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까말까 고민은 이제 그만! 매주 수요일 11시 <수요 드라마톡 볼까말까> ‘평가단’이 최근 시작한 기대작을 파헤칩니다. 주말에 몰아볼 작품 수요일쯤에 결정해야겠죠?
한국 좀비드라마는 바이러스가 그냥 퍼지지 않는다. <킹덤>은 백성들의 배고픔이 계기였다. 그래서 좀비가 된 그들이 양반들을 물려고 달려드는 모습은 무섭기보다 슬펐다. 백성들은 좀비가 되어서야만 양반과 동등한 존재가 됐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국내 오리지널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교 폭력이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 2009년~2011년 연재한 웹툰이 원작인데,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이 좀비에 맞선다. <킹덤>보다 더 씁쓸하다. 학생들은 좀비는 물론, 어른들에게서 자신들을 지켜내야 한다. 연출자인 이재규 감독은 “사람들이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인간답다, 어른답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 유인수, 이유미, 임재혁 등 출연. 천성일 극본.
키워드1: 좀비물 아닌 학교·사회고발물
[남지은 기자] 이 드라마는 좀비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 좀비를 이용해 ‘지금 우리 학교는’ 수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여전히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다. 좀비의 시작 자체가 왕따에서 비롯됐다. 선생의 잘못된 교육이 수많은 학생, 이후 그들이 만들어갈 사회를 무너지게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정덕현 평론가] 첫 장면부터 학교 폭력으로 시작하잖아. 여학생 노출 동영상을 찍어 공개하겠다고 위협하는 장면, 입시경쟁 속에서 좀비처럼 공부만 하는 반장, 폭력을 더는 참을 수 없어 학교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학생 등 우리가 신문 사회면에서 봐왔던 학교 문제나 학생들의 사건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남지은 기자] 그것도 굉장히 직접적이다. 선생이 왕따당한 학생한테 “애들이 그러는 데는 너한테도 문제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장면은 슬프더라. 괴롭힘 당하던 이들이 탈출할 수 있는 순간에 “오늘 이대로 가면, 내일 두배로 당한다”며 다시 끔찍한 그곳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어떤 드라마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충격이었다고 할까. 학교에, 사회에 던지고 싶은 제작진의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웹툰 원작에서는 좀비 바이러스를 만드는 계기가 왕따 당한 아들 때문은 아니다. 드라마로 옮기면서 강조됐다.
[정덕현 평론가] 좀비 바이러스의 특징이 두려움이 분노로 바뀌면서 강한 에너지를 갖게 된다는 점은 학생들이 처한 시스템이 끝없는 두려움을 기반으로 이뤄져 있다는 암시를 준다. 입시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물론이고, 폭력 앞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두려움 등이다. 이런 두려움의 시스템에 동조하는 여타 어른들과 달리 돈이나 성적보다 안전과 건강이 최고라는 남온조(박지후) 아버지가 사실상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담은 인물이다.
[남지은 기자] 이병찬(김병철) 과학교사의 대사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세상을 만든 건 너희들이야. 작은 폭력이라고 그냥 넘기면 폭력이 지배당하는 세상이 온다고 수백번 경고했어. 애들끼리 그럴 수 있지. 그런 생각으로 외면한 사람들이 이런 세상을 만든 거라고!” 그 와중에 일진 윤귀남(유인수)을 절비(절반은 좀비)로 만들어 교장을 죽이는 등 좀비물에 늘 등장하는, 좀비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메시지도 절묘하게 집어넣었다.
[정덕현 평론가] 빌런화된 학생 역시 공포심 때문에 자기만 살겠다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나, 학교 짱이 되고픈 강박에 폭력을 쓴다. 이것도 우리네 교육 현실이 만든 전형에서 가능해진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키워드2: 학생 주체 좀비물
[정덕현 평론가] 원작 웹툰이 있지만, 학생들이 좀비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또 좀비와 싸우는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색다른 좀비물 이야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학생들이어서 갖고 있던 저마다의 심리적인 부분들이 좀비 창궐과 더불어 드러나고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이기 때문에 멜로도 등장하는 게 풋풋했다.
[남지은 기자] 그래서 처음엔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한정된 공간도 그렇고,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다 보니, 좀비를 보는 재미인 ‘좀비의 잔인함’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촬영 전 <제이티비시> 방영 계획에서 바꿔 <넷플릭스>에서 선보이게 되면서 강하게 나간 전략이 성공했다고 본다. “이거 <부산행> 아냐?” “좀비가 영화에 있어야지 왜 학교에 있냐”처럼 고등학생이기에 가능한 절망적 현실 속에서 우스갯소리도 나름의 재미를 주더라.
