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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도시’ 킹메이커가 짠 판, 속지 말고 의심하라

등록 2022-02-11 16:49수정 2022-02-11 20:35

윤석진의 캐릭터 세상 15 - <공작도시> 서한숙
서한숙은 유력 정치인들의 치부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실세 중의 실세가 된다. 제이티비시 제공
서한숙은 유력 정치인들의 치부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실세 중의 실세가 된다. 제이티비시 제공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다. 당연한 명제이지만, 가끔은 의구심이 든다. 대통령 선거 정국에서 ‘킹메이커’ 역할에 주목하는 언론 보도가 난무할 때마다 그렇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어울리지 않는 ‘왕 만들기’라니, 가당찮다. 하지만 정치권은 ‘킹메이커’가 유권자의 표심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통령 후보자에 관한 검증이나 정보 제공이 제한적이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대통령은 국민이 선거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무맹랑하지만 합리적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킹메이커’ 역할을 자처한 여자가 있다. 도시 개발 때문에 주변부로 밀려난 서민의 삶을 형상화한 손상기 화백의 ‘공작도시’ 시리즈를 모티브 삼은 드라마 <공작도시>의 ‘윤재희’(수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빛나는 성공을 이루겠다”는 어린 시절 결심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미술관 직원이었던 그는 성진그룹 며느리가 되려고 애정 없는 결혼을 하고, 미술관 실장을 거쳐 관장 자리까지 차지했다. 막강한 정보력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시어머니 ‘서한숙’(김미숙)을 상대로 원하는 것을 쟁취할 정도의 실세가 되었으니, 성공한 인생이라 하겠다.

그러나 윤재희의 외형적 성공과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청와대 안주인이 되겠다는 욕망은 성진그룹 자본력으로 정치권력을 흔드는 서한숙이 설계한 판에서만 가능하다. 서한숙은 “치부를 이용해서 얻어내는 것보다 치부를 덮어줄 때 더 큰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장사꾼의 수완으로 정치권의 핵심 세력들을 제압한다. “그저 성공하고 싶었을 뿐”인 윤재희는 서한숙이 설계한 권력 게임의 경주마에 불과했다.

제이티비시 제공
제이티비시 제공

서한숙은 유력 정치인들의 치부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실세 중의 실세가 된다. 검찰총장의 치부로 국토부 장관의 수사를 끌어내고 , 국토부 장관의 치부로 철거민 참사로 중단되었던 재개발 사업을 재개하면서 자본을 불려 나간다 . 자본의 장막 뒤에서 대통령 선거 정국의 판세를 좌지우지한다 . 윤재희의 욕망을 이용하여 혼외자식 정준혁(김강우)을 대권 주자로 만들어낸 것이다. 방송사 유명 앵커였던 정준혁은 토크콘서트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로 기득권 정치 세대교체의 대표 주자로 부상하지만, 그 또한 서한숙이 조종하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

서한숙이 설계한 정치판에서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발생한 참사와 관련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철거민의 절규에 귀 기울이는 정치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려고 이합집산하는 정치 모리배들만 활개친다. 서한숙은 막대한 개발 이익을 챙기려고 그들의 욕망을 이용한다. 그는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여론 조성에 성공한 정준혁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도 철저하게 차단한다. 재개발 사업 참사 당시 정준혁이 폭력을 저지른 철거민을 살인 교사하고 사건을 은폐한다. “난 그저 무책임한 사람들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했을 뿐”이라고 정당화한다.

서한숙은 자신이 설계한 게임의 규칙을 위반한 자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자기 뜻을 거스르는 윤재희의 모든 것을 “차근차근 아주 철저하게 짓밟겠다”고 겁박하면서 선택을 강요한다.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쓸모가 있는 사람”만을 관리하고 감시하면서 그들의 욕망을 이용하여 자신의 잇속을 챙긴다. 자본으로 축적한 정보를 조작하여 은밀하게 유권자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것이다.

만약 <공작도시>의 서한숙처럼 현실 정치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다면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유권자의 표심이 왜곡되는 폐해가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아닌,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대통령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만큼 대통령 후보자들의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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