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까말까 고민은 이제 그만! 매주 수요일 11시 <수요 드라마톡 볼까말까> ‘평가단’이 최근 시작한 기대작을 파헤칩니다. 주말에 몰아볼 작품 수요일쯤에 결정해야겠죠?
정의, 여성, 다양성. 2021년 드라마계는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겠다. <모범택시> <마우스> <악마판사>처럼 현실 사건을 드라마에 담아 대신 처벌해주는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고, <원더우먼> <구경이> <연모>처럼 여성이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이전에는 잘 볼 수 없던 군대 폭력, 우주 소재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 등 장르도 다채로워졌다. 유독 유명 스타들이 찾아왔는데, 이름값이 성공으로 직결되지 않은 점도 흥미롭다. 화제작도 많았고, 변수도 많았던 2021년 드라마계를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와 김효실·남지은 기자가 함께하는 ‘수요 드라마 평가단’에서 정리했다.
-오티티까지 포함해서 올해 가장 좋았던 작품은
[정덕현 평론가] <디.피.> “가장 완성도 높았다.”
우리나라에서 군대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잘될까 싶었는데, 남녀가 모두 좋아하게 잘 만들었다. 완성도 면에서 가장 뛰어났다. 우리가 흔히 금기라 여겼던 소재들이 사실은 편견과 선입견에 불과했다는 걸 보기 좋게 증명했다. 특히 구교환이라는 배우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하였다.
[남지은 기자] <디.피.> “모처럼 드라마의 긍정적 효과를 봤다”
<펜트하우스>에 빠져있는 엄마를 못 보게 할 수도 없고, 우리나라 드라마는 다 왜 저래,라는 비판에 자괴감에 빠져있는 한국 시청자들의 어깨를 펴줬다. 드라마가 제기한 문제에 국방부가 응답하고, 군부대 구타 뉴스에 더 주목하게 만드는 등, 사회적으로도 영향을 미쳤다. 메시지가 확실하고, 용감한 드라마, 이 제작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작품이다. <오징어 게임>이 너무 빨리 등장해 인기가 금방 식은 게 아쉽다. 시즌2가 빨리 나와 전 세계 사람들이 <디.피>에 <오징어 게임> 이상의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시청률이 다냐! 이 작품은 반드시 다시 보자!
[정덕현] <인간 실격> “문학적 서사와 대사가 압권”
문학적 서사와 대사가 압권이었다. 무엇보다 진지하게 삶을 탐구하는 드라마였지만, 요즘처럼 진행 속도가 빠른 드라마 사이에서는 ‘사이다-고구마’ 느낌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가치 있게 느껴지지만.
[남지은] <오월의 청춘> “<설강화>를 보니 더욱 빛나는”
<설강화>처럼 1987년을 배경으로 시대의 로맨스를 그리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피땀 흘린 평범한 시민이 주인공이다. 1980년 광주. 그저 볕 좋은 5월이었으면 행복하게 살았을 두 청춘이, 엄혹한 5월을 만나 어떻게 사랑하고, 살아남았는지, 무엇을 빼앗기고 지키려 애썼는지를 보여준다. 왜 그 시대에 오월 같은 사랑이 있었다는 생각은 못 했을까, 1980년 5월의 잔혹함은 잔잔한 드라마로 더 짙어진다.
[김효실 기자] <미치지 않고서야> “‘퇴근 뒤 다시 출근’ 느낌이어도 행복했다”
이전엔 직장 생활을 다룬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았다. 기껏 퇴근했는데, 다시 출근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서. 하지만 올해 <문화방송>(MBC)에서 방영한 <미치지 않고서야>는 매주 본방을 손꼽아 기다렸다. 직장 생활을 현실감 있게 다루면서도, 웃기고 울리고 다 했다. 여주(문소리), 남주(정재영) 케미가 어마어마한데 연애 안 하는 것도 좋았다. 드라마의 힘으로 현실 직장의 괴로움을 버티게 해준 드라마.
-아 깜짝이야! 이 배우 연기에 놀랐다.
[정덕현] <구경이> 김혜준
이 작품에서는 파격 변신을 한 이영애의 면면도 놀라웠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악역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해낸 김혜준이 더 놀라웠다. <구경이>는 김혜준이 향후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는 걸 확인시켰다.
