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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난관 막아서도 꿈 지켜내는 ‘빛나는 청춘 나희도’

등록 2022-03-05 09:50수정 2022-03-05 09:55

윤석진의 캐릭터 세상 16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희도
티브이엔 제공
티브이엔 제공

참으로 엄혹한 시대였다. 과거형으로 표현하지만, 어쩌면 아직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가득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승승장구하던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함부로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는 웃으며 이야기하는 추억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방향이 틀어진 현재진행형의 고통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1997년 11월21일, 그날 이후 수많은 사람의 인생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뒤틀렸다.

청년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던 대다수의 청년이 시대에 꿈을 빼앗기고 쪼그라들었다. 누군가의 삶을 고통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는 자책감에 “어떤 순간에도 정말 행복하지 않을게요”라고 울먹이며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백이진(남주혁)이 그랬다. 그는 스포츠카를 대학 입학 기념 선물로 사줄 만큼 풍족했던 아버지가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으면서 ‘몰락한 도련님’이 되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고 싶었던 꿈을 포기하고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가장이 되면서 학창 시절의 밝고 맑은 웃음을 잃어버렸다. 불과 스물두 살의 일이었다.

신문 배달로 시작한 하루를 책 대여점 아르바이트로 마무리하면서 아이엠에프 외환위기를 견뎌야 했던 백이진은 열여덟 살의 고등학생 나희도(김태리)를 만나면서 잃어버린 웃음을 조금씩 되찾는다. 어린 시절 펜싱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좋아하고 동경하는 동갑내기 국가대표 고유림(김지연)에게 무시당할 만큼 존재감 없는 선수로 전락한 나희도가 백이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시대가 다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행복까지 포기해?”라면서 “둘이 있을 땐 아무도 몰래 잠깐만 행복해지자”는 나희도의 진심 어린 위로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은 백이진은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낸다.

나희도는 그 어떤 순간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여파로 펜싱부가 해체되자, “대체 시대가 뭔데 내 꿈을 뺏을 수 있냐 말이야”라고 대들면서 펜싱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펜싱부, 그것도 고유림이 있는 태양고로 강제 전학 조치를 당하기 위해 동급생 폭행이나 패싸움에 가담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이트클럽 출입이라는 탈선까지 감행해도 소용없었지만 ,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태양고 코치를 찾아가 자신의 실력이 욕심나는지 판단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마침내 전학에 성공한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돌진하던 나희도는 아이엠에프 시대에 꿈을 빼앗긴 경쟁자들을 대신해 국가대표 평가전 출전 기회를 얻는다. 외환위기 시대의 역설이다. 또래들에 견줘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 형편 덕분임을 알기에 자만하지 않지만 , 1 등 하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한다 . 그럴수록 고유림과 충돌하지만 , 그는 “ 펜싱에서 제일 중요한 게 상대방과 거리 조절이거든 . 근데 내가 지금 그걸 못하네 ” 라고 눈부시게 성장한다 .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던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나희도는 특유의 긍정적이고 건강한 기운으로 시대와 맞서며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했다. 훗날 태어난 그의 딸은 엄마의 화려함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그것은 모두 “그날그날의 연습에 대한 기록과 반성들”로 이뤄낸 성취였다. 경기에서 지고 실패하는 데 익숙한 탓에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맨날 진다고 매일이 비극일 순 없잖아. 웃고 나면 잊기 쉬워져. 잊어야 다음이 있”다는 그의 생각이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비법이다. 백이진이 힘들고 약해질 때마다 “실패하는 걸 겁내지 않아 하는 그 당당한 마음”을 탐내며 나희도를 보고 싶어 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나희도는 자신의 꿈을 사랑한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전략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펜싱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로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다. 그래서 고유림과의 아시안게임 결승전 판정 시비 이후 모두가 펜싱을 그만두라고 해도, 여전히 재미있기 때문에 그만두지 않았다. 그 어떤 시련과 위기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나희도는 어쩌면 아련한 감성으로 충만한 청춘을 상징하는, 비현실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무한 생존경쟁 시대가 요구하는 온갖 스펙을 갖춰도 취업하기 어려워 좌절하는 청년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존재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향한 나희도의 응원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때 보자”는 그의 응원이 빛바랜 청춘을 다시금 빛나게 만든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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