[정덕현 평론가] 학교가 배경이 되면서 액션과 스릴러도 가능해지면서 익숙한 좀비물을 새롭게 느껴지게 했다. 급식실, 도서관, 과학실, 방송실, 음악실, 체육관 등의 공간은 그 특징을 잘 활용한 좀비 액션 스릴러로 채워진다. 급식실에서 난장판이 되어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가운데 벌어지는 액션, 과학실에서의 드론 활용, 방송실에서의 방송 활용, 음악실에서의 악기 활용, 체육관에서의 카트 활용 등이 그것이다. 특히 도서관 책장 사이를 넘어다니는 청산(윤찬영)의 액션은 연출이 압도적이었다.
[남지은 기자] 총과 칼이 아니라, 대걸레, 북, 책상, 교실 문짝 등을 들고 싸우는 것도 나름 신선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학생들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 시선을 붙든 데는 연출의 힘이 컸다고 본다. 영화 <완벽한 타인>, 드라마 <트랩> 등 이재규 감독은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는 능력이 탁월하니까. 1년 가까이 촬영했는데 배우들이 친하게 지내며 진짜 친구처럼 호흡을 맞췄다더라. 극 중 친구가 좀비가 되는 장면에선 정말 눈물이 났다고.
[정덕현 평론가] 뒷부분으로 가면 초반만큼의 강렬한 액션과 스피디한 이야기보다는 다소 신파적인 상황이나 사랑, 우정 등의 감정적인 상황들이 더 많이 전개된다. 아무래도 ‘학교(혹은 한 도시)의 비극’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해서였다고 본다. 엔딩도 강렬하다. 시즌2가 충분히 가능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른바 ‘절비’(절반만 좀비)가 새로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될 가능성이 있다.
키워드3: 재난 앞 여전한 어른들
[남지은 기자] 세월호를 경험해서일까? 계속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어른을 믿지 않는 대사들에 괜히 슬퍼지더라. “그냥 우리 여기 있자. 어른들이 구하러 오겠지” “여기 있고 싶으면 있어. 근데 난 어른들 안 믿어.” “어제부터 저렇게 (헬기가) 많이 돌아다니는데 우리가 1순위는 아닌 거야. 우리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잖아. 그냥 학생이잖아.” “엄마 아빠는 나 구한다고 학교 앞까지 왔는데 경찰도 소방관도 우릴 버렸어. 나중에 누가 이 영상 보면 꼭 처벌해주세요. 아무도 우릴 구하지 않았어.” “다신 어른들한테 아무 부탁도 안 할 거예요.”
[정덕현 평론가] 여러모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고립되어 캠코더에 엄마 아빠에게 보내는 영상을 남기는 장면, 학생들을 위해 희생하는 선생님, 또 노란 리본 등이 그렇다.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두고 보면 어른들의 잘못된 시스템(교육, 안전 등)에 무고한 학생들이 피해자가 되는 이 좀비물의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진다. ‘폭력의 시스템’이 만든 비극적인 현실은 지금도 여전히 사건, 사고로 터지고 있지 않은가. 국외 시청자들이 그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떠올리게도 한다. 한 외신이 이 작품에서 학내총기 난사 사건이 떠올랐다고 쓴 이야기가 흥미롭다.
[남지은 기자]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다. 수많은 총알이 온조 아빠를 비껴가고, 아이 부모의 죽음 등이 신파를 위해 과하게 등장하는 느낌도 있다. 여고생의 출산은 ‘희망’과 ‘모성애’를 보여주려는 건 알겠는데, 그 의미를 오롯이 보여주지 못해서 굳이 필요했을까 싶은 느낌도 있다.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 하지만 시청자가 빠져들어 함께 12부 내내 좀비와 맞서 싸울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지 않은 건 아쉽다. 이나연을 연기하는 이유미가 <오징어 게임>의 지영이었고, 장우진을 연기하는 손상연이 <라켓소년단> 방윤담, 최남라를 연기하는 조이현이 <슬기로운 의사생활> 장윤복, 남온조 역의 박지후는 독립영화 <벌새>의 은희였다는 건 듣고 보니 무릎치게 한다.
<그래서 볼까말까>
[정덕현 평론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신박한 좀비 액션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 선정성과 자극의 수위가 높지만 또한 사회적 의제를 은유하는 장면이나 상황들도 많아 한국형 좀비물 혹은 디스토피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음. 시즌1만 12회고 한 회당 러닝타임도 꽤 긴 편이지만 한 번 보면 끝까지 몰아볼 수밖에 없는 작품.
적극 추천
[남지은 기자] 처음에는 킬링타임용으로, 두 번째는 의미를 되새기며 보면 색다르게 다가올 작품. 그리고, 이제 우리는 뭐든 다 만들 수 있다는,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추천
<이재규 감독 추천! 더 재미있게 보는 법>
<지금 우리 학교는>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학생들이 자신들을 지키려고 싸워야 하는 모습에 가슴 먹먹해지실 거에요. 평소보다 사운드 20% 크게 하고, 화면과 주변 공간을 약간 어둡게 하고 보면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요. 풍성하고 깊이 있는 소리를 만들려고 사운드 작업에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반복해서 보시면 몰랐던 걸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을 겁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