[김효실] <연모> 박은빈
원래 믿고 보는 박은빈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새삼 정말 눈빛이 ‘잘생겼다’ 싶었다. 눈빛도 연기하는 느낌이랄까. 남장했을 때는 잘생긴 눈빛이라면, 여자의 모습일 때는 다시 예쁜 눈빛이 된다. 그래서 지운, 현과도 케미가 좋고, 하경과도 케미가 좋았다. 어떻게 연습을 한 건지 궁금하다.
[남지은] <디.피.> 정해인
이전까지 주로 부드러운 연하남의 이미지로 많이 소비됐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인기 연장선인지 이후 <봄밤> 등 비슷한 분위기를 소비했다. 영화 <시동>에서 다른 변화를 줬지만,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아 발전이 없을 줄 알았다. <디.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와 정해인! 감탄이 절로 나왔다. 똑 부러지는 말투에, 단호한 표정 등 같지만 다른 정해인이 내무반에 있었다.
-기대하게 해놓고,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정덕현]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박보영에 서인국이 출연하는 데다가, 소재 자체도 독특해 잔뜩 기대했지만 결국 이를 잘 구현해내지 못해서 실망이 컸다. ‘멸망’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캐릭터화했다는 점에서 도전적인 시도만은 박수받을 만했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식에서 대중적인 접점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남지은] <설강화>
<조선구마사> 논란 때 <설강화> 인물 소개 부분이 유출되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민주화운동 가치 훼손, 간첩 미화에 안기부의 폭력성을 정당화한다는 등 온갖 우려가 쏟아졌다. 제작진은 실존인물과 같은 이름인 ‘영초’를 ‘영로’로 바꾸고 “본방송을 지켜봐 달라”고 했다. 우려일 뿐이라며. 뚜껑을 열었는데, 우려의 지점이 여전하다. <조선구마사> 사태를 보고도 이름 외에 수정하지 않았다는 건 다른 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일까? 무엇보다 왜곡 논란에 가려져서 그렇지, 재미 면에서도 기대보다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웨이브 제공
-올해 계속 중얼거린 명대사
[김효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신원희 “우리 더 늠름해집시다!”
문체부 최연소 대변인 신원희(이채은)의 대사다. 그는 일 똑 부러지게 하고, 다른 사람도 험담도 하지 않는 프로 직장인이지만, 어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같은 편’조차도 성취에 의심을 한다. 하지만 그런 오해들에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며 일을 해결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이 대사와 함께. “우리 더 늠름해집시다!”
[남지은] <지리산> 강현조 “하지만… 누군가는 기억해 줘야죠.”
<지리산>은 작가의 의지는 아니었던, 초반에 등장한 간접광고(피피엘) 때문에 잡음부터 일었지만 드라마 전반적으로 많은 의미를 품고 있는 좋은 작품이다. 2회 등장하는 현조의 대사가 상징적이다. 이 드라마에는 1998년 7월 지리산에서 실제 있었던 대원사계곡 수해 사건을 그대로 가져와 마을에서 다 같이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리산에서 자행된 양민학살의 피해자도 등장시킨다. 지리산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에 아픈 사건들을 담아놓은 것이다. 현조의 대사처럼 잊지 말아 달라고. 이런 한마디 대사들이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나만 알면 싶지만, 내년엔 ‘모두의 스타’되길
[정덕현] <디.피.> 구교환
이젠 너무 유명해진 모두의 스타이지만, 2022년엔 더 높은 곳에 서 있는 톱스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꼽았다. 독립영화 시절부터 응원했던 나만의 스타였다. 독보적인 개성의 소유자. 어떤 역할도 ‘자기 것화’하는 배우, 구교환의 시대가 제대로 한번 열리기를.
[김효실] <…청와대로 간다> 이채은
독립영화부터 탄탄히 쌓아온 연기력을 많은 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만의 스타에서 만인의 스타로 빛나기를!
[남지은] <디.피.> 현봉식
연기인지, 일상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생활 연기를 너무 잘한다. 근엄하고 무서운 연기 많이 하는데 알고 보면, 귀여운 배우. 이제 많이들 알지만, 더 많이 알아서 내년엔 영화제 상도 다 휩쓸기를!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