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장관님! 이번 대선에 나오시면 안 됩니까!” 그를 만나면 묻고 싶었다. 저 후보, 그 후보 죄다 꺼림칙한 ‘현실 선거판’에서 이정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 줄기 희망처럼 다가왔다. ‘손병호 게임’(해당되는 사람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것)으로 확인한 다주택 소유, 위장전입, 논문 표절, 탈세, 아들 군 면제 등 선거철마다 불거지는 문제도 없었다. 모두 그를 전임 장관의 남은 임기 1년만 채우면 되는 ‘땜빵’으로 여겼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 체육계 성폭력을 막으려는 ‘체수처’ 설립에도 마음을 다한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피해를 전시하려는 정책보좌관 앞에서는 단호해졌다. “너, 아웃!”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니 지지율도 올랐다. 이렇게 된 이상 다음에는 청와대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대권을 놓고 차정원 의원과 한번 붙어보고는 싶어요.” 앗, 이것은 이정은 장관의 출사표인가.
아쉽지만, 이정은은 요즘 인기를 끄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의 정치 풍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속 주인공이다. 여성 장관의 일상을 중심으로 풍자를 보탠 정치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다. 그 중심에 이정은을 연기한 김성령이 있다.
최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성령은 “시즌2에서 차정원과 붙어보고 싶다” “무슨 일이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잘 만나야 한다”는 등 드라마와 현실 정치와 비교해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특히 여성 정치인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점에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는 “요즘 여성 중심의 작품이 많긴 해도 여성 정치인을 내세운 작품은 쉽지 않은데, 윤성호 감독님이 해냈다고 생각한다”며 “내 역할보다 작품 전체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출연했다”고 말했다.
오티티라는 자유로운 플랫폼을 만난 드라마는 풍자의 강도가 티브이에 견줘 더 사실적이다. 태극기를 흔드는 개신교 목사는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진보 지식인은 지질하고 허세 가득하게 그려진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실존 인물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한다. 부담감은 없었을까? 답하는 모습에서 언뜻 이정은이 보였다.
“정치 풍자라는 것에는 부담감이 전혀 없었어요. 너무 센스 있게 잘 써서 그런가.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서 속시원하게 해주니 더 좋았다고 할까요.” ‘17시 북핵에 보안 철저’ 등 일상 대화가 아닌 말들의 발음이 입에 잘 안 붙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장관 역할이어서 긴 연설 장면을 한번에 끝내려고 “죽어라 대사만 외웠다”며 웃었다. 사실감에 비중을 두다 보니 촬영 중 남북이 공동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대본이 바뀐 경우도 있었단다.
그런데도 그는 “연기 인생에서 편하게 촬영한 작품 중 하나”라고 했다. 이정은이 문체부 장관을 수락하면서 역량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한 것처럼, 김성령도 이 작품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10년 전 윤성호 감독과 처음 함께 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배우로서 터닝포인트였어요. 당시 정신없이 다작 하다가 너무 지치고, 만족도가 떨어졌을 때 힘이 됐죠. 이번에도 코로나19로 지치고, 바닥으로 가라앉았을 때 윤 감독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목마른 저한테 샘물을 주는 기분이었어요.” 그는 이 작품이 예전처럼 내 인생에 어떤 변화를 주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 느낌을 확신으로 바꾼 건 그를 포함한 모두의 노력이다. 김성령은 한국의 여성 정치인을 찾아보고, 미국 드라마 <마담 세크리터리>, 덴마크 드라마 <보르겐> 등 윤성호 감독이 추천한 여성 정치인이 등장하는 국외 작품도 보며 연구했다. 이정은한테서 중요한 것은 어색함과 강인함 등 한꺼번에 보여지던 복잡한 마음이 점점 확고해져가는 변화다. 데뷔 30년도 지났는데 기본부터 다시 채운 듯하다. “감독님이 늘 제 목소리가 습하다고 했어요. 목소리에서 촉촉한 느낌을 빼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시즌2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제목은 <…청와대로 간다>인데, 시즌1에선 이정은이 장관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가야 하지 않을까? “배우들 모두 시즌2를 바라고 있어요.” 그가 가지 않더라도 현실의 누군가는 가야 한다. “현실 정치판에도 극중 문체부 식구 같은 올곧고 제 할 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제발 좋은 정치인이 나와서 좋은 정치를 해줬으면 하는 게 모든 국민의 바람이겠죠.”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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