간에도 행복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의 눈빛이 뚜렷하게 구분되더라. 특히 미안함과 절망, 슬픔 등이 섞인 그 눈빛은 시작부터 남주혁을 주목하게 했다. 백이진은 진지하기만 한 인물은 아니잖아. 코믹도 살짝 있고, 후배들한테 선배티도 내고. 진지함을 깨지 않고 코믹을 오가는데 그 선을 잘 지키더라. 여러 작품에서 주목받았지만 ‘내 시대’라는 건 없었는데 이제 ‘남주혁의 시대’가 온 것 같다.
[정덕현 평론가] 괜찮은 이미지의 배우지만 연기가 도드라진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 한계를 넘어섰다. 나희도가 귀여워 자꾸만 장난을 치고픈 마음을 드러내는 백이진의 면면을 남주혁은 이미지 그 이상으로 몰입해 전하고 있다.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무지개가 보이는 다리 위에서 남주혁이 김태리를 내려다보며 “사랑해.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나희도. 무지개는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대목은 남자인 내가 봐도 가슴 설레더라.
[남지은 기자] 평론가님도 고소하실 건가요.
[남지은 기자]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미덕은 주인공 두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모든 캐릭터가 다 살아있다는 점이다. 펜싱 스타 고유림과 나희도의 관계, 고유림과 문지웅의 관계, 그리고 문지웅과 지승완의 관계, 지승완과 백이현의 관계까지. 양찬미 코치와 나희도 엄마 신재경 앵커 사이는 또 어떻고. 배역들이 저마다 사연을 갖고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모든 배역이 어우러져 살아난다는 건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될 수 없다. 대본도 좋았고, 무엇보다 연출을 잘했다는 뜻이다.
[정덕현 평론가]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거의 모든 배우가 발견 혹은 재발견되는 놀라움이 있다. 고유림 역할의 보나도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는 스타 펜싱 선수와 그저 평범한 소녀를 오가는 연기를 선보였고, ‘인생 사부’라 불리는 양찬미 코치 역할의 김혜은은 이 작품을 통해 그 진가가 재발견됐다. 하지만 기대감이 너무 크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서인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들이 어떤 불행을 겪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나온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제목과 지금의 나희도 옆에 백이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해피엔딩이 아니면 어쩌나 불안해한다. 새드엔딩이 되면 아쉽겠지만, 그래도 한동안 대중들에게 강렬한 ‘첫사랑 서사’의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그래서 볼까말까>
[정덕현 평론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기억에 남을 만큼 저도 모르게 역량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작품은 있기 마련이다. 아마 권도은 작가에게 이 작품이 그렇지 않을까. 김태리, 남주혁, 보나, 김혜은, 최현욱, 이주명, 최민영 등 배우들도 그럴 것 같다.
시청자도 그랬으면… 꼭 보시길.
[남지은 기자] 요즘처럼 답답한 현실에서 더 답답했을 그 시절 청춘들을 보며 위로받는다.
꼭 위로받자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